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언제 죽을지 몰라" 재개발 지역의 고양이들

정원석 기자 입력 2021. 1. 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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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람들이 다 떠나고 폐허만 남은 재개발 지역에는 길고양이들만 남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철거 직전의 위험한 환경에서 추위와 눈발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오늘(12일) 밀착카메라는 이 고양이들과 이들을 살리려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정원석 기자입니다.

[기자]

서울 휘경동의 재개발 구역입니다.

아직 철거 전이라 빈집만 남아 있는데요.

사람이 없다 보니 골목에 눈도 아직 치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작은 발자국들 보이시나요?

재개발 구역에 남아 있던 길고양이들이 남긴 자국입니다.

이렇게 한파까지 몰아치는데 고양이들은 어떻게 겨울을 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폐가 안 종이박스와 담요를 모아 만든 보금자리들.

고양이 보호 활동가들이 챙겨준 밥과 물이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도 견디기 힘든 추위에 먹을 수 없게 됐습니다.

[물도 이렇게 꽁꽁 얼어서… (물 줬던 게 하루 만에?) 날마다 따뜻한 물을 주고 가도 이렇게 얼더라고요.]

아픈 고양이에겐 더 힘든 계절입니다.

[장위동 활동가 : 털이 다 구내염으로 침으로 범벅이 돼서 (몸이) 다 얼어버린 거예요. 몸으로 흘러내려요. 환경이 열악하니까 하나가 아프면 주변에 전염이 다 되는 거예요.]

철거가 예정된 곳이라 추위를 피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부서지고, 깨진 건물 잔해도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재개발지역은 이주가 끝나고 철거 절차가 시작되면 유리창을 깹니다.

여기도 보면 고양이 발자국 근처에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 있는데요.

고양이들은 발바닥이 연한 피부로 돼 있기 때문에 이런 유리 조각에 다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장 위험한 건 사람입니다.

[최혜민/휘경동 활동가 : 물에 농약을 타기도 하고 사료에도 타고… 호미 같은 걸로 찍으신 분도 있고. 그걸로는 처벌이 안 되더라고요. CCTV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건 있는데 직접 때리는 게 없어서]

텅 비어 있는 재개발 구역의 놀이터.

활동가가 나타나자 고양이들이 고개를 내밀어 확인합니다.

하나둘씩 다가오고, 하루종일 기다린 마음을 표현합니다.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웁니다.

[이 친구는 약을 먹어야 하거든요. 눈곱 낀 친구는…아몬드 이거 먹어. 네 밥 이거야. 그거 먹을 거야?]

이삿짐처럼 생긴 검은색 상자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겨울집입니다.

안쪽을 보면 방한 스티로폼도 있고요.

고양이들이 드나들기 위한 문도 만들어져 있는데, 저도 따뜻하게 데워둔 핫팩을 안에 집어넣고 설치해두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살핌도 잠시, 몇 개월 뒤면 80여 마리 고양이들은 지낼 곳이 없어집니다.

지자체는 길고양이 수 조절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장위동 활동가 : 중성화 20마리를 했으면 여기 재개발지역을 떠나서 자리를 옮겨줘야 할 입장인데 7마리 살고 (병으로) 13마리가 죽었어요.]

[최혜민/휘경동 활동가 : 구청은 그냥 (중성화) 수술만. 정말 수술만 하고 오니까 접종 한 번씩 해주면 좋지 않을까…]

활동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부담이 큰 상황입니다.

바깥에서 생활하기 힘든 아픈 고양이들이 머물면서 보호를 받고 있는 쉼터입니다.

재개발 지역의 빈집 한곳을 조합 측의 협조를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런 철장 안에는 보살핌을 받고 있는 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최혜민/휘경동 활동가 : 구내염을 많이 앓거든요. 이 친구들이… 치료 받았는데 바로 방사 못 하는 친구들 위주로 돌보는 거고요.]

구조 이후엔 보금자리도 문제입니다.

운이 좋으면, 입양을 보냅니다.

몸이 아팠던 4개월된 고양이는 치료를 받고 회복한 뒤 입양자를 어렵게 찾았습니다.

[너무 작고 귀엽네요.]

[남자아이예요.]

[이중현/입양자 : 보호받지 못한 애들이 많다고 들어서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심했고, 사실 보람도 있잖아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서]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 고양이들은 아직 보호 중입니다.

철거가 끝난 이문동 길고양이 보호소의 경우 지난해 3월부터 3개월간 구조한 고양이들만 120마리가 넘는데, 지금도 46마리가 남았습니다.

[권보라/이문동 활동가 : 끝까지 돌보기로 했고 입양 보내기로 했다, 이 간단한 명제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해야 되니까 하는 거죠… 하기로 했으니까.]

지자체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는 재개발 지역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조례에 추가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동물 보호에 있어 의미있는 첫 걸음이란 건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 방법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누가 어떻게 지원하고 노력할 것인지 마련되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아무 의미없는 조항이 될 겁니다.

(VJ : 최효일·서진형 / 영상그래픽 : 김지혜 / 인턴기자 : 한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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