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 김한나가 애초에 그렸던 라이브커머스의 모습은?

최민영 2021. 1. 1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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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라이브커머스’는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이나 홍대 등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중국인들의 문화로 여겨졌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바일 라이브 영상과 실시간 소통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라이브커머스는 코로나19 이후 떠오른 ‘비대면 소비 트렌드’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라이브커머스의 ‘라’자도 모를 때, 김한나(41) 그립컴퍼니 대표는 “미래는 영상, 라이브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정보기술(IT) 업계 동료들을 모아 2018년 8월 라이브커머스 사업을 시작했다. “(TV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 나오는 과수원 주인 부부가 티격태격 다투며 따는 사과가 참 맛있어 보였어요. 저걸 직접 먹을 순 없을까? 와인을 만드는 마을의 농부들이 새참으로 막걸리 대신 마시는 와인을 나도 먹고 싶다는 상상을 했죠.” 김 대표의 상상은 라이브 영상으로 현실이 됐고 코로나19 이후로는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에이케이(AK) 등 유통 대기업에 라이브커머스 소프트웨어도 판매한다.

김 대표가 처음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투자자들은 물론 가까운 회사 동료들까지도 모두가 ‘실패’를 단언했다. 안될 것이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자신감이 줄기도 했다. 정말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다시 생각해봐도 답은 결국 라이브커머스였다고 한다. 지난 6일 서울 강남역 근처에 있는 그립컴퍼니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브커머스를 밀어붙인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애초에 그렸던 라이브커머스의 ‘원형’이 무엇인지, 어떤 상상을 했던 건지 ‘원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20대 때 국제구호활동가로서 유엔개발계획 등 국제기구에 진출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제구호활동가를 꿈꾸다 IT 벤처기업 막내로 취업…32살에 ‘매출 900억’ 임원되다

김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사업은커녕 취업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 면접의 문을 두드렸던 곳은 ‘월급 80만원’을 주는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자리였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아동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부모님은 배고프게 살 거라고 만류하셨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비정부기구에서 일을 하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같은 국제기구로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죠.” 김 대표는 ‘IMF 사태’가 시작될 즈음인 1997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 입학했다. “입학 1년 만에 부모님의 학비와 생활비 지원이 모두 끊겼어요. 아버지가 다녔던 대우자동차가 기울면서 집안도 함께 어려워졌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학비를 내지 못해 등록을 못하기도 했죠. 겨우겨우 졸업했습니다.”

돈보단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엔지오의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은 삶의 방향을 트는 계기가 됐다. “적은 돈을 받고 힘들게 일해도 저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면접관이 되묻더군요. 정말 이 월급받고 일하는 것이 괜찮은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그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80만원 밖에 못 준다는 걸까? 돈이 뭘까? 몸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도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한 아이티 벤처기업에 취업했습니다.”

산업용 스마트폰을 제조하는 벤처기업 블루버드의 해외영업 담당 사원으로 2005년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27살이던 때다. “(전자장치에 들어가는 메모리의 일종인) 롬(Rom)과 램(Ram)도 구분하지 못했지만, 아이티가 미래일 것 같았어요. 첫 1년은 팩스만 보내야한다는 대기업과 달리 주도적으로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벤처기업에 끌렸죠. 미국에서 유학을 했으니 영어 업무라도 돕자는 생각이었어요. 당시 블루버드는 이제 막 해외 사업을 시작하던 때였거든요. 미국 진출을 위해 필요한 각종 인증과 판로 개척 업무에 참여했습니다. 제로에서 시작한 블루버드의 해외 사업은 8년 만에 매출 900억원 규모로 컸어요. 32살에 임원인 경영전략실장 자리에 올라 6개 팀을 지휘해봤죠.”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미래는 영상, 라이브”…네이버에서 일하며 본 영상의 폭발적인 성장

2014년, 네이버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하드웨어 기업에서 일하면서 그 다음의 미래는 ‘소프트웨어’라고 느껴서다. “하드웨어 회사에서는 항상 소프트웨어와 함께 상품을 팔았어요. 결국 콘텐츠가 있어야 하드웨어도 작동하니까요. 소프트웨어의 강력한 힘을 느꼈죠. 또 하드웨어는 제조하고 보완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소프트웨어는 조금만 수정해도 큰 변화가 가능하더라고요. 다루는 상품이 유연한 만큼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조직도 유연해보였고요. 블루버드에 8년 넘게 다닌 뒤, 또 다른 새로움을 경험해보고자 네이버로 이직을 했습니다.”

