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현장 의사의 삶 오롯이.. "詩도 의술도 사랑이 밑바탕"

김용출 입력 2021. 1. 1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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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시인'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
신작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 펴내
1985년 '금주 선언' 등 발표하며 등단
진료실서 환자와 소통 진솔하게 기록
개인의 힘겨운 고통 따뜻하게 바라봐
"詩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의사와 시인 다르지만 인간애 공통점"
“그러나 병원은 바보입니다. 내가 오늘 환자와 나눈 이야기는 모릅니다.// …우리가 진료실에서 비밀스럽게 나누었던 이야기는 어느 의학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 않은 말입니다. 더구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진료비 산정할 때도 반영되지 않는 것이고, 국립암센터 의사 업적평가에도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의사의 업적 1’)

최근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선임된 서홍관(63) 시인이 의사의 ‘일’과 시인의 ‘작업’을 농밀하게 조화시킨 네 번째 신작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창비)를 상재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인간의 사랑’이라는 바늘을 사용해 의술이라는 이성의 영역과 시작(詩作)이라는 감성의 영역을 교직했다. 이는 그가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인제의대 교수를 거쳐 17년간 재직한 국립암센터의 원장에 최근 부임한 베테랑 의사인 데다가 동시에 시집을 3권이나 펴낸 시인이었기에 가능했다. 11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서 시인을 만났다.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제2부에서 의료 현장과 의사의 삶을 오롯이 담았다. 특히 ‘의사의 업적’ 연작은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과의 이야기와 소통을 진솔하게 기록한 시편이다. 고혈압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외래를 오는 환자는 한참 신세타령을 늘어놓곤 “아이고, 제가 이런 말을 어디서 하겠어요. 선생님한테나 하지. 이제 이런 말 하고 나니 조금 시원해요”(‘의사의 업적2’)라며 툴툴 털고 일어서는 모습이란.

시집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등장한다. 학교도 못 가고 앙코르와트에서 팔찌 앵벌이를 하는 캄보디아 소녀(‘앙코르와트 소녀’), 학교에 가고 싶어 허드렛일을 감내하는 네팔 소녀(‘네팔 소녀 돌마’),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책 뒤에 적어놓은 초등학교 친구(‘옥수수 식빵’) 등. 개인들은 저마다 고통을 가진 힘겨운 존재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의 시들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요즘의 시들과는 거리가 멀다. 덧붙이고 빼고 할 게 없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얘기하는 미덕”(신경림)을 갖췄다. 오죽하면 방민호는 시집 뒤편의 ‘해설’에서 톨스토이의 ‘전염 문학론’을 거론하며 “어떻게 하면 이 시들을 되도록 어렵게 풀이할 수 있느냐” 하는 “해설 초유의 곤란”을 겪었다고 토로할까.
“저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독자도 기쁨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슬픈 일이 있으면 독자 역시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써야지요.”

전북 완주 출신의 시인은 서울대 의대 문예부 시절 틈틈이 시를 쓰다가 우연히 신경림의 눈에 띄어 시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85년 창작과비평사의 ‘16인 신작시집’에 ‘금주 선언’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하지만 등단 당시 의사의 세계와 시인의 세계가 너무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 당황했다.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은 완전히 상반된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의사는 많은 지식이 필요해 다른 분야에 눈 돌릴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처럼 느껴졌지만, 시는 가끔 무모하거나 비이성적인 것도 용납하는 감정의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의사가 돼 환자를 진료하다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의사로 37년을 살다보니, 의사와 시인의 길은 다른 길이 아니란 걸 알게 됐지요.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모두 인간의 사랑으로 통일되더군요.”

시인은 등단 이후 시집 ‘어여쁜 꽃씨 하나’, ‘지금은 깊은 밤인가’ ‘어머니 알통’, 산문집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등을 펴냈다. 의료 이야기는 첫 시집부터 꾸준히 담겼고, 세 번째 시집 ‘어머니 알통’은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시가 여러 편 담겼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활동 방향을 묻자, 시인은 ‘솜다리꽃’의 마지막 대목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는 시구를 꺼냈다. 솜다리꽃은 오스트리아에서 ‘에델바이스’라는 나라꽃이고, 설악산에선 기념품으로 팔린다. 하지만 몽골에선 말의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몽골에 갔다가 솜다리꽃을 보았다./ 들판에 숱하게 깔려 있었다./ 거기서는 나라꽃도 아니고 기념품도 아니었다./ 말들이 짓밟다가 뜯어 먹는 간식거리였다./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었다.”(‘솜다리꽃’)

‘그렇게 살아서 안 될 것도 없다’는 의미를 조금 설명해달라고 하자, 시인은 “사람들은 흔히 아름답고 대단하고 부귀한 것만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찰라 속에서 먼지처럼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광대한 우주와 장구한 역사에 비교하면 먼지처럼 비루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깨달음의 뒤에 오는 도저한 허무를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시인은 이때 사랑할 줄 아는 존재라는 인식만이 허무를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무를 초극한 뒤 삶과 생명의 새로운 의미를 퍼 올리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그날 강추위의 옆구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오늘도 먼지처럼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따라/ 해가 진다.// 지구에 올 때 화진포의 청둥오리나/ 선유도의 산나리꽃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무거운 짐은 없었으련만.// 내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고,/ 다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래,/ 지구에 내려서 행복했던 순간도 없진 않았지.//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나는 고통 속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것이다.”(‘별을 기다리며’)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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