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3000
1956년 3월 3일 자본주의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자본주의의 꽃인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종목번호 000001인 조흥은행을 필두로 12개 기업이 상장하면서다. 개화(開花) 여건이 좋을 수는 없었다. 모종도 부족했고 밭은 척박했으며 햇볕도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증권거래 현장은 오늘날의 생선경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거래 희망자들이 거래소에 모여 매수·매도 가격을 부르고, 가격과 수량이 일치할 때 중개인이 나무 딱따기를 쳐서 매매 체결을 알리는 형태였다. ‘격탁(擊柝) 매매’라 이름 붙여진 이런 방식의 거래가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주가지수도 지금과 달랐다. 1964년 처음 발표된 주가지수는 미국 다우지수처럼 개별 종목들의 주가 평균을 지수화한 것이었다. 1972년 말에도 상장 기업 수가 66개에 불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형태였다. 그러나 고도성장과 함께 불과 6년 뒤 상장사 수가 356개로 폭증하면서 더 이상 증시를 옛 틀에 가둬둘 수 없었다.
그 결과 1980년 1월을 100포인트로 하는 시가총액 방식의 코스피 지수가 1983년 1월 4일에 등장했다. 이후 한국 증시는 본격적인 지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코스피 지수는 이른바 ‘3저 호황’과 올림픽 특수를 겪으면서 1989년 3월 31일 1000포인트를 돌파했고, 2007년 7월 25일에는 중국 특수와 함께 2000포인트도 뚫어냈다. 그리고 2021년 벽두에 신화 속 존재로만 여겨졌던 3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실물경제와 지수의 괴리 속에 찾아온 뜻밖의 선물에 대한 의구심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일단은 즐기고 볼 일이다.
하지만 장석주 시인의 시구대로 대추가 저절로 붉어졌을 리는 없다. 그 안에 담긴 태풍과 천둥, 벼락을 체감하지 못했던 초보 투자자들이 자칫 대추를 영원히 익어가는 존재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분명한 건 이번 대추 역시 언젠가는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낙과 전에 일부라도 따 두면 다음 추수 때까지 태풍과 천둥, 벼락을 덜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일 때문에, 때로는 욕심 때문에 꽤 오랫동안 증시를 곁눈질했던 이가 심상치 않은 최근 이틀간의 지수 변동폭과 그게 만들어낸 ‘장대음봉’들을 보고 노파심에 한 마디 남겨본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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