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욱 "서울시장 출마 안 해.. 지금은 나 자신과 싸워야할 때 "

곽아람 기자 2021. 1. 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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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에세이집 '50′ 내는 홍정욱 단독 인터뷰
"정치 왜 안 하냐고? '가슴이 부르는 소리' 없어
'7막 7장' 50대 버전? 집념의 '목표' 달라졌다"
에세이집 '50'을 낸 홍정욱 올가니카 대표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이태경 기자

“지난 9월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고, 지금도 변함없다. 2012년 국회를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정치 복귀 의사를 밝힌 적이 없고 선거 때마다 불출마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회사를 매각하고 소셜 미디어를 그만둬도, 소셜 미디어를 시작해도, 글을 쓰고 책을 써도 정계복귀설이 돈다. 그런 기대는 한편 감사하지만 나는 정치건 사업이건 ‘가슴의 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하지 말라고 말려도 앞뒤 안 보고 뛰어든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노원 병)을 지낸 홍정욱(51) 올가니카 회장이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7막7장’(1993)에 이은 두번째 책 ‘50’(위즈덤하우스)을 14일 출간한다. 50줄에 들어선 홍 회장이 그간 페이스북에 적은 에세이 중 50편을 추려 엮었다. 출간에 앞서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홍 회장은 정계 복귀 신호탄이 아니냐는 세간의 추측에 “정치 책도 아니고 출사표도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정치권에선 그의 내년 대선 출마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회색 터틀넥 스웨터와 네이비색 바지의 간편한 차림, 응접실 벽난로에서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다.

홍정욱 에세이 '50'./위즈덤하우스

◇“ ‘7막7장’ 이후 30년, 난 여전히 치열하다”

- ‘7막7장’을 낸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이번 책은 왜 썼나?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검프가 무작정 뛰기 시작해 3년 2개월동안 뛴다. 나도 어느날 글을 쓰고 싶어 쓰다 보니 50편의 에세이를 쓰게 됐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20년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28년 전 나온 7막7장은 과분한 사랑을 받아 100만부 이상 팔렸다. 그 책이 청년으로서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해 쓴 책이라면 이 책엔 삶의 가운데에서 소명을 찾기 위한 여정에 대해 쓰고 싶었다.”

-소명이라니?

“아직 못 찾았다. 아쉽게도. 하고 싶은 일이나 만족스러운 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 주어져 있는 은밀하고 독특한 비전이라고 해야 될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한 것, 극소수만 발견하는 위대한 비밀이라 생각하고 내 좌우명대로 항상 깨어 있고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책엔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아직 소명을 찾지 못한 유한한 실망, 그러나 아직 소명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는 유한한 희망을 담으려 생각했다.”

-“‘절반의 성공’이란 대부분 구차한 변명”이라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책에 썼다. 욜로·파이어족이 넘쳐나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두려움 없이 시작하고 멈추지 않고 끝내야 한다는 것이 삶의 모토다. 하나뿐인 인생, 당연히 성공해야 한다 생각한다. 그 성공이 재력과 권력을 누리는 것이냐, 혹은 잘못이나 오류 없이 사는 것이냐 묻는다면 내겐 후자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가슴의 소리를 따라, 한 일 보다 안 한 일 없이 후회없이 사는 것, 그게 성공이라 생각한다. 욜로족이나 파이어족이나 다들 하나뿐인 인생, 후회 없이 멋지게 살자는 걸 추구한다.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경에 방해받지 않고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몰입이 중요하다”같은 구절을 읽으면 지독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미 없다는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내가 인간미 없어 보이나? (기자가 머뭇대자) 아직 잘 모르겠나? 예를 들어 흐트러져 보이고 허술해 보이는 거라면 자신없다. 실수 끊임없이 하고 끊임없이 실패해도 한결같이 열심히 사는 그런 자세가 인간적이라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그걸 흉내낼 생각은 없다. 다만 집중이라는 건… 지금 내게 이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 같나.”

-당신 자신 아닌가?

“나를 인터뷰하고 있는 당신이다. 내가 아침에 만난 사람, 저녁에 만날 사람, 또 인터뷰를 앞으로 몇 개 할 건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이 인터뷰에 몰입하는 게 내 삶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일을 하며 너무 작은 성과를 낸다’는 앤디 그로브 인텔 명예회장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도서관에 종일 앉아있다고 1등하는 것 아니고 사무실 종일 앉아있다고 승진하는 것 아니다. 한 시간 일하거나 공부해도 집중하는 게 성공의 비결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집념의 결정체인 ‘7막7장’ 때 같다. 사람이 보통 나이를 먹으면 놓기도 하고, 포기도 하고, 빈틈도 보이고, 여유도 생기고 하는 거 아닌가.

