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맞설 때 신이 필요하다

박해성 2021. 1. 1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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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웹툰 〈극락왕생〉이 책으로도 나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순한 힐링물은 아니다.

"싸우는 사람에게는 순수가 필요하다. 굴종하지 않을 무결한 용기는 응당 고갈되어서는 아니 될 고결한 기질이다. 순수를 채우기 위해 신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신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이 작품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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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웹툰 〈극락왕생〉이 책으로도 나왔다. 작품을 읽으면서 고3 수험생 시절이 떠올랐다. 학교 바로 옆에 큰 절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남아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보면 입시제도에 대한 분노와 내 보잘것없는 성적에 대한 좌절이 섞여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오곤 했다. 그럴 때면 몰래 담을 타고 절로 넘어가 대웅전 안에 모셔진 불상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번뇌의 크기만큼 가장 치열하게 구원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했던 시기다.

〈극락왕생〉은 오픈 플랫폼 ‘딜리헙’에 연재되었다. 상업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연재하고 싶은 작가들이 선택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극락왕생〉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대형 플랫폼에 연재되는 작품들과 비교하면 화당 가격이 높았고 기다렸다가 무료로 볼 수 있는 작품도 아니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귀신이다. 옥수역에 출몰하며 자신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에게 노래 ‘낭만고양이’를 부르라고 시키는 귀신. 지옥계에서 지장보살을 모시는 호법신인 ‘도명 존자’는 그 귀신을 잡기 위해 인간계로 나가지만 관할구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세음보살에게 불려가 혼난다. 관세음보살은 도명에게 미션을 준다. 귀신이 인간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1년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그가 선업을 쌓도록 도와 극락왕생하게 만들 것. 그렇게 귀신은 열아홉 살 고3 수험생(!) ‘박자언’으로 돌아가 도명과 함께 다시 한번 삶을 살아가는 모험을 시작한다. 사소한 다툼과 오해로 마음의 문을 닫은 친구·가족들과 화해하기도 하고, 한때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방황하는 귀신들이 악행을 하지 못하게 돕기도 한다. 좌충우돌하면서도 선한 의지를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많은 독자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순한 힐링물은 아니다. 박자언 또한 그저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주인공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되살아나게 된 데에는 보살들의 꿍꿍이가 있다고 여기며 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에도 불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겪는 중이고, 자신의 운명을 그저 앉아서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뿐이다. “싸우는 사람에게는 순수가 필요하다. 굴종하지 않을 무결한 용기는 응당 고갈되어서는 아니 될 고결한 기질이다. 순수를 채우기 위해 신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신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 싸우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이 작품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즉 〈극락왕생〉은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박해성 (만화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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