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감 없는 화면.. '수다 관람'으로 달래요

박돈규 기자 2021. 1.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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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공연 '방구석 1열'의 기쁨과 슬픔
랜선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생중계 준비 화면.

외출? 귀찮다. 종이 티켓? 필요 없다. 이제 공연장은 노트북 화면(30x20cm) 속에 있다. 헐렁한 추리닝을 입고 ‘방구석 1열’에 앉으면 관람 준비 끝. 예고된 시간에 안내받은 사이트에 접속해 예매 번호(ID)를 입력한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온라인 생중계 화면이 뜬다. 실시간 채팅창엔 기대감이 흥건하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감사해요” “캬~ 시작이다!”···. 맥주 한 캔을 땄다.

역병의 시대에 랜선 공연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거리 두기 격상으로 툭하면 문을 닫아야 한다. 공연을 영상으로 옮긴 것은 ‘이대로 멈출 순 없다’는 몸부림이다. 대세는 촬영 후 편집을 거친 녹화 중계. 하지만 지난 8~10일 ‘젠틀맨스 가이드’는 생중계로 눈길을 끌었다. 랜선 공연의 바다에서 관객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점검했다. ‘방구석 1열’의 기쁨과 슬픔을.

◇기쁨: 편하고 안전한 공연 관람

‘젠틀맨스 가이드’는 공연 전후와 인터미션 때 백스테이지를 공개했다. 지난 9일 배우 이규형은 “보고 싶었습니다. 집에서 마음껏 마스크 벗고 웃으셔도 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러자 채팅창에 글들이 쓰나미처럼 쇄도한다. 너무 빨라 못 읽을 정도다. 생중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10, 9, 8···.

‘젠틀맨스 가이드’는 1900년대 초 영국 런던이 배경이다. 고귀한 가문의 여덟째 후계자란 사실을 알게 된 가난한 주인공이 서열 앞에 있는 이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코미디. 라이선스 뮤지컬 생중계는 처음이다. 제작사 쇼노트는 “저작권 허락을 얻고 정제된 녹화 중계를 원하는 배우들을 설득해 현장감을 살렸다”고 했다.

랜선 공연은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를 줄여준다. 예약 전쟁이 없고 와이파이만 터지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표 값이 저렴하다. ID 하나로 친구와 함께 수다 떨면서 감상할 수도 있다. 배우 얼굴을 클로즈업해 볼 수 있는 것도 공연장엔 없는 장점. 생중계가 아니라면 ‘다시 보기’도 가능하다. 1년 만에 공연을 봤다는 관객은 “집에서 공연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노트북으로 본 랜선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오른쪽에 라이브 채팅창이 보인다. 커튼콜 땐 "짝짝짝짝~" 파도처럼 밀려왔다. /박돈규 기자
‘방구석 1열’의 기쁨과 슬픔

◇슬픔: 라이브의 죽음?

랜선 공연 절대다수는 녹화 중계다. 생중계라 해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라이브(현장성)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연극의 3요소인 희곡·배우·관객 중 관객이 뚝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평론가 이수진씨는 “라이브라는 형식 자체가 통째로 부인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와 관객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인데 관객은 없고 카메라만 있는 셈”(배우 박정자)이다.

촬영팀이 어느 공연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카메라에 담기 때문에 퀄리티(품질)도 떨어진다. 영상 작업을 위한 콘티를 치밀하게 짠 뒤 녹화한 영국 국립극장(NT) 라이브 ‘햄릿’(16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과 견주면 부끄러울 정도다. 국내 랜선 공연은 관객 시선을 균일화했지만 장면 전환 등 큰 그림은 보기 어렵다.

우리가 잃은 것은 또 있다. ‘젠틀맨스 가이드’ 공연은 중간에 두세 번 끊어졌다. ‘새로 고침’을 눌러야 했다. 영상과 음성이 어긋나기도 했다. 녹화 중계와 달리 생중계는 ‘다시 보기’나 ‘일시 정지’도 안 된다. 일부 관객은 “표 값 3만5000원은 랜선 공연 치곤 비싸다”고 지적했다.

◇송출료, 불법 복제 등 장애물

서울예술단은 지난해 무료 스트리밍, 자발적 후원, 고품질 영상화, 유료 스트리밍을 거쳐 올해는 극장 상영과 DVD 출시를 계획 중이다. 서울예술단 김아형 과장은 “뮤지컬 ‘신과 함께’는 총 8회 유료 스트리밍을 했는데 5500여 명(수입 7070만원)이 구입했다”고 전했다. CJ ENM이 제작한 뮤지컬 ‘베르테르’ 녹화 중계는 1만1000명이 관람했고 일본에도 영상이 팔렸다.

하지만 팬덤이 탄탄한 BTS나 아이돌 콘서트와 달리 모객이 어렵다.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하다. 가격 설정부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비싼 송출 플랫폼 수수료, 불법 복제 위험성, 해외 저작권자의 허락, 배우·스태프와의 계약과 수익 배분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러나 송한샘 쇼노트 부사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공연 생중계를 시도했는데 만족도가 예상보다 높게 나타났다”며 “백스테이지 공개와 실시간 소통에 대한 반향도 좋았다”고 했다.

현실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뮤지컬 ‘모차르트’ 등을 온라인으로 송출한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는 “관람권에 음반 등 패키지 구성을 넣어 최고 6만9000원에 판매했다. 올해는 더 다양한 영상화 작업을 준비 중”이라며 “무한한 해외 관객을 겨냥해 일회성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생중계는 인터미션 때 이렇게 백스테이지와 배우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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