“내려놓기 위해 나도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한다. 명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독서와 고전 필사도 하고 다양한 노력을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내려놓기마저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참 대책이 없다. 그렇지만 집념의 목표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하버드 입학을 위해, 법조계 금융계 스타트업을 다 거친 최고의 엘리트가 되기 위해, 사업에 성공해 큰 부(富)를 창출하기 위해 치열했다. 그렇지만 운 좋게 다 이뤘다. 지금은 집념의 대상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 나아가서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가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이 목표라 생각한다. 목표가 무엇이건 남이 먹은 밥에 배부르지 않는다. 치열하게 노력할 수밖에 없고 인생에 치열함의 끝은 없는 것 같다.”

에세이집 '50'을 낸 홍정욱 올가니카 대표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근황을 밝혔다./이태경기자

◇“10대 때부터 불면·우울 겪어… 이제 나 자신과 싸워야”

-더 이룰 게 없어 ‘빈 둥지 증후군’ 느끼며 새 목표 찾아가는 전형적인 50대처럼 보인다.

“아니라고 부인해도 나이대가 겹치니까 그런 부분이 있겠지. 15살 때 유학 떠나기 이전부터 늘 그런 성격이었고 책에도 썼지만 불면, 우울함과 불안함도 많이 느꼈다. 그걸 한 번도 제대로 극복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결국엔 나 자신과의 싸움을 뒤로 미룰 뿐 이겨내지 못했다. 이제는 맞닥뜨려야겠다라는 결심을 다지게 된 거다.”

-스스로와 잘 맞닥뜨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뭘 하고 있나.

“일단 작은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일상의 루틴(반복되는 습관)을 만들어 이행함으로써 새로운 자신감과 성취감 회복을 할 수 있다. 사색, 독서와 운동, 명상,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의 보잘것 없음 느끼기…. 그런 여러가지를 통해 감정과 생각에 몰입하지 않고 오늘에 집중해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보통 또래의 성공한 남자들이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스스로를 채울 게 필요하다 생각할 때 가장 쉽게 생각하는 게 정치 아닌가. 그런데 왜 남들이 하자는데도 안 하나.

“4년이나마 안 해봤다면 그런 욕구를 강하게 느낄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절대로 정치가 중년을 위기를 맞이한 사람에게 메달이나 훈장처럼 요구되는 직군이나 사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4년간 정치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고 내 젊음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다른 영역을 찾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나왔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라면 정말 ‘큰 가슴의 소리’가 들려야 하고 큰 사명감과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생각한다. 그게 없는데 할 일 없어서 여유 많아서 정치에 뛰어드는 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엄청난 죄악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가봤자 승산이 없으니 안 나가는 거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내가 2008년 출마했을 때도 공천 다 떨어뜨리고 보수정당이 한 번도 당선된 적 없는 곳에 보냈다. 당시 여론조사 13번인가 14번 했는데 내가 다 졌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승리했다. 내가 이번 선거에 나가 승리할 자신이 있다는 게 아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내 가슴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누가 뭐래도, 아무리 이 사업이 성공 승산이 없다고 해도 할 거고 이 정치의 도전이 절대 승리할 수 없다 해도 뛰어들 거라는 거다. 그게 없기 때문에 정치공학적으로 우세하냐 불리하냐 이런 걸 전혀 따져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사업과 정치에서 따져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방금 그 발언 싸가지 없지 않게 써 달라”고 말했다.

- 보통 ‘가슴이 부르는 소리’에 따라 인생 중대사를 결정하는 건 20대까지 아닌가. 50대인데 여전히 ‘가슴이 부르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나.

“청년과 중년의 차이는 청년은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면 중년이 되면서는 성취의 관록을 쌓아가며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거다. 그러나 궁극적인 것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성공의 개념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고 본다. 나는 실패하는 삶보다 후회하는 삶이 훨씬 두렵다. 그렇기 때문에 10대 때 미국으로 떠나 20대에 법조·금융계에서 일하고 스타트업 창업을 하며 그 사이에서 많이 실패했다. 30대에 국회의원 도전하고 언론사 인수했고 40대에 정계 떠나고 언론사 매각하며 다 내려놓았다. 새로운 환경과 기업을 만들어 경영을 시작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어떤 이성적인 로드맵에 따라 실수와 잘못 없는 삶을 살겠다는 게 아니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안 하면 후회할 것이다 생각하는 것들에 도전하며 살아왔고 다행히 실패와 실수 속에서 성공을 일궈왔다. 50대도 40대나 30대와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 중년의 위기랄까, 50대의 공허랄까, 그런 걸 느끼고 있는 건가.

