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정치의 사법화와 입법 무능 / 박용현

박용현 2021. 1. 12. 17: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침햇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연합뉴스

박용현 ㅣ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효력을 정지시킨 법원 결정은 여러가지 절차 위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단 하나만 인정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명쾌하지는 않다. 상반된 판례가 존재한다. 법리가 난해한 것도 아니니 각자 상식에 입각해 판단해볼 만하다.

쟁점은 이렇다. 검사징계법 17조 4항은 ‘징계위원에 대한 기피신청이 있을 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의사정족수)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의결정족수)으로 기피 여부를 의결한다. 이 경우 기피신청을 받은 사람은 그 ‘의결’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의결’이란 기피 여부를 다루는 회의 전체를 의미할까, 아니면 기피 여부에 대한 찬반 표결 과정만 의미할까?

재적위원이 7명이고 5명이 회의에 출석했는데 이 중 2명이 기피신청을 당했다. 전자로 해석하면 이 2명은 회의 자체에 참여할 수 없는 만큼 의사정족수(4명)를 채우지 못한다. 후자로 해석하면 5명이 회의에 참가한 만큼 의사정족수를 채운 게 된다. 다만 기피신청을 당한 위원은 의결정족수 산정에서 제외되고, 나머지 출석위원 3명의 과반수인 2명 이상의 의견이 모아지면 의결이 성립한다.

정족수 문제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두번째 해석을 채택하고 있다. 기업 이사회, 조합원 총회, 종중회의 등의 구성원이 자신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의결권을 박탈당하는 경우 의사정족수에는 포함시키되 의결정족수에서는 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징계위라는 상황을 직접적으로 다룬 대법원 판례는 아직 없다.

고등법원 판례는 있다. 그러나 서로 엇갈린다. 윤 총장 징계 효력정지 결정에서는 대구고법 판례(2011나7797)를 참조했다. 위의 첫번째 해석을 따른 판결이다. 반면 서울고법 판례(2006나71818)는 위의 두번째 해석을 따랐다. 이 판례는 이번 결정에 언급되지 않았다.

판례를 떠나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느 한쪽이 절대적 정합성을 지니는 건 아니다. 결국 어떤 시각을 가진 판사가 해당 재판을 맡는지에 따라 결론이 좌우되는 셈이다. 이는 법관의 독립적 재판을 보장하는 한에서는 피할 수 없는 불합리성이기도 하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대법원 판례가 나오면 되지만, 그보다 국회가 입법으로 정족수 산입 방식을 못박는 게 더 간명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검사징계법 17조 4항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치밀하지 못했다. 2019년 4월 징계위원 기피제도를 새로 도입하면서 이 조항이 신설됐는데 정부가 낸 법안에는 정족수 규정이 아예 없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채이배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를 지적하자 별다른 토론도 없이 공무원징계령에 있는 문구를 그대로 가져다 넣었다. 이 문제를 두고 법원 판결이 엇갈리는 현실을 법사위원들은 인식조차 못 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징계 사건에서 이 조항에 대한 한 법관의 해석이 징계 효력정지라는 중차대한 정치적·법적 국면을 결정짓게 만들었다.

‘정치의 사법화’가 우려를 낳고 있다. 갈등을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고 검찰·법원으로 달려가는 정치권의 행태는 물론 잘못됐다. 하지만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하는 사안도 있게 마련이다. 이때 판단의 주체는 법관이 되지만 판단의 룰을 정하는 것은 선출권력인 국회다. 검사징계법 조항을 명확히 만들었더라면 그 해석 문제로 사법권력 과잉 논란을 빚지 않았을 것이다.

법의 해석과 함께 사실의 판단도 법관의 재량이 지배한다. 윤 총장 징계 사유 중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부분을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해 벽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은 엄연한 주요 대선 주자로 거듭 각인됐고 이는 호불호를 떠나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바다. 검찰의 생명인 정치적 중립성이 위협받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인데도 법원은 아무 문제 없다는 식이다. 이렇게 사실 판단에서 나타나는 괴리도 법관 개인에게 독립된 재판을 맡기는 한 불가피한 비합리성의 하나이며, 이를 개선하는 일 역시 입법의 영역이다. 좁게는 징계 사유가 되는 검사의 정치적 언행을 더 엄격하게 규정할 수도 있고, 넓게는 배심원제처럼 사실 판단에서 시민의 의견이 재판에 반영되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선출권력의 우위는 당위의 부르짖음에서 나오지 않는다. 법전에 법을 새겨 넣는 권한을 시민의 뜻에 따라 제대로 행사하면서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pia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