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1심 '무죄' 이유는?.."CMIT·MIT로 인한 폐섬유화 입증 안 돼"

유설희 기자 2021. 1. 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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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메이트 1심 '무죄' 왜

[경향신문]

가습기살균제참사 전국네트워크 관계자들이 1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 대표 등의 판결 선고에 앞서 팻말시위를 하다 법원 관계자들에 의해 제지당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유죄 난 옥시싹싹 PHMG
성분 위해성에 많은 차이”
연구·인과관계 불충분 판단
공동개발 애경도 결국 무죄

인체 흡입 시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SK케미칼·애경산업 전 대표들에 대한 1심 법원 판단은 무죄였다.
 
가습기메이트와 옥시싹싹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2011년 세상에 알려진 지 9년여 만에 나온 판결이다. 법원은 옥시싹싹에 포함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인체 위해성이 명백히 입증된 것과는 달리 가습기메이트 주원료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위해성을 입증할 연구 결과가 현재로선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가 12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71),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62)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형사재판에서 요구하는 엄격한 유죄 입증을 뒷받침할 객관적 물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이뤄진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하더라도 CMIT·MIT가 폐질환 혹은 천식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그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CMIT·MIT 성분의 가습기메이트 사용과 피해자들의 폐질환·천식 등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SK케미칼이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을 검증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는지, SK케미칼과 가습기메이트를 공동개발한 애경산업을 공동정범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대전제라 할 수 있는 가습기메이트 사용과 폐질환 등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함에 따라 나머지 쟁점도 모두 무죄로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를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는 현재로선 없다고 봤다. 질병관리청,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부 등 여러 기관이 수행한 동물 흡입독성 시험에서 CMIT·MIT가 비강 등 호흡기에 염증을 일으킨다는 결과는 있지만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점이 입증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환경부가 여러 차례 시험에서 CMIT·MIT로 인한 폐섬유화가 확인되지 않자 4주간 하루 20시간·권장사용량 833배 사용 등 노출 조건을 극도로 높이는 시험을 했지만 이때조차 폐섬유화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관련 연구책임자인 이규홍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위원이 법정에서 “CMIT·MIT는 PHMG와 달리 폐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진술한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다만 동물실험을 수행한 일부 전문가들은 법정에서 ‘동물실험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사람한테도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사망 혹은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들이 사람에 대한 인과관계를 도출하기 위해 흡입노출방식이 아닌 기도 내 점적투여 방식(기도에 CMIT·MIT를 떨어뜨림)으로 조건을 변경하면서까지 실험을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진술을 중립적인 증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했다.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향후 추가 연구 결과가 나오면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르겠으나 현재까지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사법의 근본 원칙의 범위 내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판결을 놓고 고심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애경산업 전 대표들이 처벌을 피한 것과 달리 PHMG 성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신현우 전 옥시레빗벤키져 대표이사는 2018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을 확정받았다. PHMG 성분과 폐질환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 실시한 PHMG 흡입독성시험 결과를 보면 고농도에 노출된 실험 대상 일부가 사망하고, 중농도에 노출된 실험 대상의 폐에서 염증세포 증가 등이 관찰됐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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