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임직원 1심 무죄

이희경 입력 2021. 1. 1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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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추가 독성 연구해 항소심 제출할 것"
인체에 유독한 원료 물질을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왼쪽)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업무상과실치사 등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1
인체에 유해한 원료물질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 임원진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공소사실의 전제인 제품 원료의 위해성을 입증할 수 없어 피고인들의 업무상 치사 혐의를 따져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이 원료물질에 대한 추가 독성 연구를 진행해 항소심에 제출하는 등 최대한 검찰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12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전 SK케미칼, 애경산업 임직원과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인 전 이마트 임직원, SK전 필러물산 대표 등에게도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료물질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이 사건 폐질환 및 천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피고인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의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 및 사망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 및 나머지 쟁점들 역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증명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였고 이를 바라보는 심정은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재판부가 2년 동안 심리한 결과 CMIT 및 MIT 살균제는 유죄판결을 받은 PHMG(옥시 제품 원료) 등과는 성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환경부는 종전 여러 실험에서 폐섬유화가 확인되지 않자 2018년 8월 노출을 높이고 시간을 늘려 CMIT·MIT 흡입독성실험을 추가로 했다”며 “833배까지 설정해 반복한 실험에서 폐섬유화 악화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앞서 홍 전 대표는 애경산업과 함께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해 판매하면서, 흡입 독성 원료의 시험과 같은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위반해 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19년 5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안 전 대표는 SK케미칼에서 원료를 공급받아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해 판매하는 과정에서, 원료 물질인 CMIT와 MIT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9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2019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임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를 받은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가 해당 선고 결과를 부정하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판결에 대해 환경부는 판결문을 분석한 뒤 추가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환경부는 2012년 9월 CMIT, MIT를 유독물질로 판단한 바 있다. 또 현재 CMIT/MIT 함유제품의 단독 사용자에게서 발생한 폐질환이 옥시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폐섬유화)인 것을 근거로 위해성을 인정, 피해자 137명에게 구제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판부가 원료물질의 노출 정도, 기도와 폐포에 얼마나 흡수되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따져본 것 같다”며 “어느 과정을 인정하지 않았는지 최대한 살펴본 후에 관련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가습기메이트는 1994년 출시돼 판매 중단된 2011년 8월까지 모두 200만개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사상 최대 규모의 환경 참사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990만여개의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됐는데, 드러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 전체 피해자는 최대 95만여명, 사망자는 2만여명(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추산)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지난 2011년 4~5월 갑자기 출산 전후 산모 8명이 정체불명의 폐 질환을 호소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 당국의 조사 이후 그 해 11월 발병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가 지목됐다. 살균제 성분이 가습기 내에서 잔류하고 있다가 가동과 동시에 공기 중으로 펴진 뒤 폐 속으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당국은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 등 6개 제품에 수거명령을 내렸다.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사망한 유족 등이 검찰에 옥시 등 판매업체를 고발했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 수사는 일반 형사사건으로 분류됐고, ‘역학조사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한부 기소 중지됐다.

옥시 등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이 꾸려지면서다. 검찰은 그해 11월까지 옥시, 롯데마트 등 업체 대표와 임직원 등 21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했다. 옥시레킷벤키저 신현우 전 대표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이 확정됐다.
사진=뉴시스
검찰의 2차 수사 대상이 옥시였다면 2019년 시작된 3차 수사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검찰이 2차 수사에 나선 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등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됐던 성분 외에 SK케미칼이 만들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의 성분인 CMIT, MIT도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자료가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앞서 SK케미칼은 1994년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해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제품을 판매했고, 애경은 제품 판매를 통한 수익창출에만 신경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19년 사참위 청문회에서 SK케미칼은 최종현 전 유공회장 지시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흡입독성 실험이 나오기도 전인 1994년 11월 제품을 출시했고, 이듬해 7월 나온 실험 보고서도 무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애경 역시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자사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호흡곤란 등을 호소한 소비자 클레임이 981건에 달했지만 안전성 검토에 나서지 않고, 치약으로 교환해주며 소비자 피해를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청문회에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이사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등 모르쇠로 일관해 피해자들의 비난의 받기도 했다. CMIT와 MIT는 미국에서 살충제 및 농약 제조할 때 주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 이전에 출시됐다는 이유로 유해성 심사를 20년 동안 면제받았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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