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따라 흘러가는 삶과 이야기 [문화프리뷰]

2021. 1. 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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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존 마란스 작, 우진하 연출의 연극 〈올드 위키드 송〉은 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의 도시 빈의 한 대학음악실에서 이루어지며, 등장인물 또한 성악 교수와 피아니스트 학생으로 극은 시종일관 이 두 사람의 음악수업을 따라 흘러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작품은 슈만의 연가곡(連歌曲) 〈시인의 사랑〉을 통해 극의 흐름과 인물의 정서 그리고 그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음악극이라 할 수 있다.

나인스토리 제공


〈올드 위키드 송〉은 세가지 이야기 축을 가지고 흘러간다. 첫 번째는 음악교수 마쉬칸과 피아니스트 스티븐이라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다. 까칠한 괴짜 교수와 슬럼프에 빠진 제자가 좌충우돌 음악수업을 통해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고풍스러운 유럽의 전통을 고집하던 스승과 세련된 미국의 합리주의를 내세우던 제자는 서로 다른 상대방의 문화적 풍토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연다.

두 번째 이야기는 그들의 아픈 과거와 쓰라린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낸 뒤 살아남은 마쉬칸과 자기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상실한 스티븐은 서로에게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 속에서 스스로 출신을 밝히게 되고, 이는 두 사람의 정신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극의 초점은 이들이 유대인으로서 어떤 고통 혹은 차별을 당했는가가 아니라 그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삶을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가는가에 맞춰져 있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 모두를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바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이다. 이 작품에서 〈시인의 사랑〉은 단순한 배경음악이나 삽입곡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삶과 내적인 성장을 은유하는 가장 중요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첫 곡 ‘아름다운 5월에’부터 마지막 곡 ‘올드 위키드 송’까지 〈시인의 사랑〉에 담겨 있는 사랑과 슬픔, 분노와 회한은 마쉬칸이 비극의 역사로 굴곡진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감정이자 스티븐이 이 작품을 연습하면서 새로 깨닫게 되는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결국 이 작품의 표면에 흐르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 비극적 역사 이야기는 모두 보이지 않는 이야기 축인 〈시인의 사랑〉을 통해 구현되고 그 속에 모두 녹아 있다. 극 중 스티븐은 스승에게 “〈시인의 사랑〉이 도대체 우리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 즉 예술이 우리의 삶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 삶의 고통이 예술을 통해 어떻게 승화될 수 있는지의 이야기다. 2월 14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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