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꿈이 없다면 행복하지 않은 인생일까..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소울' [리뷰]

심윤지 기자 2021. 1. 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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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신작 <소울>은 ‘어른들의 애니메이션’을 표방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 순간이 ‘일생일대의 꿈’을 이루기 직전이라면 어떨까. 영화 <소울>은 바로 이러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의 소중함”이라는 뻔한 결론을 예상하는 그 순간, 영화의 질문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가슴을 뛰게 하는 꿈이 없다면, 그것은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었을까.

뉴욕에서 기간제 음악 교사로 일하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그의 꿈은 재즈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조는 평소 존경하는 색소폰 연주자에게서 “함께 무대에 서자”는 제안을 받는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바로 그 순간, 조의 인생에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닥친다. 뉴욕 거리 한복판에서 맨홀 아래 하수구로 떨어진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승으로 가는 컨베이어벨트 위. “절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치던 조의 영혼은 컨베이어벨트 밖 알 수 없는 세계로 굴러 떨어진다. 탄생을 앞둔 아기 영혼들이 멘토 영혼의 도움을 받아 각자의 성격과 재능을 찾아가는, 이른바 ‘태어나기 전 세상’이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조는 뉴욕 거리 한복판에서 맨홀 아래 하수구로 떨어지며 죽음에 직면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태어나기 전 세상을 관장하는 카운슬러 ‘제리’는 이곳에 잘못 떨어진 조를 멘토 영혼으로 착각한다. 그런데 하필 조에게 배정된 영혼이 ‘태어나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시니컬한 영혼 ‘22’(티나 페이)다. 어떻게든 지구에 가고 싶은 조와 지구에 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은 22. 둘은 지구 통행증을 놓고 은밀한 거래를 하고, 조를 무대에 세우기 위해 특별한 모험을 떠난다.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아웃>을 만든 피트 닥터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 <인사이드아웃>이 사춘기 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면, 이번엔 딸과는 정반대 성격인 아들이 모티프가 됐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저렇게 성격이 다르지? 사실 사람의 성격은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닥터 감독의 상상력은 디즈니·픽사의 기술력과 만나 태어나기 전 세상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완성해냈다.

각종 성격을 체험할 수 있는 ‘성격 파빌리온’부터 지구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곳의 전당’까지…. 아기 영혼들은 태어나기 전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성격과 관심사를 찾아나간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각종 성격을 체험할 수 있는 ‘성격 파빌리온’부터 지구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곳의 전당’까지…. 아기 영혼들은 태어나기 전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자신만의 성격과 관심사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마지막 조건이 남았다. 삶을 살아보려는 의지, 바로 ‘불꽃’이다. 링컨과 간디, 테레사 수녀 같은 ‘위대한’ 멘토들도 포기한 22에게 불꽃을 찾아준 건, 다름 아닌 ‘보통사람’ 조였다.

하지만 변화는 22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뉴욕 피자의 고소함, 음악에 집중하는 소녀의 얼굴, 청명한 하늘과 아름다운 꽃잎….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22의 모습은 조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평생에 걸쳐 이루고 싶은 거창한 목표가 꼭 있어야 하냐고,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다 오히려 놓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어른들의 애니메이션’을 표방하는 <소울>의 깊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소울>은 미국 흑인 음악의 역사가 녹아 있는 재즈를 전면에 등장시켰고, 흑인 문화에 대한 묘사 역시 섬세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소울>은 40대 흑인 남성이 주인공인 최초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단순히 주인공의 인종만 흑인으로 설정한 게 아니다. 미국 흑인 음악의 역사가 녹아 있는 재즈를 전면에 등장시켰고, 흑인 문화에 대한 묘사 역시 섬세하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등 미국의 인종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한 시기지만 디즈니·픽사가 시도해온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실험 역시 성숙해가고 있다.

조와 22 캐릭터 구성에 참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는 12일 화상인터뷰에서 “픽사 내부에서는 백인부터 흑인, 아시아인까지 직원들의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소울>은 그 노력의 정점”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흑인은 이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당사자가 보기에 불쾌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인종의 애니메이터들과 끊임없이 대화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08년 픽사에 입사한 그는 <토이스토리4> <코코> 등 다양한 작품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했다.

소울에서 조와 22의 캐릭터 구성에 참여한 김재형 애니메이터(왼쪽). 조가 피아노를 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오른쪽)에 김 애니메이터의 손길이 닿았다. 월트디즈니코리아컴퍼니 제공

재즈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답게 음악에도 공을 들였다. 스티비 원더, 프린스, 에드시런 등 최고의 팝스타와 앨범 작업을 한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존 바티스트가 연주와 편곡을 맡았다. 조가 피아노를 치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장면에는 김 애니메이터의 손길도 닿았다. 그는 “바티스트의 연주 영상을 참고 자료로 1초에 24장 가까이를 그리며 손모양을 맞췄다”면서 “무아지경에 빠진 감정을 표현해달라는 감독의 주문과 균형을 맞추는 데 특히 공을 들였다”고 했다.

코로나19 시기지만 마스크와 패딩을 단단히 갖추고 ‘영화관에 가서 볼 만한 영화’라고 추천하고 싶다. ‘지구는 지루한 곳’이라던 22의 생각이 달라졌던 것처럼, 애니메이션 영화에 심드렁하던 어른 관객들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이게 될 것이다. 오는 20일 개봉.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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