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정리해고 비극 되풀이될 것인가

차형석 기자 입력 2021. 1. 13. 01:53 수정 2021. 3. 2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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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가 11년 만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009년 4월 임직원 37%가 정리해고되었고, 77일간 파업했던 노조는 강제진압되었으며, 해직자와 가족 30여 명이 숨졌다. "지금은 여건이 더 나쁘다."
ⓒ연합뉴스

지난 12월21일 쌍용자동차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금난 때문이었다. 쌍용차는 12월15일 JP모건, BNP파리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등 3개 외국계 은행의 차입금 600억원을 상환하지 못했다. 12월21일에는 산업은행이 쌍용차에 빌려준 대출금 900억원에 대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았다. 이미 지난 7월에 산은이 차입금 중 900억원의 만기를 12월21로 한 차례 연장해준 바 있다. 이번에 산은은 외국계 은행의 차입금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대출 만기를 연장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이날 만기 연장이 되지 않으면서 쌍용차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이다.

쌍용차는 회생절차와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을 동시에 신청했다. 법원이 채권자들의 의사를 확인한 후에 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연기해주는 제도다. 서울회생법원은 오는 2월28일까지 시한을 주었다. 이 기간 쌍용차의 채무는 동결된다. 쌍용차는 대출금 상환 부담에서 벗어나 채권자, 대주주 등 이해관계자와 조정에 나선다. 최소한 2월 말까지는 시간을 벌어둔 셈이다(법원의 판단에 따라 ARS 기간이 7개월까지 연장된 사례가 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11년 만이다. 2004년 10월 쌍용차를 인수했던 중국 상하이차가 2009년 1월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상하이차는 인수 때부터 기술만 빼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먹튀’가 현실화되었다. 2009년 4월, 당시 쌍용차 전체 임직원의 37%인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발표되었다.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을 했으나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끝이 났다. 2009년의 정리해고는 해직자와 가족 30여 명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최대주주 마힌드라그룹(74.65% 지분 소유)이 2010년 11월에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2011년 3월에 회생절차가 끝났다.

인도의 마힌드라그룹이 인수한 이후 쌍용차는 2016년에 매출 3조6285억원, 영업이익 279억원으로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5년에 내놓은 신차 소형 SUV 티볼리가 인기를 얻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이 소형 SUV 신차를 경쟁 상품으로 내놓으면서 ‘티볼리 효과’는 이어지지 못했다. 쌍용차는 2017년 1분기(1~3월)부터 2020년 3분기(7~9월)까지 1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적자를 보여왔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가 조성한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에서도 제외되었다.

코로나19로 수출이 감소하자 국내 자동차업계는 내수에 집중했다.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매개로 신차 출시와 다양한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했다. 11월까지 국내 완성차업체의 내수시장 판매량은 총 147만7971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다.

국내 5개 완성차업체 중에서 쌍용차만 내수 판매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쌍용차의 판매량은 9만6825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해 20.8% 줄었다. 내수는 7만943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8.3%가 줄었고, 수출은 1만7386대로 30.7% 감소했다. 2020년 쌍용차 판매 실적은 10만 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흑자였던 2016년에 15만5844대를 판매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2009년 쌍용차 법정관리 때 쌍용차의 손익분기점을 14만 대(연간 판매량) 수준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그때보다는 인력이 늘어 수치가 올라갔을 것이다. 자동차업계는 통상 3~5년 주기로 신차를 출시해야 하는데 쌍용차는 티볼리 이후에 이렇다 할 신차를 내놓지 못했다.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차, 인도 마힌드라그룹으로 넘어가면서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가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다. 내수와 수출에서 모두 고전했다”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마힌드라그룹은 기술 수준이 쌍용차보다 못한 로컬 제작사다. 그래도 마힌드라그룹을 통한 인도 시장 진출과 판매를 기대했는데 수출에서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2010년 11월23일 인도의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2011년 3월 회생절차가 끝났다.

키는 모기업 마힌드라가 쥐고 있다

2020년 1월만 해도 마힌드라그룹이 ‘의지’를 보였다. 2022년 쌍용차 흑자 전환계획을 발표하며 2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인도에서의 자체 사업이 위축되자 4월에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8월에는 ‘새 투자자가 나오면 대주주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발표하며 새 투자자를 물색해왔다.

현재 마힌드라그룹은 미국계 자동차 유통업체 HAAH오토모티브 등과 매각 협상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산 자동차 등을 자신들의 미국 내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딜러 회사’다(이 회사는 중국의 체리자동차가 지분을 가진 회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HAAH 측은 ‘중국 체리자동차와 기술협력 계약만 맺고 있고 지분 관계는 없다’고 반박했다). HAAH 측은 쌍용차에 대한 실사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의 한 매체는 ‘HAAH오토모티브가 2억5800만 달러에 일부 지분 인수 의향을 냈지만 마힌드라가 전량 매각을 제안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ARS 기간에 이해관계자 사이 합의를 내놓지 못하면 법원 결정에 따라 회생·정리 절차에 들어간다. 법원이 회생 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판단하면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끌어올리고, 청산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면 폐업 등 기업정리 절차에 들어간다. 완성차업체의 경우 연관된 전후방 산업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법원이 청산을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ARS 기간에 별다른 소득이 없이 법원의 판단에 따르게 된다면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악몽 같은 ‘2009년 이후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벌어놓은 시간’ 동안 지분매각 협상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회생절차 신청 이후에 주요 협력업체가 납품을 중단해 공장 가동이 멈추기도 했다. 쌍용차로서는 매각 협상을 지켜보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다.

김필수 교수는 “지금이 2009년보다 여건이 더 나쁘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9년만 해도 쌍용차의 주력인 디젤차에 대해 우호적 정책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기차 등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한국GM은 산업은행이 2대주주였기 때문에 정부가 8100억원을 지원할 수 있었는데 쌍용차에는 산업은행 지분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지원을 하려면 마힌드라가 명분을 마련해줘야 한다. 키는 모기업 마힌드라가 쥐고 있다”라고 말했다.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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