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에 임대형 스마트팜 단지를..출퇴근 디지털농부 키우자"

정혁훈 2021. 1. 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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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농업·농촌 사랑 앞장 김병원 前 농협중앙회장

■ 대담 =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 회장(68)이 서울 한국벤처농업포럼 사무국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농업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그는 퇴임 후 13개월여간 전국 곳곳을 돌아보면서 우리 농업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코로나19 이후 식량안보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농업의 성장성과 농촌의 잠재적인 가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아무리 재평가한다고 해도 결국 농업·농촌의 주인은 농민이다. 농민이 잘살아야 농업·농촌도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 회장(68)은 탁월한 식견을 가진 농업·농촌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회장 재임 시절 "농협이 존재하는 이유는 농민"이라며 '농가소득 연 5000만원 달성' 운동을 펼치는 등 농민을 무대 주인공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2019년 11월 말 농협 회장직에서 퇴임한 이후 지금까지 "농민을 위해 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는지 반성하면서 지냈다"는 김 전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농업·농촌이 살아날 수 있는 길에 대해 물었다.
―농협중앙회 회장직을 떠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

▷40년 넘게 농협에 근무하면서 걸어왔던 길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농업과 농촌을 위해 더 할 수 있었는데 못했던 것은 뭐가 있는지도 생각해 보고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동시에 우리나라 농업에서 해결해야 할 고질적인 문제가 뭔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결과로 우선 우리 농업·농촌의 6대 과제를 도출했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 전 한국생명과학기술연구원이라는 민간 연구소를 만들었다.

―우선적으로 도출한 농업·농촌의 6대 과제가 무엇인가.

▷종자산업 육성과 농작물 재해보험 개선, 농산물 수급 안정대책 마련,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 모형 설계, 농지연금법 개선, 농촌 스마트 빌리지 구축이다.

―국내 종자산업은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는 외국 종자 의존도가 너무 높다. 종자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는 작물이 수두룩하다. 종자에 대한 개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종자 수입에 당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기후 여건에 딱 맞는 종자를 개발하지 못하는 문제도 크다. 종자산업 육성 정책이 시급하다.

―작년에도 냉해와 장마, 태풍 등 자연재해로 농민 어려움이 컸는데.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농작물 재해보험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농민들을 만나보면 농작물 재해보험의 손해 보전율이 피해액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푸념을 많이 듣는다. 보험금을 받은 농민에게 과다한 보험료 할증 부담을 안기는 것도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농민이 재해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농산물 수급 안정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있을까.

▷수급이 안정돼야 가격이 안정되고, 가격이 안정돼야 농가소득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 작물이 얼마나 재배되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조차 정확하지 않다. 이래서는 수급 안정대책을 세울 수 없다. 드론을 활용해 국내 작물 재배지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하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 재배 면적과 생산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수급 조절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어떤 품목의 가격이 폭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수확 시기가 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폐기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수확량을 줄일 수 있다. 수확 후 생산 물량을 격리하는 것으로는 가격 폭락을 막을 수 없다.

―농지연금법 개선 주장하는 이유는.

▷200만 농민 중 농지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1%에도 못 미친다. 농지 소유자 기준으로도 3%에 그친다. 가입률이 낮은 건 제도 탓이 크다. 연금 산정을 위한 농지 기준가격(개별공시지가 혹은 감정평가액의 90% 중 선택)이 실거래가에 미치지 못하는 게 한 이유다. 제도를 개선해 농지연금을 활성화하면 고령농의 은퇴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그래야 농가당 농지 면적을 키워 규모화하고 젊은층의 농업 유입을 늘릴 수 있다.

―수년째 벼농사 면적과 쌀 생산량이 줄면서 쌀 자급률이 떨어지고 있는데.

▷쌀을 포함한 식량 자급률이 46%를 기록하고 있고, 축산 사료를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3%에 그친다. 국가 안보적인 차원에서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식량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법제화하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 농민들을 만나보면 '농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농촌 현장을 갈 때마다 농민들에게서 요즘 농정의 비전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를 많이 듣는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누가 선임되든지 간에 실효성 있는 농업정책이 만들어지고, 그런 정책 실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농업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하지만 뚜렷한 방향과 대안이 잘 안 보인다. 정부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농민들은 농업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다. 한발 더 나아가 재배 작물에 따라 미래 기대소득이 얼마나 되는지를 과학적으로 예측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업도 필요하다.

