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다이어리] 온라인 예약 너무 복잡, 전화는 불통… 美 컴맹 노인들, 백신 헛걸음

뉴욕/정시행 특파원 2021. 1.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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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집중 접종소’ 오픈 첫날 신분증만 들고 와 직원과 실랑이
인터넷·모바일 서툰 고령자들 백신 접종 제때 못할 우려
미 뉴욕시가 11일(현지 시각) 브루클린 아미터미널에 연 '24시간 백신 접종소(메가 사이트)'에 사람들이 줄지어 선 모습. REUTERS/Brendan McDermid/2021-01-12 02:45:04/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11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군(軍) 터미널. 코로나 백신 접종을 확대하기 위한 ’24시간 집중 접종소(메가 사이트)’가 처음 문을 열자, 추위 속에 온몸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허드슨강의 찬 강바람이 강하게 몰아쳤지만 시민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뉴욕시의 최우선 접종 대상인 의료진과 요양원 거주자에 이어, 다음 차례인 75세 이상 노인과 공무원·교사·대중교통 근로자 등 비의료 분야 필수 업종 종사자 320만명을 상대로 한 대중 접종이 이날 시작됐기 때문이다.

설비와 인력이 대거 투입된 접종소인 만큼 건물 밖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코로나 테스트 센터에서 일하는 캐틀린(36)씨는 “지난 9일 온라인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앱으로 편하게 예약했다”며 5분 만에 백신을 맞고 나갔다. 그런데 대기자 3명중 1명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입장조차 하지 못했다.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담당자가 “온라인으로 신분을 증명하고 예약하고 왔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전화 예약이라도 하라”며 막고 있었다.

뉴욕시립대 교수라는 대럴(70)씨는 “온라인 예약이 잘 안 되더라. 전화는 계속 불통이고”라며 30분째 구형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었다. 칼바람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한 80대 부부는 “신분증이 있는데 인터넷 예약이 왜 필요하냐”며 담당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자기들끼리 “여기선 안 되겠다. 애들에게 연락해보자”면서 자리를 떴다. 5㎞ 떨어진 동네에서 버스 타고 왔다는 마이클(79)씨는 기자에게 “난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없다. 집에 돌아가 전화로 (예약) 해봐야겠다”고 했다.

당국이 요구한 온라인 예약은 총 6단계 51문항을 채워야 한다. 의료보험증 사진까지 업로드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만 했다면 현장에서 확인만 하고 금방 접종받을 수 있지만,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간단한 이 절차가 ‘컴맹’ 노인들에겐 고난도 과제다. 그러나 접종소 측은 코로나 감염 우려에다 행정 인력 부족으로 현장에선 서류 확인을 일일이 할 수 없다고 했다.

플로리다에서 '65세 이상 선착순 접종'을 내건 포트마이어스의 코로나 백신 접종소에서 지난달 30일 한 60대 부부가 간이 의자까지 챙겨들고 나와 줄 서 기다리고 있다. /2020-12-31 01:28:49/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로 모든 일상의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노인들이 가장 큰 소외 계층이 되고 있다”고 했다. 75세 이상 노인은 코로나에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사회 활동이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인터넷과 모바일앱 사용에 익숙지 않다 보니 장 보기부터 은행·관공서 업무까지 모든 면에서 불편을 겪고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 65세 이상 인구의 4명 중 3명은 “스마트 기기 사용을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노인들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디지털 사용 능력의 격차)’가 생활 불편과 고립을 넘어 이젠 생사를 가르는 백신 접종 문제로까지 확산하면서 미국 곳곳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뉴욕뿐만 아니다. 텍사스주에선 우선 접종 대상으로 지정된 65세 이상 주민 370만명 중 현재까지 겨우 10만여명만 백신을 맞아, 다른 우선 접종 대상군보다 접종률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고 텍사스주 보건 당국이 발표했다.

지난달 30일 플로리다의 포트마이어스에서 '65세 이상 선착순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실시되자 노인들이 접종소 앞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11일(현지 시각) 현재 미국에 풀린 전체 백신 물량 중 실제 접종된 물량은 35%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보건 당국이 예측한 집단면역 달성 시기도 당초 5월에서 9월 이후로 늦춰졌다. 그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노인 접종률이란 분석이다. 가장 백신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에게 가야 할 백신이 남아돌자, 일부 병원에선 20대 의대생이나 부유층이 인맥을 통해 백신을 먼저 맞는 일도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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