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n분의 1'은 공정한가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21. 1. 1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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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상에서 우리는 n분의 1 원칙을 적용한다. 식당에서 밥값을 낼 때, 함께 운동을 한 후 비용을 정산할 때, 음식을 나눌 때 이 원칙을 쓰곤 한다. 이것의 장점은 단순함이다. 구성원들 간에 조건이나 형편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거나 어떤 원칙을 적용할지 애매모호할 때 우리는 n분의 1 원칙을 자주 사용한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구성원들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이 다르면 똑같이 나누는 것은 공정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100만원을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데 한 사람은 장애인이어서 보행기가 없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비장애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보행기의 가격은 60만원이다. 이 경우 여러분은 두 사람에게 50만원씩 균등하게 나누어주는 방법과 60만원을 일단 장애인에게 지급한 후 나머지 40만원을 두 사람 사이에 똑같이 나누는 방법 중 어느 쪽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 자유’를 더 잘 보장한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은 균등배분이 ‘소비진작’이라는 면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소비가 진작되어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내년에는 장애인에게 보행기도 사주면서 두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나누어줄 수도 있다. 반면 보행기는 직접 소비가 불가능한 내구재이므로 소비진작 효과는 없을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이 주어진 돈의 40%를 소비에 사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비장애인은 50만원 중 20만원을 소비하지만, 보행기가 없는 장애인은 50만원을 받아도 소비활동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총소비는 20만원이다. 반면 장애인에게 보행기를 사주고 남은 돈을 20만원씩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총소비는 40만원이 된다.

1조원을 1000만명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면 개개인에게 10만원을 지급할 수 있지만 이를 그 사회의 가장 어려운 사람 100만명에게 나누어주면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다. 후자의 방식을 채택하면 100만명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지만 전자의 방식대로는 900만명은 10만원의 용돈을 얻고 100만명은 굶어 죽을지 모른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100만원을 지급해 줄 수도 있지만 이 경우 필요한 예산은 10조원으로 늘어나야 한다. 1조원으로도 100만명이 굶어 죽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1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쓸 이유가 있을까?

차등지급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자격심사라는 개인에게 ‘굴욕적인’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하지만 현대의 자격심사는 많은 경우 ‘굴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차등지급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문제라면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예컨대 소득·소비 자료를 한곳으로 종합해 실시간 소득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어떤가? 또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어 소득이 매우 낮거나 없는 사람도 국세청에 소득세신고를 하도록 만드는 ‘전 국민 납세신고제도’를 설계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제도 설계는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현실의 많은 복지 프로그램들은 비록 그것이 ‘보편적’ 프로그램인 경우에도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보편적 프로그램들조차 ‘차등적으로’ 혜택을 제공한다는 말이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와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전 국민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이전지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일자리수나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데에는 기술발전보다 노동·자본 간의 정치경제적 힘 관계가 훨씬 더 중요했다. 동일한 기술과 생산방식을 사용하면서도 그 기술이 일자리와 노동시간에 미치는 영향은 나라마다 시기마다 다르지 않았나? 경제학자 케인스는 노동생산성의 비약적 발전으로 21세기 초에는 ‘우리의 손주들’이 주 2일만 일하리라고 90여년 전에 예상했는데 그의 손주들인 우리는 여전히 주 5일을 일하고 있다.

현 복지제도들은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각인으로부터는 소득획득 능력과 자산보유 현황에 따라 차등적으로 걷고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차등적으로 나누어 주고 있다. 현존하는 제도가 완전한 평등을 꾀할 목적으로만 설계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불평등을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간의 불평등이 변화하면 이들 간의 힘 관계도 변화하고, 이는 양자 간의 불평등을 줄이는 데 되먹임 효과를 갖는다. 반면 소득이나 자산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동일한 액수를 나누어 주면 불평등은 바뀌지 않는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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