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尹 갈등'에 마음 돌린 중도층.. 4월 보궐선거 승패 가를 변수[인사이드&인사이트]
4월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흔들리는 중도층 마음 잡기에 집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한 해 동안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 변화무쌍한 중도층의 움직임을 되짚어 봤다.
○ 코로나19와 부동산, 人事가 뒤흔든 2020년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은 시작이 좋지 않았다. ‘총선에서 민주당에 투표하지 말자’는 취지의 칼럼을 쓴 임미리 고려대 교수를 고발했다가 역풍을 맞고 당이 사과했다. 1월 29일에는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여파가 경제까지 번졌다. 여권 내부에서는 “과반 의석은커녕 제1당도 지키기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그러나 선거를 목전에 둔 3월 방역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정치적 상황도 달라졌다. 대구를 중심으로 한 대유행에 정부가 총력전으로 나서고, 재난지원금 지원 논의까지 더해졌다. 이런 움직임에 중도층은 곧바로 반응했다.
중도층의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3월 48%를 시작으로 4월 59%, 5월 64%까지 올랐다. 2018년 10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1년 6개월여 만의 최고치였다. 민주당 지지율 역시 3월부터 5월까지 34%, 39%, 43%로 올랐고 4·15총선에서 여당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중도층의 마음을 얻지 못한 보수 야당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의 중도층 지지율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20%를 넘지 못했다. 4·15총선에서 국민의힘은 개헌 저지선을 간신히 넘긴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국민의힘은 8월 총선을 복기하는 ‘총선백서’에서 참패의 원인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해 중도층을 놓쳤다”고 분석했다.
여당을 향한 중도층의 굳건한 지지에 균열이 생긴 것은 여름부터다. 발단은 부동산 문제다. 지난해 7월 30일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반발 속에도 여당 단독으로 이른바 ‘임대차 3법’을 처리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혼선을 부추기는 법안들”이라고 우려했고, 중도층도 빠르게 마음을 돌렸다.
지난해 6월 민주당의 중도층 지지율은 40%였지만 7월에는 35%로 내려앉았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도 부정 평가의 이유에 ‘부동산 실책’을 꼽는 의견이 10%에 달했다.
자연히 국민의힘은 반사 이익을 누렸다.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중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도 7월 17%에서 8월 21%로 올랐다.
집권 여당을 향한 중도층의 이탈은 가을이 와도 계속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갈등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의 이전투구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은 빠르게 마음을 돌렸고 10월 37%였던 민주당의 중도층 지지율은 11월에는 34%, 12월에는 32%로 떨어졌다. 4·15총선 직후와 비교하면 10%포인트 넘게 빠진 것.
반면 같은 기간 국민의힘은 15%에서 18%로 올랐다. 1월 12%로 시작했던 것과 비교하면 6%포인트 올랐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른바 ‘추-윤 갈등’과 관련해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 문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하는 리더십을 보였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2021년 시작, 마음 못 정한 35%의 중도층
청와대가 사실상 추 장관의 경질을 택하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을 임명하며 부동산 공급 확대 신호를 보냈지만 한 번 돌아선 중도층은 집권 여당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2021년 1월 한국갤럽의 새해 첫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 수행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3%, ‘잘못하고 있다’는 약 두 배에 가까운 61%였다. 부정 평가의 첫 번째 원인은 여전히 부동산이었고, 두 번째는 코로나19 대응 미흡이었다.
민주당이 촉각을 곤두세운 건 4월 보궐선거와 관련된 조사였다.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다수 당선되길 바란다’는 응답은 32%, ‘야당이 다수 당선되길 바란다는 응답’은 58%로 큰 차이를 보였다. 2022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평가받는 4월 선거에서 패할 경우 정권 재창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민주당 내에 퍼지고 있는 이유다.
관건은 여당에서 등을 돌린 중도층이 그렇다고 야당에 마음을 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한국갤럽 조사에서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는 무당층이 35%에 달했다. 지난해 4월 여야 지지층이 최대한 결집했던 총선 당시 25%였던 것과 비교하면 10%포인트가 높다. 전문가들은 “여당은 싫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좋지도 않은 ‘표심의 중간지대’가 부풀어 오른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야당이 정부여당의 실책(失策)과 대비되는 새로운 대안이나 어젠다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반증으로도 해석된다. 새해 정치권을 가장 먼저 강타한 이슈는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꺼내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이다. 4차 재난지원금 논의도 민주당 소속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보편 지급’을 주장하며 촉발시켰고 정치권이 따라가는 모양새다.
반면 국민의힘이 새롭게 던진 정치적 화두는 아직까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정치권 인사는 “비판은 야당의 숙명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정치적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했다”며 “코로나19 백신 문제와 같이 야당만의 이슈 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여야 모두 “중도를 잡아라”
35%에 달하는 중도층 내 무당층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따라 4월 보궐선거의 승패도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4월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중도층을 향한 서울·부산시장 후보들과 차기 대선 주자들의 구애 경쟁이 달아오르는 이유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도층을 움직였을까. 지난해 중도층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크게 뛴 기간은 ‘3월(34%)→4월(39%)’로 5%포인트가 뛰었다. 당시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19 대응과 방역, 즉 ‘국난 극복’이었다. 반면 지지율이 가장 크게 떨어진 기간은 임 교수 고발 사건이 있었던 ‘1월(39%)→2월(33%)’, 부동산 이슈가 본격화된 ‘6월(40%)→7월(35%)’이었다. 각각 6%포인트, 5%포인트가 떨어졌다. ‘오만’과 ‘민생 실패’가 집중적으로 부각된 시점이었다.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은 지난해의 이런 움직임을 반면교사 삼아 새해 움직임에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 대표의 공식 일정에는 인천 송도 셀트리온 공장,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 등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와 관련된 곳들이 자주 등장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가 연초 사면론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국무총리 시절부터 ‘국난 극복 총리’라는 확실한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며 “이를 대선 무대로까지 이어가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맞서 이 지사는 ‘추-윤 갈등’과 사면 논란 등 민감한 정치 현안에는 침묵하는 대신 재난지원금 등 경제, 민생 이슈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이 지사는 당분간 경기도 내 코로나19 방역 활동과 민생 안정화에 전념할 것”이라며 “말을 아낄수록 중도층의 지지율이 오르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오만 프레임을 경계하고 동시에 국난 극복 행보를 다지겠다는 의미다.
지난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사과한 국민의힘도 중도층 공략에 고심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면론에 대해 국민의힘이 공식 대응을 삼가는 것도 중도층을 의식한 행보다. 야권 관계자는 “부동산 문제 등 현 정부의 경제 실정을 적극 부각시키고, 야당만의 대안을 제시한다면 중도층의 가세도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국제부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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