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한·일 '시즌 2' 정권의 추락 패턴

서승욱 입력 2021. 1. 13. 00:21 수정 2021. 1. 13. 06: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스가 정권 동시 위기 맞아
노무현과 아베 실패에서 못 배운 탓
시즌1 장점 사라지고 약점만 심화
서승욱 정치팀장

‘정치인 노무현’을 깊숙이 취재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처럼 머리에 박혀있는 장면이 있다. 2002년 8월 부산 해운대기장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다. 험지에 출마한 측근의 지원 사격에 나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노무현이 동행 기자들과 감자탕집에서 마주 앉았다. 당시엔 ‘노풍’이 한풀 꺾이며 지지율은 하락을 거듭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나~”라고 자작곡 비슷한 노래 가사를 흥얼댔다. 기자들에게 손수 젓가락을 나눠주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불리한 보궐선거 판세 등으로 만찬 분위기는 뜨지 않았다. 그 날 나눈 얘기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부끄러움 많은 대통령 후보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악전고투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승부사의 이면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여 뒤 그는 온갖 우여곡절 끝에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비극적인 결말만큼이나 노무현 정권 5년은 파란만장했다. 2004년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날 그가 했다는 “내 정치가 과격한가 보다. 이렇게 자꾸 코너에 몰리는 걸 보면…”이란 말 그대로였다. 노무현식 정치에 대해선 “개혁과 반개혁으로 국민 편가르기”란 비판이 거셌다. 하지만 참모들은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한 대통령”이라고 증언한다. “일생의 목표는 국민통합”이란 말을 자주 했고(윤태영 『기록』),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어선 안 된다’란 고민을 항상 달고 살았다는 것이다. (윤태영 『바보, 산을 옮기다』)

서소문 포럼 1/13

그는 ‘친미 보수’에 가까운 김희상(국방보좌관)과 반기문(외교보좌관)을 청와대에 발탁해 진보색 짙은 각료·참모들을 견제시켰다. 보수라도 실력파는 주요국 대사에 기용했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처럼 ‘친노’가 싫어하는 정책도 필요하면 결단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럼에도 그가 원한 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넘기 힘든 벽이었다. 200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도 대통령을 해보니까, 역시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특별하고 모든 국민들이 협조를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일이 대통령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더군요.”

누가 뭐라 해도 ‘노무현 시즌2’가 분명한 문재인 정권의 5년 차가 우울하게 시작됐다.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최저치, 부정평가는 최고치가 연일 경신된다. 부동산 정책 실패, 국민을 패싸움판으로 밀어 넣은 ‘추미애-윤석열’ 전쟁에서의 패배가 결정타였다.

사실 시즌2가 성공하기 위한 요건은 간단하다. 시즌1의 장점은 살리고, 약점은 보완하면 된다. ‘모든 국민의 협조’를 받지 못했던 시즌1을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갔다. 열성 지지자들의 무도한 행태도 “양념”이라고 보호를 받았다. ‘지지자들만의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고민은 설 땅이 없었다. 국정의 균형을 위해 반대편 인사를 등용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3년 8개월 전 취임사에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오늘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이란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도 많다. 지지율 하락 뒤 “통합” “포용”을 외쳐도 힘이 실리기 어렵다. 시즌1엔 ‘검사와의 대화’로 젊은 검사들과 맞장을 뜨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결기와 정면승부가 사라진 시즌2에선 ‘추-윤 갈등’에 대한 지루한 침묵신으로 대체됐다. 이러다간 전편보다 더 혹독한 흥행 성적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흥행에 실패한 시즌2는 한국뿐 아니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진행 중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아바타로 불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에서 민심이 떠나고 있다.

60~70%로 출발한 지지율이 취임 4개월 만에 반토막이 났다. 이유는 한국과 판박이다. 아베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했다. 7년 8개월에 걸친 아베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과의 소통 부족이었다. “일은 잘하는데 국민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늘 따라다녔다. 서민 출신 총리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가였지만, 소통과 융통성은 오히려 ‘도련님 출신’ 아베만도 못했다. 일본학술회의 신규 회원 임명 때 반(反)정부 성향 교수 6명을 탈락시켰다. 국민들에겐 회식 자제를 요청했지만 본인은 7명이 모여 고급 스테이크 망년회를 했다. 일본인 지인들은 “차라리 아베가 그립다”고 말한다. 시즌1의 장점은 사라지고 약점만 심화되는 것, 한·일 양국의 시즌2 정권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위기를 맞았다.

서승욱 정치팀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