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무죄..피해자 800명 있는데, 가해자 단죄 못했다
폐질환 등 유발한다 보기 어려워"
특정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메이트’ 제조·판매업체의 전직 대표와 임직원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피해를 신고한 이들의 수가 지난 10년간 800여명에 이르지만,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은 가습기살균제와 피해 사이에 엄격한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수사와 재판으로 ‘가습기메이트’ 제조·유통 과정에서 아무런 안전 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형사책임이 부정됐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는 12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에스케이(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홍아무개 전 이마트 상품본부장 등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옥시 등에 사용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달리 가습기메이트에 사용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MIT) 성분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폐질환과 인과관계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014년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백서에서 피에이치엠지에 대해 “명백히 위해하다”고 판단했고 이 성분으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피고인들에게는 징역 4년에서 6년이 확정됐다.
그러나 에스케이케미칼 등이 원료로 쓴 시엠아이티와 엠아이티에 대해 재판부는 “여러 기관에서 수행한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비강·후두 등 상기도 염증이 관찰되긴 했지만 해당 성분이 폐질환을 유발·악화시키거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입증한 시험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역학조사와 임상사례, 세포독성시험 및 빅데이터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립환경과학원의 2018년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규명을 위한 독성시험’ 결과를 주목했다. 동물실험 결과 권장사용량의 833배로 설정해 4주간 하루 20시간, 주 7회 빈도로 시엠아이티·엠아이티 성분에 노출시킨 실험에서 실험쥐의 폐섬유화 악화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엠아이티·엠아이티 성분 가습기살균제만을 사용해 폐질환 피해를 인정받은 피해자 11명의 사례도 살폈지만 “(환경부 산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의) 피해 판정은 피해자 구제 목적을 위해 폭넓게 피해자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 피해 인정 결과를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형사사건에 적용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따른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물실험 결과를 가지고 인체 유해성을 판단하는 게 합당한지는 피해 사례가 공식화한 2011년 8월 이후 논쟁이 계속됐다. 재판부는 “시엠아이티·엠아이티 성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도 접수돼 있고,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착잡하기 그지없다. 향후 추가 연구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원칙의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유해 물질로 인정된 피에이치엠지 성분을 사용해 제조·판매에 관여한 혐의를 받은 에스케이케미칼 전직 직원 4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해당 성분에) 흡입독성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보기 어렵고, 업무 과정에서 다소 부주의가 있더라도 판매 경위 등을 볼 때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과 상해 발생에 본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에스케이케미칼이 피에이치엠지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독성수치를 숨기고 허위 기재하고 성분 사용을 은폐하기 위해 실험보고서 제목을 조작한 사실도 충분히 입증됐다. (재판부가) 동물실험 결과와 인체 피해의 차이점을 간과하고 전문가들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심사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판정 결과도 부정했다”고 반발했다. 검찰은 즉각 항소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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