김 대표는 네이버에서 5년 동안 일하며 1020 세대를 겨냥한 ‘스노우’와 ‘잼라이브’ 등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제외한 네이버의 사진, 영상 서비스의 마케팅을 총괄했다. 이 시기에 엠제트(MZ)세대의 영상 소비 증가를 목격했다. “처음엔 사진 서비스가 터졌고, 그 다음은 영상으로 넘어가더니 곧 라이브가 활성화 되더라고요. ‘교복입고 학교만 다니는 친구들이 찍어 올릴게 있을까?’ 생각했지만, 이들에겐 숟가락 하나도 사진으로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영상은 네이버 밖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네이버가 아닌 유튜브에서 정보 검색을 하는 모습이 일단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또 틱톡처럼 짧은 영상이 크게 유행하는 한편,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보편화되면서 길이가 긴 영상도 동시에 소비가 늘었죠. 그 전엔 데이터 요금이 부담돼 긴 영상을 잘 안보기도 했거든요. 영상의 성장은 파편적 현상이 아닌, 종합적 현상이었어요. 이런 성장의 바탕에는 영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리얼리티의 매력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였고요.”

10년 넘게 마케터로 직장생활을 김 대표는 영상과 마케팅을 연결했다. 이는 라이브커머스라는 사업 아이디어로 발전했다. “광고주들은 ‘내가 돈을 잘 쓴 것인가’를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에 늘 답답해했어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하면서 돈을 쓰고 판매를 위한 비용이 또 한 번 나가는데, 이 돈이 효과적으로 쓰이는지 알기 어려워서였죠. 그런데 라이브커머스라면 영상이 끝나는 순간 마케팅과 판매의 효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라이브커머스는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이고 영상은 시장도 큰데, 왜 이 사업을 아무도 안할까? 판매자와 소비자도 바로 연결되면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사고 더 큰 이익을 서로가 누릴 수 있는데. 누구나 영상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는데 왜 아무도 안할까? 그러다 ‘아무도 안하고 있다면 내가 해보기로’ 마음 먹었어요. 이 시장은 반드시 성장할 거란 확신이 있었거든요.” 어렴풋한 아이디어 수준이었지면 2018년 8월 일단 네이버를 퇴사하고 네이버 동료 4명과 함께 그립컴퍼니를 차렸다.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립의 성공은 알 수 없지만 라이브커머스는 무조건 성공한다”

라이브커머스 플랫폼 그립은 2019년 2월에 출시됐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출시까지, 라이브커머스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저에게 실패할 것이라고만 했어요. ‘남들이 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성공 사례가 전혀 없는데 그립이 할 수 있겠냐’고요. 퇴사 전까지 직장 동료들도 ‘안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투자자들도 “중국에서 성공했다고 한국에서도 성공할까? 만에 하나 잘되더라도, 이후에 거대 유통업체가 뛰어들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등의 회의적인 질문을 쏟아냈다.

안 될 것이라는 말만 듣다 보니 위축되고 고민도 많아졌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립은 실패할 수 있지만, 라이브커머스라는 시장은 무조건 성공한다. 아무도 안하고 있다면 그립이 먼저 해보자”였다. “제가 본 젊은 세대의 움직임은 결국 이 시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방송을 할 수 있다는 편리함은 유저에게도 셀러에게도 편리할 것 같았어요.”