“작년 한 해 누구나 다 힘들었지 않나. 코로나 그 자체가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을 통째로 바꿔놓았으니. 동시에 인생에서 중요한 거 무엇인가 고민할 생각을 많이 줬다. 개인적으로는 부모님도 편찮으시고 아이의 사고도 있고 삶의 가운데서 한 번 멈춰서고 어디까지 왔나, 어디까지 갈 건가 고민한 한 해였다.”

홍 회장은 2019년 큰딸이 마약 투약 및 밀반입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반듯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그는 “아이가 뉘우치고 열심히 살아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기여하는 게 최상의 반성이라 생각한다. 부모로서 그 책임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극히 모범적인 이미지인데 딸이 일탈을 해 사람들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랬겠지? 내 자식으로 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나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 해서 다들 마약을 한다거나 술 담배를 찾는 건 아니다. 함께 잘 극복해 사회에 되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책에 10대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불면과 불안, 강박과 우울에 대해서도 썼다. 이 때문에 힘들어서 하버드를 두 번 휴학했다고도 밝혔다.

-공개적으로 털어놓기 쉽지 않은 문제인데.

“힘 빼고 솔직하고 편안하게 쓰자 싶었다. 인생의 가장 좋았던 부분과 가장 힘들었던 부분을 빼놓고 무슨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가 되겠나. 이거 저거 다 빼면 경영인이나 정치인이 남들에게 대필해 쓰는 영혼 없는 책이 나오고 말 것 같았다. 대단한 작가는 아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담아 가감없이 쓰려고 했다. 다만 책에 담기 힘든 최악의 내용은 안 썼겠지.”

-그게 뭔가?

“(웃으며) 그걸 이야기하면 안 되지.”

에세이집 '50'을 낸 홍정욱 올가니카 대표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이태경 기자

◇ “열등감 있냐고? 난 늘 ‘언더독’이었다”

-스스로를 성공한 기업인이라 생각하나.

“최선을 다했고 좋은 실적을 냈다 생각한다. 헤럴드는 2002년 인수했을 때 50년 적자 기록했던 부도 직전의 기업이었다. 3년만에 흑자전환시켰고 14년 연속 흑자이고 1000억이 넘는 가치에 매각했으니 나름의 성공을 거둔 거다. 유기농 친환경 식품 기업 올가니카는 2013년 세웠을 때 연 매출이 8000만원이었는데 그걸 1000배로 키웠으니 기업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생각한다 그러나 경영인으로서 성공했다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갈 길이라니?

“성공의 잣대를 어디로 두냐는 문제다. 기업의 규모. 기업의 가치, 내 부(富)의 규모 등 다양하겠지. 올가니카 시작했을 때부터 최고의 가치 이루고 최고의 수익까지 이루는 두 가지를 다 달성하기는 힘들다고 봤다.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적절한 수익을 낼 수는 있겠다 생각했고 그건 이뤘다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건 가치중심 기업이니까. 다만 더 열심히 키워야 한다. "

- 책에 국회의원이던 2011년 봄 한·EU FTA 체결 때 모두가 찬성하면 바로 의결되는 상황인데 기권한 일을 이야기하며 “존경을 얻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인기를 잃은 건 확실했다”고 썼다. 그런데 당신도 ‘7막 7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사람이다. 옛날 기사를 보면 1993년 ‘7막 7장' 교보문고 사인회에 여학생 3000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인기를 잃었다는 이야기다. 정당은 거수기 의원을 좋아하니까. 정치인이건 경영자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감사한 일이다. 다만 ‘군중은 바람이고 인기는 안개 같은 거다’ 하시던 영화배우 아버지(남궁원)를 통해 일찍이 인기의 속성을 체득했다. 지난 10~20년간 나무처럼 굳건히 나를 성원해주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런 에세이집 하나를 내도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시가 사진이, 재즈 취향이, 채식주의가 마음에 안 든다 각양각색의 비판이 쏟아지기도 한다. 책에도 썼다시피 자신감이란 모두가 나를 좋아할 거라는 착각이 아니라 누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늘 그런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한다.”

-당신에게도 열등감이 있나

“도전과 전진의 동력은 자신감이 아니라 열등감에서 나오는 거다. 열등감이 자신감보다 몇 배나 더 강력하다. 오늘의 나 자신이 너무나 싫기 때문에 내일 바뀌고 싶은 거지 오늘 내가 잘하고 있으니 내일은 더 잘해야지라는 동력은 너무 약하다. 늘 부족함에 대한 강박관념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뭐가 부족한가.

