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보다 검정고시'..고교생 2만3000명이 학교 떠났다

김제림,문광민 2021. 1.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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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고교생 1.69%가 그만둬
교우관계·부적응 문제보다
대학진학 등 학업목적 늘어
내신 받기 쉬운 검정고시 선택
#김 모씨(21)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가 가득했지만 성적순으로만 학생을 판단하는 학교 분위기,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무례한 행동을 하는 교사에게 트라우마까지 생기면서 학교 생활은 지옥이 됐다. 성적이 떨어지면서 스스로 자책하다 우울증까지 걸려 담임선생님을 찾아갔지만 "바쁜데 너까지 힘들게 해야겠느냐"는 말에 크게 실망하고는 미련 없이 학교를 나왔다. 그 후 정신과 상담도 하고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인 은평구 꿈드림에서 진로를 위한 다양한 문화 체험 활동과 검정고시 준비를 해 고2 나이인 18세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그해 바로 대학 입시에 응시해 합격했다.

제도권 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고등학교 학업을 중단하는 비율이 계속 늘고 있다. 작년 고등학교 학업 중단율은 8년래 최고치인 1.69%로 전체 141만명 중 2만3894명이 학교를 떠났다. 학업 중단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인관계 등 학교 생활 부적응을 이유로 한 자퇴는 줄어들고 검정고시 준비 등 다른 형태로 학업을 이어가기 위한 자퇴는 늘어나고 있다. 통상적으로 검정고시 준비 등은 '기타' 사유로 분류되는데, 기타 사유는 2014년 22.7%에서 2020년 52.8%까지 올라왔다.

임창세 서울시교육청 학교밖청소년도움센터 전문상담사는 "도움센터가 생긴 2014년 초창기에는 가출청소년들이 많이 왔는데 오히려 요즘은 검정고시를 따려고 하는 청소년이 많이 오고 있다"면서 "이 센터에 등록한 학생 100명 정도가 검정고시를 치는데 그중 10명 정도는 아예 학교가 안 맞아 처음부터 검정고시라는 확실한 목표를 두고 일찍 그만둔 경우"라고 설명했다. 도움센터가 보통 자퇴한 가출청소년이나 문제아들이 모인 곳이란 편견이 있지만 오히려 외국 학교나 자격증을 준비하기 위해 공교육에서 일찍 일탈한 학생도 상당수며 서울시 학교밖청소년도움센터에서는 검정고시 합격률이 97.6%나 될 정도로 고등학교 자퇴 청소년들의 학업 의지도 강하다.

중학교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으나 학교 생활에 별다른 흥미를 가질 수 없었던 A씨는 고등학교 공부가 자기 진로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중학교 중퇴 후 고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았다. 일찍이 미국공인회계사(AICPA)가 되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선 홀로 공부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현재 서울시교육청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친구랑에 마련된 공간에서 회계와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아예 검정고시를 일종의 '패스트트랙'으로 보고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친구나 교사와 갈등이 있으면 아예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 자퇴를 선택해서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수시나 정시를 노리는 전략이다. 자퇴하는 경우는 검정고시 성적으로 내신등급이 산출되는데 성적이 잘 나올 때까지 계속 도전할 수 있어 오히려 내신 경쟁이 치열한 학교보다는 내신등급을 받기도 쉬운 편이다. 특히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시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에는 내신등급이 불리한 학생들은 오히려 정시 준비에 몰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거나 내신을 따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학교로 옮기기도 한다. 20년 전 과학고·외국어고에 국한된 자퇴가 이젠 일반고로도 확대되고 있다. 영재고·과학고 학생들이 내신등급을 위해 일반고로 전학해 최상위권을 차지하면 내신등급이 불리해진 일반고 학생들은 결국 자퇴해 검정고시로 내신등급을 받거나 수능에 집중하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교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도입된 수시 교과전형이 오히려 일부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이탈하도록 부추기는 영향력이 된 셈이다.

내신 경쟁이 아니더라도 학교에서 느끼는 학업 압박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사례는 여전히 많다. 국가교육회의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조사(전체 9914명 대상)에 따르면 '나는 공부나 시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응답한 학생은 초등학생의 경우 31%에 불과했으나 고등학생은 69.2%로 늘었다. 또한 '나는 학교에서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응답한 학생 수도 초등학생은 15.5%였으나 고등학생은 33.2%로 대입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학교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경험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등교 일정이 줄어들면서 자퇴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학교 현장에선 전망하고 있다. 매년 10% 초반 비율인 해외 출국이나 교우관계 부적응 등의 요인은 줄어들지만 학교 교육에 의미를 찾지 못해 자퇴하는 학생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최창수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생활교육과 장학관은 "자유로운 교육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서 홈스쿨링을 택한 부모도 있고 대안교육 위탁기관 역시 많아지고 있다"며 "시대가 변하면서 늘어난 자율적인 선택지를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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