사소한 기원-인간과 외계 생물체 '최초의 접촉' [장르물 전성시대]

2021. 1. 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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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인간이 외계인과 교감하는 이른바 ‘최초의 접촉’ 이야기가 단지 흥밋거리를 넘어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눈시울을 붉힐 만치? 일찍이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그런 발상 자체가 우주의 현실을 도외시한다고 보았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외계지성이 기계파리들의 늪(〈우주선 무적호〉)이나 행성만 한 크기의 플라즈마 바다(〈솔라리스〉)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간은 이처럼 별난 존재들을 좀체 이해할 수 없다.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에서 초월적 지성을 지닌 성간구름은 인류를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긴 나머지 그냥 지나칠 뻔한다. 우리가 언제고 외계인과 마주한다면 신체적 정신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과연 서로 소통할 수 있을까?

아작 「사소한 기원」 한국어판 표지


오슨 스콧 카드는 외계인을 프라믈링과 바렐스 그리고 라멘이란 세 범주로 분류했다. 프라믈링은 먼 미래에 화성 너머 외행성계에 정주할 인류의 분파로, 장기간 격리된 채 지구와 평행진화하느라 정신문화와 신체외형까지 꽤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호모사피엔스에서 기원한 이상 소통이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바렐스는 지능은 높아도 우리와 교감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외계종이다. 이런 유형은 솔라리스 바다같이 우리에게 무심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영화 〈프레데터〉나 〈에어리언〉에서처럼 포식자로 돌변한다고 생각해보라. 마지막으로 라멘은 100% 외계인이나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존재다.

앤 레키의 〈사소한 기원〉에서 주요 캐릭터인 게크 종족은 라멘이다. 게크는 젤리 덩어리 같은 관족(管足)과 말하는 입구멍을 지닌 수생동물로 실체는 명확지 않다. 관전 포인트는 게크인들과 이들 행성에 정주를 허락받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다. 과학문명이 인류보다 월등히 앞선 게크들은 원래 외부인을 자기네 행성에 들이지 않지만, 사고로 불시착한 일부 인간들을 포용한다. 어느 날 대대로 이 행성에서 살던 인간 중 한명인 ‘위진’이 우주선을 탈취해 달아난다. 이후 인간세계의 시민권을 교묘하게 손에 넣으며 이리저리 내빼는 ‘위진’과 그를 줄곧 뒤쫓는 게크인(게크 행성 전권대사) 간의 숨바꼭질이 한동안 이어진다.

게크 행성은 대부분 물이라 육지라곤 섬 몇개가 고작이다. 따라서 이곳 인간들은 나이가 들면 시술을 통해 게크인들처럼 수중생활에 입문한다. 그러나 위진이 수술할 때가 되자 엄마의 절친인 게크 대사가 반대한다. 해저 깊이 헤엄칠 수 없다는 것은 이 동네에서 ‘사람대접’ 받기 글렀다는 뜻이다. 굴욕을 곱씹으며 위진은 행성 상공의 우주정거장 근무에 자원한다. 그 뒤 우주선을 탈취해 달아난다.

그러나 위진은 게크 대사의 진의를 오해했다. 수중생활, 그것도 해저 깊숙이 헤엄치기가 가능한 인체개조는 누구든 시술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게크 대사는 위진이 시술해봤자 결국 죽게 되리란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절친이 평생 가슴 아파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처음에 게크 대사는 위진을 어떻게든 고향세계로 다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그의 의사가 확고하자 흔쾌히 놓아준다. 그리곤 언제든 부담 없이 돌아오라고 덧붙인다. 엄마를 위해 용단을 내렸듯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한다. 그러면서 무척 상심했을 위진에게 사과한다.

게크 사회는 표면적 현상(도둑질)에 따른 기계적 처벌보다 동기의 해석에 주안점을 둔다. 외계인조차 우리의 불완전한 구석을 헤아릴 수 있다면, 인간이 인간을 헤아리지 못하는 일이 현실에서 빈발하는 것은 누구 탓일까? 게크인들이야말로 우리가 비춰봐야 할 거울이 아닐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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