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중대재해법 과감하게 뜯어 고치자

장정훈 입력 2021. 1. 13. 00:18 수정 2021. 1. 13.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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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훈 산업1팀장

산업현장이 연초부터 국회가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뒤숭숭하다. 기업이든 노동자든 산업현장의 안전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그 안전을 담보하겠다며 국회가 만든 법에는 모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사실 우리 산업현장은 한 해 공식 집계로 약 800명, 비공식 집계로 약 2000명이 사망하는 무서운 고질병에 걸려있다.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숨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또 해마다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현실을 바꿔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노사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노동 관련법은 특히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는 법을 만들려면 치열한 논쟁과 숙련의 시간이 필수다.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 복수 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을 놓고 시행 유예라는 노사 간 합의를 보는데도 꼬박 4년이 걸린 경험을 갖고 있다. 국회가 이번에 벼락치기로 만든 중대재해법과 유사한 법안을 갖고 있는 영국만 해도 합의를 도출하는 데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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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그런데 노사 관련법을 만드는 데 속전속결로 거침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청년 김용균이 사망한 지 16일 만에 일사천리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산안법 적용 노동자 범위를 하청업체 직원까지 넓히고 사업주의 처벌을 대폭 강화한 게 전부다. 하지만 사업주에 대한 구체적인 의무 규정도 없이 형벌만 높이다 보니 현장에선 지키려야 지킬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 중대재해법 역시 발의된 지 4년이 됐지만 변변한 논의라고는 공청회 한 번 한 게 전부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산업현장에서는 벌써 산안법처럼 누가 지키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중대재해법은 산업현장에 일어나는 중대재해와, 기업의 제조물이나 공중이용시설을 이용하다 발생한 시민재해가 뒤섞여 법의 본래 취지부터 헷갈린다. 또 산업현장의 중대재해로 범위를 좁혀도 중대재해의 정의부터, 책임 소재, 책임자 처벌 수위, 적용 사업장 범위 등 어느 것 하나 노사가 수긍하는 조항이 없다.

국회는 이번에도 산업현장에서 사망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구체적인 의무를 규정하는 데 실패했다. 또 노동자 역시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어떤 안전의무를 지켜야 하는지도 정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면 누구의 책임이고, 그 책임자를 어떤 수위로 처벌할지도 다시 합의를 봐야 한다. 국회가 노사의 의견을 청취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본연의 역할을 소홀히 한 결과로 빚어진 일이다. 국회는 코로나19의 불확실성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산업현장에 더 이상의 혼란을 가중하지 말고 하루빨리 보완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장정훈 산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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