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다가 눈물겨워지는 가게

문은아 입력 2021. 1. 12. 18:57 수정 2021. 3. 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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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를 청탁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때 나는 통영에 있었다.

어느 곳에선 '점방'으로 어느 시절엔 '상회'로 불리던 우리의 구멍가게는 유통기한을 넘어 기억 안에 생생하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복닥거리는 날들을 이어가던 경력 단절 작가가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한 마중물이 바로 해 질 녘 마주한 경기도 퇴촌의 한 구멍가게였기 때문이다.

두만강에서 뗏목으로 나무를 실어와 지었다는 100년 된 한옥 당리가게는 그림처럼 그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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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를 청탁하는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때 나는 통영에 있었다. 마침 골목골목 봉수골을 돌아 통영의 동네서점 ‘봄날의책방’에 닿기 직전이었다. 파란색 문을 열자 탁자 위에 놓인 책이 여행자를 맞아주었다. 그 책에 표류하던 마음이 닻을 내렸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라는 이름. 유달리 강퍅했던 올해의 책은, 그래, 너다.

슈퍼면 어떠랴. 슈퍼여도 괜찮다. 어느 곳에선 ‘점방’으로 어느 시절엔 ‘상회’로 불리던 우리의 구멍가게는 유통기한을 넘어 기억 안에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펜촉에 잉크를 묻혀 찍은 수만 개 점으로 완성한 품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에는 정겹다가 종국에는 눈물겹다. 작은 것들에 바치는 지극함이 한 점 한 점 마음에 와닿는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복닥거리는 날들을 이어가던 경력 단절 작가가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한 마중물이 바로 해 질 녘 마주한 경기도 퇴촌의 한 구멍가게였기 때문이다. 그림만이 아니다. 구멍가게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곳의 사연을 담는 글도 촘촘하고 찬찬하다. 글과 그림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져, 한번 책을 들면 겨울밤 찻잔처럼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

저자의 전작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구멍가게의 어제를 20년에 걸쳐 담았다면, 이 책은 2017년부터 최근까지 새롭게 그린 42곳, 80여 점 그림을 실어 구멍가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전남 장성군 야은리 삼거리상회 느티나무 그늘 아래 걸터앉아서 먹는 딱딱한 아이스크림 맛은 어떨까. 목포 아리랑고개 까끄막 비탈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부광상회 주인아저씨는 안녕하실까. 두만강에서 뗏목으로 나무를 실어와 지었다는 100년 된 한옥 당리가게는 그림처럼 그윽할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구멍가게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읽던 책을 덮고 제주 해안도로를 내처 걸었다. 하도포구 인근 점방이 살아 있는지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달 전에 보았던 간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뒤였다. 점방이 손님을 기다리던 그때는 왜 과자 한 봉지 살 여유를 내지 못했을까.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 다시금 책을 펼쳤다. 작가가 부러 그려 넣은 구멍가게 앞 나무를 본다. 사계절 빛깔을 바꿔 ‘우리 아직 여기 있다’고 손 흔드는 안간힘을 본다. 한 그루 보호수처럼 마을을 지키는 구멍가게의 ‘있음’이 그저 대견하다. ‘있다’와 ‘잇다’는 시옷 받침 하나로 이어진다.

2020년, 우리는 못 만나게 하는 역병을 앓으며 만남의 소중함을 알아갔다. 멈춤을 가로지르며 하루하루 이어가는 것들이 기특하다면, 오늘도 문 연 구멍가게의 보호자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구멍가게의 정성에 우리의 지극정성을 더해보는 건!

문은아 (동화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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