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통보와 다름없는 일방적 전환배치

이수운 2021. 1. 1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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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가 사업 방향을 전환할 테니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라고 갑자기 통보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이니 갑작스러운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묵묵히 다니거나 이직을 준비할 것이다.

회사에 사업 방향 전환의 이유를 묻거나 직무 전환 시 나의 의사가 존중되지 않았음을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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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어느 날 회사가 사업 방향을 전환할 테니 새로운 직무를 수행하라고 갑자기 통보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회사란 원래 그런 곳이니 갑작스러운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묵묵히 다니거나 이직을 준비할 것이다. 회사에 사업 방향 전환의 이유를 묻거나 직무 전환 시 나의 의사가 존중되지 않았음을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은 거의 없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전환배치는 개개인의 노동조건을 크게 변경시켜 노동자에게 큰 스트레스와 부담을 준다. 때로는 개인의 행복추구권까지 침해한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없다면 ‘경영,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노사 간 논의의 장조차 마련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IT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전환배치’는 그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는 고용불안의 다른 이름이다.

11월 중순 네이버의 손자회사인 라인업(네이버 계열사인 라인플러스에서 게임 사업을 목적으로 2017년 분사)에서 일방적으로 전환배치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임 사업을 위해서 분사했고,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모인 인력이 대다수인 이 회사는 분사 3년 만에 게임 사업을 철수하고 전혀 다른 분야로 전환하겠다며 직무 변경을 통보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보면 같은 개발 업무, 디자인 업무처럼 보일지 몰라도 게임 분야의 개발, 아트디자인 등 업무는 특수화·전문화된 분야다. 길게는 10년을 해당 업무만 하던 사람에게 핀테크, 아바타 콘텐츠 개발 등의 분야로 옮기라고 하는 요구는 적응의 어려움을 넘어서 한 사람이 해당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과 자부심을 부인하는 처사다. 같은 의사라고 해도 외과 의사의 일을 정신과 의사가 하루아침에 맡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임 관련 업무를 지속하길 원한다면 각자가 시안을 만들어서 살길을 찾으라’는 불친절한 대책은, 누군가에게는 ‘퇴사’ 통보와 다름없었다. 회사는 직무 변경 조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오직 개인 면담을 통해서 전환배치를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불확실한 미래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대가는 인정받지 못한 채 회사의 잘못된 결정과 방향성에 대한 책임은 분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래도 되는 일’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되는 일’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일은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별도의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모회사인 라인플러스와, 라인플러스의 모회사 네이버는 단체협약을 통해 전환배치 시 회사가 당사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모기업의 안전장치가 자회사나 손자회사에 적용되도록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네이버 노조는 모든 계열사와 자회사, 손자회사를 포괄하고 있지만 단체협약은 각 기업이 체결하고 있다). 본교섭을 시작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에도 회사는 전환배치 계획을 밝힌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아 조직 인사발령을 진행하며 사업 분야를 변경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동료들이 불안감이나 무력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프로젝트 중단을 이유로 한 일방적인 ‘전환배치’는 그간 IT 업계에서 ‘그래도 되는 일’로 치부되어왔다.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은 이번 교섭을 통해 전환배치 시 노동자의 의견이 존중되고, 고용이 보장되는 안전장치를 만들려 한다.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행복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할 때 동료를 지키는 것이 노조의 존재 이유이고, ‘그래도 되는 일’을 ‘그래서는 안 되는 일’로 만드는 것이 노조의 길이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네이버지회 공동성명이 단체협약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에 감히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이수운 (화섬식품노조 네이버지회 공동성명 홍보국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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