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정 총리의 ‘의회 난입 기시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21. 1. 13. 03:05 수정 2024. 1. 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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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6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에선, 지난해 미국을 휩쓸었던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일어났던 약탈과 방화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폭도’로 규정됐고 미 검찰은 대대적인 체포 작전에 들어갔다. 이유는 단 하나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의회의 창문과 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시위대 4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내전 상황도 아닌데 시위대가 의회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미 의회가 폭력으로 침탈당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기시감(旣視感)과 함께 정신을 번뜩 차린다”고 했다. 당연히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 2009년 정 총리가 민주당 대표로 있을 당시, 민주당은 외부 세력의 국회 난입을 방조하고 심지어 돕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22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미디어법 직권상정을 거부하며 국회에서 통과되기전 전국언론노조 소속 노조원들이 본관으로 들어가려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조인원기자

2009년 7월 22일, 기자는 그날 낮 여의도 국회를 똑똑히 기억한다.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국회 본관 2층 민주당 사무실 쪽에서 울렸다. 종편 설립을 허가하는 미디어법 표결을 앞두고 언론 노조원 수십 명이 국회 본관으로 진입한 것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당직자들은 손을 내밀어 언론 노조원들의 국회 진입을 도와줬다. 제헌국회 이래 외부 세력이 의사당에 난입한 것은 1960년 4·19 의거 당시 부상 학생들이 의사당을 점거한 뒤 처음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시위대도 국회의사당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의사당에 진입하는 순간 대의명분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노조원들은 본관으로 진입한 뒤 본회의장 2층 방청석으로 올라갔다. 기자도 노조원들을 따라 방청석으로 뛰어갔다.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속에, 노조원들은 방청석에서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름을 위협하듯 하나 하나 부르며 “개XX”란 욕설은 물론이고 “야! 친일파 XX야”라는 막말을 쏟아냈다. 그들은 언론 자유를 수호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기자의 눈엔 끓어오르는 복수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원색적 욕설을 기자는 그 이후 국회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다. 난입을 주도했던 언론 노조 간부들은 현 정권에서 MBC 사장과 언론사의 임원·앵커 등 요직을 꿰찼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명분도 국회 난입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당과 당시 언론노조 간부들은 지금이라도 국회 난입 사건에 사과해야 한다. 정 총리 글처럼 “독선과 불통의 정치는 종국에 국민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이 역사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그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집권 세력이 최소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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