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으로 가출한 사춘기 소녀.. '언니 외교관' 기지로 돌려보냈다

김은중 기자 입력 2021. 1. 12. 17:10 수정 2021. 1. 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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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가 가출해버렸어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지난달 15일(현지 시각) 새벽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의 최예경 사건·사고 담당 영사는 서울에서 걸려온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7세 소녀 A양이 부모와 상의 없이 비행기 티켓을 끊어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경찰에 가출 신고까지 됐지만, 이미 비행기 이륙이 이루어진 뒤라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최 영사는 부모로부터 받은 증명 사진 한 장만을 들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로 달려갔다. 키와 체형, 캐리어 색깔, 안경의 착용 유무 등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어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혹시나 입국장 안에서 더 빨리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싶어 미 출입국 담당자들을 상대로 전화를 수십여통 돌렸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서 A양을 만났지만 그는 “한국으로는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최 영사는 ‘어서 귀국시켜달라’는 부모에게 “일단 지금은 아무 것도 묻지 마시라”고 했다. 그러고는 아침과 점심을 굶은 A양을 현지의 유명 햄버거집으로 데려갔다.

A양의 마음을 녹인건 ‘언니 외교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최 영사는 한국에 돌아가면 혼날까봐 걱정하는 A양에게 “네 인생을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게 중요하다”며 “나중에 더 당당하게 미국에 와서 이루고 싶은 꿈들을 펼쳐보는 것은 어떠냐”고 했다. 또 “언니도 너처럼 고민도 많고 힘든 때가 있었다”며 자신의 10대 시절에 대해 얘기했다. A양은 그제서야 울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장장 24시간에 걸친 가출은 이날 자정 A양이 서울행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종료됐다. ‘햄버거집과 영사관에서의 수다’는 두 사람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잠도 자지 않고 인천 입국 상황까지 챙긴 최 영사에게 A양의 부모는 “꼭 잘 자라게 해서 다시 한번 뵙게 하겠다” “우리에게 큰 복이었다”고 했다. 최 영사는 “학생이 제 얘기를 귀 담아서 들어주고 잘 도착했다니까 오히려 더 고마웠다”고 했다.

최 영사는 외교부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8년 외무영사직 시험에 합격해 그해 9월 부임한 비교적 ‘새내기 외교관’이다. 사건과 사고를 담당하는 영사로서 그가 받는 문의는 외롭거나 정보가 없어서 생기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영사 업무를 하다보면 법, 제도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면 해결되는게 팔 할 이상이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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