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의 적들이 가진 조폭성
대통령의 언어가 달라졌다. 부동산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끝장을 낼 것처럼 강한 어조로 얘기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얼마 전까지도 "지지 않겠다"고 결기를 내비쳤다. 최고 지휘관의 한마디에 야전 사령관은 그동안 24번의 공습을 감행했다. '투기 세력'이라고 지칭한 허상에 모든 레이더를 조준하다 보니 막강한 화력을 쏟아부은 공습은 주변 민간인 피해만 키우는 꼴이 됐다. 성난 민심에 이제 "송구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강력한 수요 억제책에서 공급 위주로의 정책 전환을 언급했다.
믿어본다. 하지만 믿지 못하겠는 것이 하나 있다. 지난 3년간 유지했던 부동산 정책의 이면에 자리잡은 '대통령의 신념 변화', 나아가 '집권 세력의 신념 변화'다. 바뀌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신념을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부동산 공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주거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이라고 돌려 표현하면 더 와닿을 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개인은 부동산을, 집을 굳이 소유할 필요 없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가 공급해주면 된다는 말로 귀결된다. 아마 새로운 야전 사령관의 25번째 대책도 공공임대를 대폭 확대하는 방식의 공급 확대 정책으로 귀결될 터이다.
진짜 좌파인지, 무늬만 좌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늘 '이상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상향이 있으니 뚜렷한 목표가 있고 가야할 길이 명확하다. "나와 (이상향으로) 함께 가자. 그러면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이상향'을 제대로 설정하면 한걸음 한걸음 진보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고매한 이상향과 비루한 현실과의 괴리를 분간하지 못해 '내로남불'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이상향에 대한 열의가 종종 유한한 권력의 조급함과 만나면 전체주의로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칼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의 기원을 플라톤에서 찾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은 거짓이고 완벽 불변의 이상세계인 이데아가 진짜라는 생각으로 이를 건설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오히려 전체주의로 이끈다고 본 것이다. 이데아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데, 누가 옆에서 '딴지'를 걸면 그 세력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해방 수 십년 후에 태어났건만 '토착 왜구'도 되어보고, 검찰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반(反)검찰 개혁 세력'도 되고, 때론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은 모두 내가 먹어야 하는 수준의 '반환경주의자'가 되는 이유다. 전체주의는 특정 세력에 대한 적대적 집단 대응으로 그 본모습을 드러낸다. 나치나 홍위병이나 뭐 그런 것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상향으로의 진보에 조급한 집권세력에 내재된 '조폭문화'다. 우두머리가 방향을 제시하면 "네, 형님!"을 외치며 앞뒤 분간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문화가 문제라는 뜻이다.
"검찰과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라."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을 둘러싼 '별장 성접대' 사건 재조사 관련해 대통령이 한 마디 던지자, 정말 검찰이 "네, 형님!" 외치며 그냥 냅다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 김학의를 잡기 위해 검찰이 출금 요청서류에 가짜 사건번호를 기재하는 등 공문서를 조작하고 이후엔 이를 무마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 탈원전 신념을 가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부하'들은 일사천리로 '딴지 세력'을 척결하고 즉각적인 가동 중단을 단행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에 연루된 청와대 관계자, 경찰 관계자도 어떠한 지시를 받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충분히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년부터 거는 '딴지'가 마음에 걸린다. '내로남불'도 종종하고, "네, 형님!"도 가끔 하는데 이런 딴지도 '내로남불'이 아닐까 하는 우려다. 그래도 '이상향'은 없으니 한마디 걸쳐볼까 한다, 그저 '내일이 오늘보다는 낫겠지'라는 심정에서.
우인호 전략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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