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중국의 70년 묵은 '난방 38선'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2021. 1. 1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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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겨울마다 이불 밖은 전부 ‘머나먼 곳’이 되고, 손에 닿지 않는 곳은 타향이며, 화장실까지 가는 것은 땅끝으로 출장 가는 것과도 같다.”

중국 유명 앵커 주광추안이 3년 전 한 말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최근 북극발 최강한파가 기승을 부린 탓이다. 베이징 최저 기온은 지난 7일 영하 19.6도까지 내려가 55년 만의 강추위를 기록했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그러나 영하의 강추위를 겪는 베이징 같은 북방보다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는 남방 추위가 훨씬 더 큰 문제다. 남방의 주택과 빌딩에는 난방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난방분계선은 친링산맥과 화이허 지역인 북위 33도 인근을 기준으로 한다. ‘난방 38선’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난방 38선’은 사실상 구소련이 그었다. 중국은 건국 초기만 해도 구소련에 의존하는 일변도 정책을 유지했다. 난방도 구소련 모델을 차용해 만들었다. 구소련의 규정을 그대로 가져와 실외 온도 5도 이하일 때를 ‘겨울’로 정의했다. 영상 5도 이하의 날씨가 90일 이상 지속되는 지역에만 지역난방을 설치했다. 창장 중하류 대부분 지역에는 난방이 공급되지 않는다. 건국 직후인 데다 6·25 참전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던 당시 중국은 에너지 절약이 최우선 과제였다.

1950년대와 비교해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경제는 발전했고, 중국인들의 생활수준도 향상했다. 지금은 ‘북방사람들은 난방으로 겨울을 나고, 남방사람들은 정신력으로 난다’는 자조 섞인 유머까지 생겼다. 비교적 싼 가격에 4개월가량 지역난방을 누리는 북방은 겨울에도 집 안에서는 반팔차림으로 지낼 정도다. 반면 남방에서는 이불 밖을 나가기 힘들 정도의 실내 추위를 견뎌야 한다.

남방의 겨울은 기온이 0~5도 정도지만 습도가 60~70%에 달해 체감온도는 훨씬 더 내려간다.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실내에서 난방 없이 버티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남방 지역의 난방기구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북극한파가 한창이던 지난주 남방 지역의 온풍기, 전기장판 판매량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뛰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지난달 저장, 후난, 장시 등 남방의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전기 부족 사태가 일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이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줄이는 등 석탄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 강추위로 전기 수요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남방과 북방의 전력 불균형에 대한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학계에서도 ‘난방분계선은 시대적 착오’라는 비판이 나온다. 저우훙위 전인대 대표는 2018년 양회에서 “난방분계선을 새로 짜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000만명에 달하는 농촌 빈곤인구 전원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다며 ‘탈빈곤’을 선언했다. 중국 빈곤 지역 832곳이 모두 절대 빈곤에서 탈출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중국의 탈빈곤은 역사적 성취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중국인의 절반 정도는 여전히 ‘난방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정신력’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중국의 기술은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을 만들고 달에 탐사 우주선을 보내는 등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1950년대 구소련이 획정한 ‘난방 38선’은 70년째 그대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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