“콕 집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부족한 부분을 내놓고 이야기할 게 뭐가 있나. 스스로 고쳐 나가야지. 너무 많다. 성격적 측면이 됐든, 이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됐든, 가장으로서든, 아빠로서든.”

-그렇다면 지금 여기까지 당신을 끌어온 열등감은 뭔가.

“늘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더 잘해야겠다 생각한다. 미국으로 떠났을 땐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으로서 그걸 이겨내는 거였고 이후 베이징대 유학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탠퍼드 로스쿨 간 뒤에 금융계에서 일할 때도 금융, 숫자에 대해 하나도 몰랐지만 익혀야 겠다 생각했다. 창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대해 몰랐다. 정치에 뛰어들 때도 그랬다. 모르는 분야, 부족한 분야에서 ‘언더독(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언더독'이란 관념이 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언론에서 선거 때마다 나를 소환하고 지지층도 있지만 가장 큰 아이러니는 내가 정말 정치하려 했을 때는 나를 이리저리 굴리고 공천을 안 주려 했다는 거다. 빚진 사람이 없이 정말 ‘버림 카드’로 쓰였던 거라 소신있게 4년간 의원 활동할 수 있어서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으니 인생이란 아이러니인 것 같다.”

에세이집 '50'을 낸 홍정욱 올가니카 대표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이태경 기자

◇“40년 넘게 7:3 가르마, 집중하는 것 외엔 신경 안 써”

그는 책에 “40년 넘게 같은 머리 모양(7:3 가르마)을 고수하고 있다”고 썼다. 다혈질에 융통성이 부족한 성격적 결함도 털어놓았다.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묻자 “변화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집중하는 것 이외에는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거다”라고 했다.

-고전은 비싸면 안 된다 생각해 권당 2900원짜리 올재 클래식을 내고, 동물권과 환경을 생각해 채식주의자가 됐으며, 유기농 주스를 만든다. 이는 좌파적 사고다. 그렇지만 쿠바산 시가를 피우고 재즈를 즐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며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이는 우파적 가치다. 보수당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당신은 어디에 있나. 우파인가 좌파인가 중도인가. 아니면 남 보기좋은 건 다 하는 건가?

“내가 하고픈 건 다 한다고 보면 되겠지. 그러나 만일 고전은 정말 부자랑 귀족만 읽어야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걱정 안 해야 우파적 사고라면 나는 우파 하기 싫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취향을 감춰야 하고 기업인으로서 돈 벌고 일자리 만드는 걸 폄하하는 게 좌파적 사고라면 나는 좌파하기 싫다. 내가 봤을 때 진리는 늘 단순한 거 같다. 정치라는 건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다. 그걸 위해 시장은 자유롭게, 외교는 유연하게, 교육은 공정하게, 문화는 다양하게 펼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결국 얼마나 자유롭고, 얼마나 유연하고, 얼마나 공정하고, 얼마나 다양해야 하느냐 다름의 정도를 가지고 논쟁을 해야지 좌나 우냐 이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계적 중도도 의미가 없다. 좌우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은지 굉장히 오래 됐다.”

‘7막 7장’은 “인간은 정지할 수 없으며 정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태로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이며, 현상태로 있을 때, 그는 가치가 없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로 시작한다. 이번 책은 “인생의 위대한 비밀은 내 인생에 부여된 독특하고 은밀한 비전을 읽어내는 것. 존재의 목적을 발견하고 성취하는 극소수가 되는 것이다”는 홍 회장의 트위터로 끝맺는다.

-그 사이 ‘명언 수집가’에서 ‘명언 제조기’가 된 건가.

“인생이나 사업이나 인간관계의 돌파구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책을 찾는다. 많은 책에서 내게 영향 준 구절들을 반드시 기억해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인용의 정직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다보니 내 문장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내용들도 인용구를 써 표현했던 것 같다. 명언을 제조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는데 그게 내 평소 말투고 문체인 듯 하다. 그래서 ‘7막 7장’ 낼 때는 책 내용에 따옴표가 너무 많으니 빼자는 말이 많았다.”

-그 책엔 따옴표가 아니라 마침표가 없었다. “과거의 얘기가 아니라 내일을 여는 책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책머리에 적혀 있었다.

“스물 세 살에 치기로 쓴 거니 그렇지. 2003년 낸 개정판 ‘7막 7장, 그리고 그 후'엔 마침표를 넣었다.”

-정말 궁금한데, ‘7막 7장’은 직접 썼나.

“그럼! 이번 책과 문체가 똑같잖나.”

1993년 출간된 홍정욱의 '7막7장'
에세이집 '50'을 낸 홍정욱 올가니카 대표가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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