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 칼럼] 법원의 反日 모험, 다음에 올 것들

선우정 부국장 입력 2021. 1. 13. 03:20 수정 2021. 1. 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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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미국을 한국 법정에 세우고
미국 정부의 재산을 몰수해 보라
한국 법원은 역사의 판도라 상자를
너무 쉽게 열었다

한국 법원이 8일 일본에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재판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완전히 승소한 피해자도 항소할 이유가 없다. 1심 판결은 조만간 최종 판결로 확정된다.

위안부 제도는 불법이다. 그러면 배상은 당연하고 판결은 정당한가? 과거사, 특히 위안부 문제가 나오면 ‘한국인다움’을 요구받는다. 한국인이라면 피해자를 따라야 한다. 다른 목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세상엔 반대 경우가 많다. 폴란드는 한국 이상으로 외세(外勢)에 당했다.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자국 법원에 독일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2010년 폴란드 대법원은 패소를 확정했다.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다. 프랑스 법원은 세 차례 판결에서 독일에 끌려간 자국민의 배상 소송을 모두 기각했다. 슬로바키아, 벨기에, 세르비아도 자국 국민의 패배를 선고했다. 그리스에선 학살 피해자의 승소를 선언한 대법원 판결을 특별최고재판소가 패소로 뒤집었다. 이 법원들은 피해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불법과 가해자 독일 편에 선 것일까?

1939년 폴란드 서부도시 레슈노에서 나치 친위대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폴란드 법원은 국제관습법의 국가 면제 규정을 들어 독일을 상대로 한 자국 학살 피해자의 배상 소송을 기각했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베트남 국민이 한국군의 학살 피해자라며 자국 법원에 한국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했다. 베트남 법원은 일방적으로 한국을 법정에 세우고, 원고 승소를 선언하고, 한국 정부 재산을 몰수했다. 한국은 이 판결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학살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국가가 다른 국가를 재판할 수 없다는 주권 평등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국제관습법은 국가의 권력 행위에 대해 타국의 재판 관할권에서 면제(국가 면제)된다고 규정한다. 주권 평등과 국가 간 분쟁을 막으려는 장치다. 폴란드, 프랑스 등이 자국민 패소 판결을 내린 것도 학살, 납치, 강제 노동을 용인해서가 아니다. 나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남의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러면 국가 책임은 사라지는 것이냐”고. 정의는 사법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법이 안 되면 외교가, 외교가 안 되면 민간도 할 수 있다. 세계의 전후(戰後) 화해 방식이다. 한국만 무시한다.

판결문을 보면 한국 법원의 논리는 명확하다. 절대 규범을 위반한 반인권적 범죄는 국제관습법에서 예외라는 것이다. 학계에서 이 논리가 지지를 얻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법정에선 여전히 변방의 논리다.

이탈리아는 한국에 앞서 이례적으로 이 논리를 강제 노동 배상 판결에 적용했다. 대신 정말 치열하게 논쟁했다. 2000년 1심 판결에서 2014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까지 패소와 승소를 거듭하면서 재판만 7번 거쳤다. 국제 법정까지 갔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절대 규범 위반과 국가 면제는 별개 사안”이라며 이탈리아 법원이 국제법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것이 세계 법정의 지배 논리다. 한국은 이 논리를 지방법원 40대 판사가 ‘전부 승소’ 결정으로 단판에 부정했다.

저변엔 대중 감정이 있다. 상대가 일본이라면 때릴수록 지지한다. 판사가 영웅 대접도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국제 절도단이 일본에서 훔쳐온 장물까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온다. 14~16세기 왜구가 약탈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법정 증거로 삼는다. 21세기 한국 법원의 판결이다. 일본이라면 일사부재리, 시효, 협정, 증거, 판례, 국제관습법의 벽까지 간단히 넘어선다.

스웨덴 법학자 울프 린더팔크는 절대 규범 논리의 위험성을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했다. 한국 법원은 일본을 만능 열쇠로 삼아 ‘국가 면제’란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단숨에 뜯어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미군의 민간인 희생 사건은 대부분 전폭기 폭격에 의한 민간인 사망이다. 위원회는 이 중 상당수 사건을 미군의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미국의 배상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6·25전쟁 당시 노근리에서 미군에게 여러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2001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제주 4·3 사건 발발과 진압 과정에서 미 군정이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노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위원회는 미군을 대구 폭동의 가해자라고 규정했고, 1948년 여순 사건 진압 작전을 미군이 통제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가 밝힌 6·25 당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은 249건이다. 중대 사안에 대해 위원회는 “전쟁 범죄에 해당하며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밝히지 못한 미군 사건 202건은 문재인 정부의 2기 진실화해위에 넘어가 있다.

‘절대 규범이 모든 법의 상위에 있다’는 법 논리는 일본에만 적용될 수 없다. 한국 사회의 특정 세력이 미국을 피해 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국가 면제를 철저히 보장하는 나라다. 이런 미국을 한국 법정에 세우고 미국 정부의 한국 내 재산을 몰수해 보라. 만만한 일본을 상대로 갈 데까지 간 한국 법원의 모험주의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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