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낯선 사이]선한 영향력의 모순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2021. 1.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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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권력을 사회현상으로 파악한 푸코의 입장을 차치하면, 권력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개념, 영향력(파워)이다. 요즘에는 인플루언서라는 말로 대중화되었다. 또 하나는 대안적 개념으로서 책임감이다. 파워와 책임감은 획득 경로나 실천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열망하는 ‘강하고 선한 리더’는 출현하기 어렵다. 선한 사람이 원칙을 지키면서 권력자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회라면, 이미 그런 리더가 다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당대 우리 사회에서 선함은 약함을 의미한다. 착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선의를 비웃는다.

이전 시대에는 부자가 여러 명이었다면, 신자유주의의 특성인 양극화 시대에는 큰 부자 몇 명이 자본주의를 좌우한다. 나로선 문해력이 부족한 뉴스, 2012년부터 억만장자 지수(Bloomberg Billionaires Index)를 발표해온 블룸버그 통신은 며칠 전 세계 최고 부자 순위를 발표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1위,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2위다. 두 사람의 자산평가액만 합쳐도 미국인 1억명에게 2000달러(218만원 정도) 수표를 지급할 수 있다. 1억명에게! 두 사람의 재산 증가분을 합치면 217조원으로, 139개국의 국내총생산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산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한국의 최고 부호 다섯 명(이건희, 서경배, 이재용, 정몽구, 최태원)의 재산 합계는 40조원으로, 북한의 지난해 국내총생산보다 18.3%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자본주의에 절망한다 해도, 이들 부자가 마음을 바꾸면 인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자산은 복잡한 개념이기 때문에 이 돈이 모두 현금은 아니겠지만, 나는 잠시 이들의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바꾸는 상상에 잠겼다.

혁명이 그토록 어려울 필요가 있는가. 돈이 권력인 시대, 선한 영향력이 삼라만상에 퍼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선함은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개인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고, 영향력은 ‘구조주의’적 차원에서 획득(대물림)되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구조주의의 충돌, 선한 영향력은 대중화되기 어렵다.

똑똑하면서도 착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 대통령이 그렇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직장 상사나 아파트 관리소장이라도 이런 분이 있다면, 살 만한 세상이다. 한마디로, 훌륭한 사람이 나서서 알아서 정의를 실현해주고, 나는 내 일상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후보들의 구호 “일꾼”이, 이런 사람 아닌가. 그러나 영화감독이든 지자체장이든 팀장이든 지도교수든, 선하고 능력 있는 리더는 많지 않다. 현실 정치권력에 가까운 인물들일수록 그렇다.

욕심 많은 이가 정치한다 나댈 때
국민에게 권한 받은 ‘선한 이’들이
권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큰 문제
권력 책임 지나치게 고뇌하는 건
개인적 성찰이 아닌 책임 방기다

요즘에는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이 등장했다. 청문회 도입으로 “장관 하면서 욕먹고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편히 살면서 아파트를 지키겠다”는 이들이다. 책임에 대한 부담과 겸손함 때문이 아니라 ‘돈과 가족의 계급 유지(자녀 교육)’를 중시하면서 편하게 살겠다는 신인류(?)다. 이런 이유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나 장관직을 사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관직이나 명예를 전부로 여겼던 입신양명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치가 아닌 것이다.

선한 영향력은 모순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분명 있다. 아마 백종원씨가 대표적일 것이다. 대한민국 ‘남편감’ 선호도 1위. 그는 전문성, 진정성, 원칙에 대한 비타협적인 자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모두 갖췄다. 무엇보다 그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히 아는 사람 같다. 공동체를 걱정하는 계몽적 인간이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나만 그럴까. 이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의 ‘공식’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종원씨의 레시피는 그가 실제로 자신만의 오랜 노력과 시간으로 체화한 아이디어다. 오랜 가사노동자인 내 입장에서 봐도, 그는 “당면을 넣은 김말이 튀김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이다. 그는 파는 음식이든, 집밥이든 음식 만드는 사람을 존중한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의 선한 영향력의 절정은 ‘골목 식당 살리기’와 더불어 자신의 인맥을 활용, 팔지 못한 신선한 농산물을 유통업체, 식품 제조업체에 연결해주었을 때다. 그가 ‘전화 한 통으로’ 생산자의 시름을 덜고 소비자에겐 저렴한 상품을 공급하는 핫라인 역할을 할 때, 나는 거의 힐링이 될 정도였다. 사실 한국 농업의 큰 문제는 고령화, 수입 농산물이 아니다. 유통 문제가 핵심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할 것이다. 그가 다시마와 감자를 팔아줄 때, 생산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백종원’은 한 명이다. 선한 영향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오히려 ‘나도 실력과 인기를 모두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의 사회구조를 부채질할 뿐이다. 백종원씨 자신은 연예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그는 경영인이자 방송인이다. 션, 정혜영씨 부부나 유재석, 정우성, 차인표, 권해효씨와 같은 이들도 선한 영향력을 대표하는 인사들이다. 즉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연예계 종사자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등장한 ‘우월한 인류’, 일종의 ‘엄친아’ 개념에 가깝다.

정치인이나 기업가 중에는 거의 없다. 왜일까? 선한 영향력은 대중과 소통하는 일환으로서, 그 자체로 연예인들의 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자본가는 사람들의 욕을 먹더라도, ‘그냥 영향력’, 즉 권력 자체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한마디로, “당선이 되어야 그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강하고 선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강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품위를 지키면 유약,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이들은 과정이 어떻든 강한 이미지를 어필해야 한다. 물론 국민을 상대로 내전을 벌인 전두환씨 식의 폭력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나쁜 국민’ ‘자잘하게 나를 괴롭히는 인간들’을 제대로 처벌해주는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다. 이 과정이 반드시 합리적이거나 선할 수는 없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 국가의 역할은 절실하게 되었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글로벌 경제가 기존 국가의 역할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그들의 보편주의는 ‘틀렸다’. 로컬의 상황, 우리의 투쟁과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16년 집권한 필리핀의 16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그 자신이 범죄자인지, 범죄자를 잡는 사람인지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막말과 막무가내는 기본. 살인, 성폭력, 마약 범죄자나 코로나19 봉쇄령을 어긴 시민에게 즉각 처형을 명령한다. 필리핀에 주둔한 미군에는 “백신 안 주려면, 필리핀 떠나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한국 사회라면 감당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러나 필리핀 국민 대다수는 물론 평화운동가까지 그를 지지한다. 내가 아는 필리핀의 수녀님은 “그는 문제가 많지만, 악질 강간범 재판 과정에 세금을 사용하기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이 돌아가길 원한다”고 말해서 놀랐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녀와 비슷했다. 글쓰기가 생계인 내게서 원고지 장당 8.8%의 세금을 떼어가다니! 그 돈이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조두순’에게 쓰인다고 생각하면 나도 강력한 지도자가 ‘나의 억울함’을 해결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모든 일상을, 인생을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국민이 쥐여준 권한을 갖고 있는 ‘선한 이’들이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다. 욕심 많고 무능한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댈 때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 모두 권력에 미쳐 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권력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기피하는 이들도 많다. 나는 노무현 정부 당시, 히말라야로 도망간(?)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은 대체로 ‘점잖은’ 인물이어서, 권력이 부여한 책임을 지나치게 ‘고뇌’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고, 일단 책임 방기다. 어려운 시절, 있는 권력이라도 제대로 행사하는 지도자가 많기를 바란다.

정희진 여성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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