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수소 '원전 내 측정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김정수 2021. 1. 1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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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일어나선 안 되는 '비계획적 방출' 지적했는데
기준 없는데도 "다른 기준 갖다붙였다"며 왜곡
위험성 적다며 피폭량 '바나나' '멸치'에 빗대
현재 유출 영향 반영됐다고 보기 어려워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 전경. <연합뉴스>

<한겨레>는 지난달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를 근거로 2019년 4월 월성원전 부지 내에서 리터 당 71만3000Bq(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원전 3호기의 터빈 건물 하부 지하수 배수로(터빈갤러리) 맨홀의 고인 물에서 검출된 겁니다. <한겨레>는 검출 지점이 방사성 물질의 정해진 배출 경로가 아니라는 점, 검출 농도가 배출 경로에 적용되는 배출 관리기준의 17.8배에 이르는 고농도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지난 7일 <문화방송>(MBC)도 같은 보고서를 근거로 비슷한 내용의 리포트를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은 원자력 전문가와 한수원 관계자의 입을 빌어 ‘원전 내 측정기준’이 아닌 ‘배출 허용기준’을 적용해 위험을 과장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가 11일 보도한 ‘월성 방사능 누출?…“멸치 1g 먹는 수준”’이라는 제목의 기사, <한국경제>가 12일자에 실은 ‘방사성 물질 삼중수소 다량 유출?…“원전 주변 지하수에선 검출 안돼”’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표적입니다. <한국경제>는 이 기사에서 한수원 관계자가 “‘위험을 과장하기 위해 서로 다른 기준을 억지로 갖다붙인 것’이라고 꼬집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보도와 달리 원자력안전 관련 법령 어디에도 ‘원전 내 측정 기준’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원전 지하는 규정된 배출 경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전 지하로 방사성 물질이 지속해서 유출되는 상황은 상상할 수도 없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원전에서 계획된 배기구와 배수구를 통하지 않은 이런 ‘비계획적 방출’은 농도와 무관하게 원자력법에 따른 운영기술지침 위반입니다. <한겨레>는 지하로 누출된 삼중수소에 적용할 기준치가 없는 상태에서 누출된 농도를 설명하기 위한 참고치로 배출 관리기준(4만Bq/L)을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지하 유출에는 적용되지 않는 기준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원전 내 측정 기준이 있는 것처럼 말한 일부 원자력 전문가와 한수원 관계자,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도한 언론이야말로 사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월성원전 삼중수소 유출 문제의 핵심은 방사성 물질이 정해진 배출 경로가 아닌 지하로 장기간 누출됐으며, 그렇게 오염된 지하수가 원전 외부 환경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또한 한수원과 규제 당국이 이런 상황에서도 정확한 누출 원인과 규모,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일부 원자력 전문가와 한수원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바나나와 멸치까지 동원해 원전 주변 주민들의 방사선 노출 위험도 논쟁으로 바꿔 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월성원전 지하의 방사성 물질 누출은 즉각 원인과 누출 규모를 확인해 막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주변 환경과 주민들의 건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가는 그다음에 따져볼 일입니다.

지난 11일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최덕종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대변인이 “월성원전 삼중수소 유출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박성중 간사 등 국민의힘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월성원전 수사 물타기 규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따라 <한겨레> 보도는 누출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집중했고, 삼중수소의 건강 영향과 관련해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에 대량 함유돼 논란을 빚고 있는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서 내부 피폭을 일으켜 유전자 변이를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언급한 것이 전부입니다. <엠비시> 보도도 삼중수소의 건강 영향까지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누출 사실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췄을 뿐 어디에도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과장한 대목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를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은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취지로 비판했고, 이런 주장은 보수언론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조선일보>는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의 코멘트를 소개하며 “(월성원전 삼중수소 지하 유출 보도가)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과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정 교수는 “월성 주변 지역 주민의 삼중수소로 인한 1년간 피폭량은 바나나 6개 또는 멸치 1g 섭취, 흉부 X레이 1회 촬영의 100분의 1 정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삼중수소는 일상에서도 검출되는데, 당연한 것을 이상한 음모로 몰아가면서 주민 불안을 부채질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도 해당 기사에서 “삼중수소의 위험성도 과장됐다는 (것이 한수원의) 지적”이라며 “삼중수소는 바나나와 멸치 등 자연상태에도 존재한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삼중수소의 영향이 매우 미미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설명입니다.

일부 원자력 전문가와 한수원이 월성원전 주변 주민 몸속의 삼중수소 피폭량을 근거로 원전 지하로 유출되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이 미미하다고 주장하는 것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이 설명에서 사용한 원전 주변 주민의 삼중수소 피폭량은 한수원이 해마다 시행하는 ‘월성원전 주변 환경방사능 조사·평가’를 근거로 한 것입니다. 지금 문제가 된 지하 유출 삼중수소의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경북대 방사선과학연구소가 한수원 용역으로 시행한 환경방사능 조사 결과를 보면, 원전 인근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의 지하수에서 지난해 검출한 삼중수소 함유량은 2.83~8.81Bq/L입니다. 인근 나산리의 지하수는 검출한계치 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수원 보고서를 보면 월성원전 부지 북서쪽 경계 지역에 설치한 지하수 관측정 5곳에서 검출된 삼중수소 농도는 최대 1320Bq/L에 이릅니다. 이 농도의 삼중수소가 원전 부지 경계를 넘어 계속 확산할 위험까지 기존 조사 결과에 반영돼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좀 더 본질적입니다. 일본이 삼중수소가 대량 함유된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것을 한국이 반대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일본은 오염수를 물로 희석해 배출기준에 맞춰서 방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인체 건강과 환경을 고려해 설정한 배출기준을 지켜서 방류하려는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는 정상적 원전 운영에 따른 오염수 배출과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추가 발생한 오염수 배출을 같이 취급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맞서 왔습니다.

이런 주장의 밑바닥에 깔린 것이 국제방사성방호위원회(ICRP)의 알라라(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입니다. 방사선은 기본적으로 유해하기 때문에 피폭선량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한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이 원칙은 월성원전에서 정상적 배출 경로가 아닌 지하로 유출되고 있는 방사성 물질에도 적용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 해상 방류를 반대할 근거를 스스로 허무는 일이 될 것입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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