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세례에도 '정인이 양부모' 변호사는 왜 사건 맡았을까?..조주빈·이영학 변호사에 들어보니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건 이어서 맡은 건 문제"
법조계에선 '변호인 조력 받을 권리' 침해 우려도
이영학·조주빈 변호사 "흉악범들 합당한 처벌 받게 조력"
"의사 '진료거부권' 없듯 이유 없이 변호 거부 못 해"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에 숨진 ‘정인이 사건’ 첫 재판을 앞두고 양부모의 변호사들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시민들은 “어떻게 악마를 보호할 수 있느냐”며 변호사들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아무리 흉악범일지라도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며 변호사들을 향한 비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인이 양부모의 변호를 맡은 두 명의 변호사 중 A변호사는 ‘천안 의붓아들 가방 감금 살해’ 사건 피고인의 항소심 사건도 맡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정인이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은 A변호사를 향한 비난과 함께 사임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의 사무실 번호와 카카오톡 아이디, 사진 등을 공유하며 사임 압박을 독려하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이영학·조주빈 변호사들 “‘흉악범 무죄’ 주장하는 거 아니야…합당한 처벌 위해 조력”
정인이 사건처럼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을 수임했던 변호사들은 흉악범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죄는 인정하되 법에서 규정한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조력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흉악범 역시 헌법상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씨가) 저한테 제일 먼저 호소했던 게 ‘나는 지금 국선변호인 담당자가 지정돼 있는 상태인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면서 “(이씨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고 싶어 하는 부분이 너무 절실해 보여서,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형사 피의자로서 자신의 인생이 걸린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수임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씨의 사선변호인 선임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이씨의 가족들이 사회적 비난 등을 이유로 김 변호사에게 사임을 부탁해 그는 사흘 만에 사건에서 손을 뗐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변호를 맡았던 김호제 변호사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수사 기관과) 대등한 입장에서 싸우게 해서 처벌을 해야지 그게 공정한 거고, 정의 아니겠느냐”면서 “의사가 진료 거부권이 없듯이 저희도 정당한 이유 없이 변호를 거부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돈 때문에 흉악범 사건을 수임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 김 변호사는 “(조씨 사건은) 돈 때문은 분명히 아니었고, 수임료도 많이 받은 건 아니다”라면서 “수임 의뢰가 들어온 거니까 거부하기 어려웠던 점 등 때문에 맡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정인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 대해 “(정인이 양부모를 법으로) 처벌하려면 변호사가 있어야 하고, 변호사가 사건을 맡는 것이 정당한 절차”라면서 “그것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윤호 변호사는 “국민들 관점에서는 어떻게 이런 사람(정인이 양부모)을 변호할 수 있느냐’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사실 변호사가 하는 일이 그 사람에게 있는 잘못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흉악범들도) 법률 절차상 피의자·피고인으로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것을 법적으로 유효하게 도와주는 입장이라서 무조건적인 비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흉악범은 사선변호인이 아닌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그는 “(국선 변호는) 말 그대로 국가에서 국가의 비용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게끔 도와주는 복지적인 것이다. 모두가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사선변호인=처벌의 감형·감경’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사선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은 국민 누구에게나 보장된 최소한의 인권 행사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시민들 “‘사회적 공분’ 사건 연달아 맡은 건 문제”…법조계 “‘흉악범 사건’ 수임 어려워”
취재진은 정인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에게 사건을 수임하게 된 계기를 묻고자 사무실 등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법조계에선 이번과 같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흉악범 사건의 경우, 변호사가 수임을 결정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부장검사 출신 B변호사는 “(흉악범 사건이 들어오면) 여론 때문에 아예 수임 안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개인적인 성향상 (비난 여론을) 못 견디시는 분들은 사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일 경우 개인뿐 아니라 회사까지 지탄받을 가능성이 큰 탓에 수임을 더 꺼린다고 한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16조 제1항은 ‘변호사는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변호를 거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지난해 7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선정된 장성근 변호사가 조주빈 공범의 변호를 맡은 사실이 논란이 되자 추천위원직에서 사임한 것을 두고 “변호사가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을 보고 선별적으로 변호활동에 나선다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하기 때문에 변협은 선별적 변호를 징계사유로까지 삼고 있다”면서 “수행한 사건으로 그 변호사를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양 저유소 풍등화재 사건’·‘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 공익 사건을 맡아온 최정규 변호사는 “수사라고 하는 것은 어느 순간 몰아치기가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니 (흉악범이라도) 충분한 변호를 받아야 한다”면서 “변호사의 변호활동과 변론 내용이 상식에 반한다면 비난받아야겠지만, 선임 자체만으로 비난받을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어 “(흉악범을) 국선변호인으로 조력 받게 하자는 건 결국 내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주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흉악범 사건 변호와 관련해) 변협에서 국민을 이해시키는 활동 등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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