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괴롭힘 금지' 관리규약 실효성 높이려면..신고·조사과정 촘촘한 구성 여부가 관건
[경향신문]
5월6일까지 피해자 보호 등 의무화
국토부 마련 ‘준칙안’엔 기준 모호
괴롭힘 유형 등 구체적 제시 필요
단기고용 구조도 제도 안착 ‘장애’
아파트 단지마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경비원 괴롭힘 금지사항 등을 담도록 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5일부터 시행됐다. ‘갑질’에 노출된 경비원을 보호하는 데 진전된 조치지만, 전문가들은 괴롭힘의 구체적 유형이나 신고 후 해결 절차 등을 관리규약에 구체적으로 마련해야만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2일 개정안을 보면 앞으로 공동주택 관리규약에 아파트 경비원 등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 금지, 피해자 보호조치, 신고를 이유로 해고 및 불이익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
각 시·도지사가 관리규약 준칙을 정하면, 개별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준칙을 바탕으로 오는 5월6일까지 관리규약을 정해야 한다. 관리규약을 위반했을 경우 지자체가 사실조사를 거쳐 시정명령을 하고, 따르지 않을 때 최대 10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발 나아간 보호조치”라면서도 “실효성은 관리규약이 얼마나 촘촘하게 구성될지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지자체에 미리 전달한 ‘관리규약 준칙(안)’을 보면 ‘공동주택 내 괴롭힘’ 정의는 포괄적으로 담겼다. ‘지위 등 우위를 이용한 폭언·폭행’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으로 일상에서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기엔 다소 모호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처럼 어떤 행동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사례를 열거하고 주민들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매뉴얼에는 ‘욕설 등 위협적인 말’ ‘이유 없이 휴가·병가를 쓰지 못하도록 압력’ 등 보다 구체적인 괴롭힘 유형을 제시한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장은 “누가 신고하고, 누가 조사를 맡을지 등도 규약에 뚜렷하게 담겨야 경비원이 피해사실을 알릴 수 있다”며 간결한 신고·조사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1년 미만 단기계약이 반복되는 경비원의 열악한 고용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규약이 ‘껍데기’에 그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경비원 338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를 보면 94.1%가 ‘1년 이하’ 계약을 맺고 있었다. 3개월짜리 초단기로 계약한다는 응답도 21.7%였다. 이런 현실에서 경비원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단 두려움에 피해를 겪어도 규약대로 신고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준칙(안)에 따르면 경비원은 괴롭힘 사실을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이들은 사실상 경비원 ‘밥줄’을 쥔 주체다. ‘신고를 이유로 해고·불이익 금지’를 명시해도 단기계약은 재계약을 안 하면 그만이다. 괴롭힘에 대항해 근무장소 변경 등 보호조치를 요청하라는 것 역시 일자리를 다시 구하기 어려운 대다수 고령 경비원들에게 비현실적인 조항일 수 있다. 권 변호사는 “입주자대표회의도 ‘사용자’로서 입주민 갑질 등 문제에 함께 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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