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가는 '법조기자단 카르텔'..언론 스스로 대안 찾아낼까

김효실 입력 2021. 1. 13. 05:06 수정 2021. 1. 1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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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 사실상 거부당한 매체들 소송 예고
"가입 규정·운영 폐쇄적" 비판 일자
일각에선 "최소한의 거름망 필요" 반론
"기자단 공개 정보는 일반에도 공개해야"
"출입처 중심 뉴스 생산 등 구조적 문제도
..편집국 차원 취재 방식 변화 선행돼야"

‘법조 기자단 카르텔 문제’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 법조 출입을 사실상 거부당한 미디어 전문매체 <미디어오늘>과 탐사보도 매체 <뉴스타파>, <셜록>은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함께 검찰·법원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법조 기자단 가입·운영의 폐쇄성이 언론의 취재 자유를 침해하고 나아가 시민의 알 권리를 제한한다는 취지에서다.

신규 진입 장벽이 두터워 ‘카르텔’이라고 불릴 만한 형태로 운영되는 기자단은 법조 분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하지만 법조 기자단은 출입처인 검찰·법원의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데 더해, ‘정치의 사법화’가 가속화한 최근 몇년 동안 정치·언론·학계·시민사회로부터 집중 조명을 받았다. 언론개혁의 방향과 방안을 논의할 하나의 대표적 장으로 떠오른 셈이다. <한겨레>는 소송을 예고한 언론사, 법조 기자단 소속 기자, 언론학자, 언론·시민단체 활동가, 검찰·법원 공보관 등 20여명과 접촉해 법조 기자단 안팎의 현황을 듣고 저널리즘적 쟁점을 정리했다.

높은 가입 문턱 낮춰야

법조 기자단에 가입하려면 3명 이상의 기자로 구성된 팀이 6개월 이상 법조 기사를 보도한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대검찰청 3곳 기자단의 찬반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팀장급이 모인 대법원 기자실의 경우, 앞서 기자단 3곳의 투표를 통과하여 법조 기자단에 소속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야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 기자단에 가입하면 소정의 비용을 내고 검찰·법원 기자실을 이용하는 등 공간과 정보 접근에서 편의를 제공받는다. 현재 법조 기자단 소속 언론사는 지법·지검·대검 출입사가 42개, 대법원 출입사가 33개다. 정부 중앙부처, 경찰 등의 경우 법조 기자단과 출입 언론사 수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2000년대 중반 참여정부를 거치며 가입 문턱을 대폭 낮춘 청와대 출입 언론사는 181개(2020년 <미디어오늘> 집계), 국회 출입 언론사는 502개(2019년 국회사무처 용역보고서 집계)에 이른다.

11일 <한겨레>가 각급 기자단 간사 등에 문의한 결과, 기자단 가입 문턱을 낮추는 등 기존 규정을 바꾸려는 내부 움직임은 없었다. 일부 기자는 “이미 ‘카르텔’이라고 불릴 만한 정보 독점은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했고, 검찰의 한 공보관은 “출입사가 아니어도 정보를 요청하는 기자에게는 자료를 제공하고 질문도 받는다”고 말했다. 진입 장벽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일부 기자는 ‘가입 규정이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지적은 수긍하지만, 완전한 개방은 우려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한 법조 기자단 소속 기자는 “과거 언론이 몇 개 안 되던 시절의 기자단은 카르텔이 맞지만, 매체가 폭증한 지금은 (수준이 미달하는) 일부 언론의 ‘구악질’을 막을 최소한의 거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론학자 다수는 법조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이 문제라는 데 동의했지만, 기자단 유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내놨다. 일부 학자는 ‘검찰·법원의 정보가 기자는 물론 모든 시민에게 똑같은 수준으로 공개되어야 한다’고 했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어차피 외곽 취재를 하고 검찰에게 확인만 하는 형태라면 검찰과 거리두기가 어려운 기자실에서 벗어나 취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자단을 없애는 게 낫다”며 “원칙적으로 출입 기자단에 공개 가능한 정보는 일반에도 다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기자들이 자의적으로 출입 매체를 취사선택하거나 엠바고와 관련한 징계를 주면서 기자단을 유지하려는 모습은 권위적·안정지향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비친다”고 비판했다.

언론 스스로 바뀌는 길이 최선

일부 학자는 ‘법조 기자단이 사라져야 법조 보도의 질적 향상이 이뤄진다’는 주장엔 의문을 던진다. 법조보다 출입사 등록에 개방적인 청와대·국회에서 생산되는 기사들도 기자가 취재원의 논리에 동화되거나 취재원이 주는 정보를 받아쓰는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큰 틀에서 △출입처 중심 뉴스 생산 관행과 피의사실 중심 범죄 취재·보도 관행 △검찰의 비대한 권력과 법조계의 폐쇄성 △조회수 중심의 포털 뉴스 유통 환경 △양극화된 공론장 등 구조적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친검’ 보도는 기자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위보단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한다는 지적이다.

구조적 문제를 고려해도, 언론이 스스로 바뀌는 길이 최선이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법조를 포함한 관공서 제공 정보의 뉴스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편집 방침을 가진 언론사에, 출입처 제도는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나서야 한다”며 “편집국 차원에서 편집 방향의 패러다임 전환과 취재 방식에서의 실행 방안을 결단·선언하지 않는 이상 법조 기자단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재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은 소송에 나선 이유에 대해 “언론사의 자정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가장 좋겠지만, 외부 ‘충격’ 없이는 해결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새로 출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까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법조 기자단이 담당하게 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수처부터 기자단 카르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을 도입할 수 있도록, 언론사들의 문제 인식과 대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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