―농협 회장 시절에 농가소득 5000만원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못 미쳤는데.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농가소득이 3000만원대에서 4000만원대로 올라섰다. 농가소득은 농업소득과 농업 외 소득, 이전소득을 합친 개념이다. 농업소득을 높이는 게 기본이지만 농업 외 소득 수단을 많이 발굴하고 이전소득을 높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농업 외 소득으로는 한계농지에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이전소득을 높이기 위해 농협에서 농민들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거나 고금리 예금을 도입하는 등 노력도 필요하다.

―그래도 기본은 농업소득을 높이는 것인데.

▷농업소득을 높이기 위해서도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벼농사와 같은 전통농업으로 농업소득을 추가로 올리기는 쉽지 않다. 기술농업을 접목할 수 있는 원예·과수 쪽에서 소득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그러자면 틈새농업이 좋은 대안이 된다. 틈새농업이란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열대 과일을 재배하거나 그린바이오 산업에서 기능성 식품 원료로 활용되는 작물을 재배하는 것 등을 말한다. 열대과일연구소가 들어선 전남 장성에서는 애플망고 농사로 대성공을 거뒀다.

―농지가 본격 조성되고 있는 새만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텐데.

▷새만금에선 한국 농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우선 면적이 넓은 만큼 한우나 젖소 먹이로 사용하는 조사료 작물을 재배해 국내 축산농가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바이오산업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옥수수나 콩 등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스마트팜에 관심 있는 농가들에 땅을 임대해주고 집단으로 스마트팜 농업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판매와 유통도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출퇴근하면서 과학적으로 농사를 짓는 스마트 농업인이 생겨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 등과 결합한 디지털 농업이 뜨고 있는데.

▷노동집약형 농업에서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농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디지털 농업이다. 농산물 재배만이 아니라 전후방 산업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농업 밸류체인 전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농자재 산업과 바이오 산업, 유통시스템 등이 모두 해당된다. 우리나라 농가 전체가 디지털 농업을 할 수는 없겠지만 디지털 농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지속적으로 키워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농업 관계 기관이 많지만 농민들 평가는 박한데.

▷농업 관계 기관과 농민 사이의 관계를 얘기할 때 혈류론과 기울기론, 지렛대론, 둠벙론 등 4개 이론을 설명하고 싶다. 혈류론은 농식품부와 농협, 농촌진흥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농어촌공사 등 주요 농업 관계 기관과 농민은 피를 함께 나눈 가족 같은 사이라는 것이다. 농민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기관들인 만큼 오로지 농민만을 생각하며 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울기론은 농업 관계 기관들은 우상향 기울기로 성장하는 반면 농민소득 증가율은 우하향하는 기울기를 갖는 것을 빗대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농업 관계 기관들이 농민의 지렛대가 돼 농민소득을 올려줘야 한다. 그러자면 천수답에 꼭 필요했던 '둠벙(물웅덩이)'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것처럼 농민들이 좀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농업 관계 기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농민과 농업, 농촌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협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지금 농협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라고 하면 농협이 금융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지 이제 10년이 된 만큼 그 취지에 맞는 방향으로 한층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 농협은 크게 금융지주와 경제지주, 교육부문으로 나뉜다. 금융지주는 농협의 전체적인 예산 확보를 위한 수익센터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한국 1등 금융기관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경제지주는 본래 취지대로 유통사업을 잘해서 농민이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각종 농자재를 농민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농민에 대한 양질의 교육을 통해 농가소득이 올라갈 수 있도록 금융지주와 경제지주가 교육지원 사업 재원을 충실히 지원해줘야 한다. 농협의 본래 존재 목적이 농민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He is…

△1953년 나주 출생 △1974년 광주농고 △1978년 농협 △1999년 광주대 △1999년 전남 남평농협 조합장(3선) △2004년 농협중앙회 이사 △2010년 전남대 농업경제학 박사 △2015년 농협양곡 대표 △2016년 농협중앙회 회장 △2019년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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