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또 외국 가는 양정철, 대통령에게 섭섭했나?

김광일 논설위원 2021. 1.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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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 구도에서 누가 실세인가.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리고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를 따지면 가장 간단하다. 법률상 권력 승계 서열과는 관계없다.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 매일 얼굴을 보는 사람, 얼굴 못 보면 전화 통화라도 하는 사람,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보는 사람, 이런 사람이 실세다. ‘문고리 권력’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실세는 실세다.

거꾸로 말하면 대통령 입장에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사람, 오른팔 왼팔로 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을 결코 멀리 두지 않는다.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다가 곁을 떠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말로 이임사를 늘어놓아도 그것은 겉치레 수사(修辭)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이 확실한 신임을 확인해주고 그에 걸 맞는 자리를 제안하면 대통령 곁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지난 주말 조선일보는 ‘정치 인사이드’란 문패를 달고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 ‘또 떠나는 양정철 “장세동처럼 문(文) 지키겠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기사 내용은 이렇게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쉰일곱 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다시 외국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중에 미국으로 떠난다고 하는데,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객원 선임연구원으로 간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양정철 전 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그는 ‘대통령 문재인’을 만든 핵심 참모다. 일등 공신인 것이다. 그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홍보기획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정치를 안 하겠다던 문 대통령을 설득해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만든 측근 중에 측근이다. 문 대통령이 평소에도 “양비” 혹은 “정철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양비’는 양 비서관을 줄인 말인데, 그만큼 격의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양정철 씨는 민주연구원장으로 있으면서 4·15 총선 전략을 디자인하고 인재 영입을 주도하는 등 사실상 민주당 선거를 지휘하면서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한 역할이나 공적으로만 본다면 문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 혹은 총리 자리를 제안해도 모자랄 정도인데, 그가 불현 듯 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최근 주변에 묘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말들이다. “생각은 달라도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의리 하나는 인정한다.” “문 대통령의 첫 비서였던 나도 퇴임 후 마지막 비서로 의리를 지키고 싶다.”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의 핵심 덕목은 의리다.”

자, 겉으로 봤을 때는 참 아름다운 풍경처럼 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끝까지 모셨던 장세동 실장처럼 자신도 문 대통령을 끝까지 보필하겠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아무런 관직을 맡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인가. 그러나 권력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은 그렇게 간단하고 아름답게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조선일보 기사도 행간을 읽어야 한다. 사실은 양정철 전 원장이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노골적인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먼저 양정철 전 원장의 출국 시기를 놓고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출국 시점이 미묘하다는 것이다. 2021년은 문재인 정부 임기의 마지막 해라고 할 수 있다. 레임덕 위기에 취약한 때다.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다. 서울·부산 시장선거가 코앞이다. 정말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최측근 핵심 참모라면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이 부르면 10분 내로 달려올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것이 상식이다. 양정철 전 원장은 문 정권 출범 직후 뉴질랜드와 일본 등 외국에 머물렀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역시 이런 말을 했다. “최측근으로서 대통령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곁에 있으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니, 그런 말도 있는가. 혹시 대통령에게 “양정철을 내치라”고 건의하는 또 다른 측근들이 많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숙명여고 동창생이며 40년 지기인 손혜원 전 의원은 지난 총선 당시 양정철 전 원장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아직도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인지, 그의 행보가 과연 문재인 정부를 위한 것인지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할 일이다.” “많이 컸다, 양정철.” 게다가 손 의원은 최근에도 양 전 원장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민주당 대선을 성공시키고 총선을 압승으로 이끌었다고 떠들고 다니는 모사꾼이다.”

‘양정철이 장세동처럼 의리를 지키겠다고 했다’는 조선일보 기사가 나간 다음 날인 지난 토요일 1월9일 손혜원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는 이런 말까지 올렸다.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양정철이?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자 이것은 보통 신랄한 멘트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손혜원 전 의원의 공격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손 전 의원의 개인 생각인가, 아니면 김정숙 여사의 뜻이 간접적으로 반영된 비난 발언인 것인가, 그게 궁금하다.

게다가 문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양정철 전 원장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 이름이 오르내리다가 유영민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자마자 양정철 전 원장의 미국행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공교롭게 우연의 일치로 타이밍이 겹쳤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보통 분석가라면 양정철 전 원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낙점 받기를 학수고대 기다리다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순간 이 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그가 미국행을 생각해왔다면 21대 총선 직후부터 얼마든지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연말에 청와대 참모진 개편 이후에 미국행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양정철 전 원장이 자신의 입지를 빗대어 장세동 전 경호실장 얘기를 꺼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경호실장·안기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장세동 씨도 1987년 호헌을 강하게 주장하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내침을 당해서, 즉 팽을 당해서 물러난 적이 있었다. 혹시 양정철 전 원장은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문 대통령에게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을까. 청와대 비서실장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것에 대한 섭섭함을 표시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양정철 전 원장이)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은 명분일 뿐, 문 대통령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고 항명 차원에서 나간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과 선을 긋고 본인은 차기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차기 대선 전에는 돌아올 것이다.”

또 한편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본다면 목엣 가시처럼 끝까지 정권을 괴롭히고 있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천거한 사람으로 양정철 전 원장을 떠올리고 있으며 이제 양 전 원장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양정철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지방 고검에 좌천돼 있던 윤석열 검사를 처음 만나서 그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한 적이 있고, 그 뒤로 친분을 쌓았으며, 문 정권 들어와 그를 검찰총장으로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양정철 전 원장은 2017년 대선 직후 외국으로 나가면서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대통령 문재인’을 만든 일등공신이 정말 잊혀지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 당시부터 그의 청와대 입성을 막은 진짜 실력자가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가 문 대통령에게 밉보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그가 문 대통령의 아랫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동지’처럼 굴면서 선을 넘었던 적은 없는 것일까. “문재인의 남자” 혹은 “무관(無冠)의 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을 내친 사람은 누구일까. 여러분 생각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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