결론을 내린 뒤엔 라이브커머스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한국 시장을 학습시키는 일을 했다. 소상공인과 제조업자 등 판매자들은 유튜브가 대세가 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디지털 전환에 대한 고민을 나름대로 이미 하던 터라 필요성은 알았지만, 어떻게 라이브 방송을 판매에 적용할지 몰랐다. “라이브는 편집을 할 필요가 없어서 영상 제작보다 쉽고, 내 고객과 영상통화 하듯 이야기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득했어요. 여기에 공감한 셀러들은 자신의 손님을 이끌고 그립에 입점했죠. 그 다음 풀어야할 과제는 일반인 판매자들이 라이브 방송을 할 줄 모르는 현실이었어요. 카메라를 켜놓고 말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죠. 유상무, 장동민, 강예빈, 백보람 등 연예인을 그리퍼(셀러가 아닌 그립의 라이브방송 진행자)로 섭외해 일종의 샘플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라이브 영상을 통한 소통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직접 보여준 거죠. 이젠 일반인 판매자들도 자연스럽게 시청자의 닉네임을 부르거나 댓글을 읽어주고, 판매자와 시청자가 선착순 판매나 경매 등 게임도 하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수준으로 진화했어요.”

모두가 안될 것이라고 했던 라이브커머스 사업은 서비스 출시 10개월째인 2019년 11월부터 성장세가 나타났다. 성과를 보이고 있던 가운데 일어난 코로나19 팬데믹은 성장세에 속도를 붙였다. 수억원대였던 2019년 거래액은 지난해 243억으로 늘었다. 첫 6개월 동안 49개 입점업체를 겨우 모았지만, 지금은 하루에 50∼100개 업체가 꾸준히 신규로 들어오고 있다. 현재 누적 입점업체 수는 8천여개다. 7명이었던 직원도 지금은 40명으로 늘었다.

‘라이브커머스 솔루션 구독’으로 사업 영역도 확대했다. “신세계 등 기존 유통사들이 라이브커머스를 도입하면서 그립의 솔루션을 쓸 수 있는지 문의가 많았어요. 원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오픈 API로 솔루션을 개방해 소프트웨어 구독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유통사가 원래 갖고 있던 앱에 연결만 하면 바로 라이브커머스가 가능합니다. 지금은 신세계, 아모레퍼시픽, 에이케이, 홈플러스 등 10여개 회사가 고객사입니다. 지난해 하반기 이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을 새로 만들어서 올해부턴 솔루션 구독 사업도 본격적으로 영업을 해보려고 해요.”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가 6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재택근무 중이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립의 시작은 예상 밖 순항 중이지만…

실패할 거란 예상을 깨고 그립은 순항 중이지만, 김 대표는 개척자로서의 뿌듯함보단 사업 모델의 정착에 대한 걱정이 더 커 보였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라이브커머스에 뛰어드는 많은 기업들은 애초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립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중간 단계 없이 직접 만나서 소통하는 모습을 그리며 태어났어요. 직접 소통하는 장이 열리면 재미도 있고 효용도 높아지면서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타트업으로서의 꿈과 비전을 담아서요. 하지만 자본력이 있는 기업들은 피디와 작가를 통해 영상을 구성하고 스튜디오에서 방송용 카메라를 써요. 지하상가에 있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이 성능이 떨어지는 스마트폰으로 영상통화하듯 방송을 하는 그립과 전혀 다르죠. 애초 저의 생각과 다른 비전으로 라이브커머스 시장을 바라보는 이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응원 받는 여성 창업가’로서도 어깨가 무겁다. 김 대표는 여성에게 척박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드물게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 창업자로 꼽힌다. ‘김 대표의 그립’이 잘 돼야 후배 여성 창업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격려, 부담을 동시에 받고 있다. “저는 다행히 창업 과정에서 특별히 부당한 경험을 하진 않은 것 같다”면서도 “여성 창업자가 투자를 꾸준히 받으면서 사업을 키워가는 것이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은 분명하다”고 그는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첫 투자를 받았던 다른 여성 창업자들이 몇명 있었어요. 출발은 같았지만 지금은 위치가 다 다르죠. 사업의 성패에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치지만, 여성 창업자가 연속적으로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키우긴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이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더라고요. 구글의 아시아 여성 창업자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나라의 창업자들과 소통하면서, 심지어 실리콘밸리에도 성공한 여성 창업자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그립을 더 키우는데 집중할 시기이지만, 여성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언젠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그립을 더 잘 키우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매일 노력합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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