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산만한 인간, 호모 디스트랙투스

입력 2021. 1. 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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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러가면서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40분 내내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곳에 오래 집중하는 기회가 누적될수록 주의력이 늘어나는데 온라인 세계는 오래 집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에 필요했던 감정이 불안인데, 불안감을 통해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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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언젠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러가면서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40분 내내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인터넷 기사와 광고, 또 짧은 영상을 보다보니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피로는 풀리지 않았고 눈은 더 뻐근했다. 자주 있는 일이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지하철에서 의도치 않게 타인의 휴대폰을 보면 내 것만큼이나 분주해 보인다.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 안에선 어느 곳에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이렇듯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인간형을 두고 미국의 작가 윌리엄 파워스(William Powers)는 호모 디스트랙투스(Homo Distractus)라 이름을 붙였다.

휴대폰과 PC가 보편화되고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우리의 주의력은 몹시 짧아졌다. 한곳에 오래 집중하는 기회가 누적될수록 주의력이 늘어나는데 온라인 세계는 오래 집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뉴스, 사진, 영상을 쉽게 이동해 다닐 수 있는 데다가 자극적인 기사나 광고, 알고리즘에 이끌려 한곳에 머무를 틈이 없다.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듯 튀어 오르는 모든 광고와 영상물들을 때려잡고 나면 정신은 더욱 피로해져 있고 어쩐지 불안감이 느껴진다.

사실 주의력이 짧은 건 생존 기제다. 인간에게는 주의 산만함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원시시대에 적이나 짐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면 기민하게 주변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에 필요했던 감정이 불안인데, 불안감을 통해 도망가거나 싸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불안은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켜주는 본능적인 시그널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불안이 과도하게 높아져 있다는 게 문제다. 원시시대처럼 생명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불안은 더욱 높아져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다. 일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면에 시달리는가 하면 불필요하게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되어 만성 피로를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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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주의력을 기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곳에 집중하는 능력이 길러질수록 마음은 차분해진다. 심지어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몰입(flow)은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는 연구도 있다. 주의력을 기르는 대표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호흡명상인데, 눈을 감고 앉아서 복부나 코에 주의를 두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얼마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들거나 외부의 소음에 주의가 흩어진다. 하지만 매일매일 하다보면 주의력은 점차 길어진다. 운동을 꾸준히 할수록 근력이 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서 또한 집중력을 요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매일 꾸준히 책을 읽을수록 주의력이 좋아진다.

이렇게 주의력이 길러지면 마음의 안정은 물론이고, 모바일과 PC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어 일상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여기저기로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신의 주의를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둘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주의 산만함이 원시시대의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지켜주었다면, 디지털시대의 우리는 긴 주의력이 우리의 정신을 건강하게 지켜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에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종이책을 한 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지성을 쌓고 마음의 평안도 얻는 일석이조의 시간이 될 것이다.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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