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원칙주의 능력자보다 유연한 조력자가 되라

2021. 1.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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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한 치의 틈을 주지 않고 매뉴얼과 규율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이 있다. 그들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직원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낄 동료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직장 생활이 인간미 풀풀 풍기는 매력 경연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원칙대로’에 ‘배려’와 ‘이해’의 따뜻함과 겸손을 조금이라도 접목시키는 융통성은 필요할 것이다.

▶원칙주의 VS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직장 생활에서 상사나 동료들이 당신을 ‘원칙주의자’라고 부른다면, 이는 칭찬일까 비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칙주의자는 결코 비난받거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한다. 원칙주의자는 전통, 규범, 질서를 중하게 여기고 정해진 매뉴얼을 따르기에 실수를 하거나 남을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자신은 물론 조직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지 않는다. 물론 원칙주의자라는 말 속에는 ‘융통성이 부족하다’, ‘고지식하다’, ‘여유가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원칙주의에 반하는 실용과 실리를 우선해 권한 밖의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일의 순서를 제멋대로 바꾸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 실패를 부르는 지름길이다.

원칙주의자 역시 마음먹는다고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황, 어떤 상대에게도 편차 없이 원칙으로 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원칙의 전제 조건에 있어 ‘공정’이 기준임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누구에는 당연히 ‘자신’도 포함된다. 누구나 인정하는 원칙주의자가 되려면 우선 자신의 행동에 원칙의 벽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원칙대로’라는 말과 행동을 인정받고 권한이 생긴다.

‘그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원칙대로 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지 않고 정해진 법, 규범대로 하는 것이 올바른 원칙주의자의 원형이다. 역사에서도 원칙에 입각, 개인적 호불호를 따지지 않고 법을 집행한 속이 단단한 인물들이 있다. 제갈공명, 그는 자신이 후계자로 생각하고 가르친 마속의 실패를 눈감아 주지 않았다. 제갈공명은 마속의 자만심을 우려했지만 마속은 ‘내 목을 바치겠다’는 군령으로 약속하고, 제갈공명에게는 중요한 전투에서 그릇된 판단으로 패전했다. 포박 당한 채 무릎을 꿇은 마속을 보며 제갈공명은 번민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제갈공명에게는 마속의 목을 치지 않고 다른 벌로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제갈공명은 끝내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의 목을 베고 군령의 지엄함을 내보였다. 이순신 장군 역시 대표적인 원칙주의자다. 장군 역시 규율을 어긴 장병을 엄하게 다스렸다. 애민 정신이 누구보다 강했지만 적을 눈앞에 둔 이순신 장군의 선택은 엄중한 군기였다. 당연히 원칙의 잣대는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다.

원칙주의자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말은 ‘부러질지언정 휘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치 독립운동가의 좌우명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같은 세태에서 휘지 않고 부러지는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이 역시 찾기 힘들다. ‘나는 불의를 보면 참는다’는 말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원칙은 이미 ‘무너진 탑’이 된 지 오래다. 그것은 원칙주의자를 더욱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흔들리는 갈대 같은 마음을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 원칙대로가 갖고 있는 본질의 한 단면도 우리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원칙대로’라는 것은 어쩌면 ‘No’를 나타내는 가장 간편하면서도 섬뜩한 말이다. 장시간 회의 마지막에 ‘의견이 분분하니 그럼 원칙대로 합시다’라며 열정적인 토론을 무색하게 만드는 갈음처럼 말이다. 칼날을 세우고 도장을 꽉 틀어쥐고 있는 갑에게 ‘원칙대로’는 권력이고 무기다. 그 말을 받아들여 현실과 행동에 적용해야 하는 이에게는 몸과 마음을 옥죄는 올가미 같은 말이다. ‘원칙대로’는 편할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수동적, 수축적인 행동을 유발한다. 이 결정이, 이 행동이 혹시라도 사규와 규범에 어긋나지는 않은가를 수시로 체크하고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결과의 책임에서 모두가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유연함과 융통성을 가장해 정해진 원칙과 규율을 위반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처럼 서로의 단점과 모자람을 눈감아 주자는 말이 아니다. 공장 건물 하나 짓거나 집을 짓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한다. “대한민국에 서류와 증명서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모르니까 용감하게 나섰지, 알고는 두 번 다시 못하겠다.” 물론 지금이야 민원인의 갑질이 더 심각한 세태지만 도장을 찍어 주는 각종 인허가에 관련된 이들의 ‘원칙대로 합시다’라는 말에 발걸음을 몇 번이나 되돌리는 경우가 과거 허다했다. 그들은 당연히 ‘원칙대로 했다’고 말한다. 증빙 서류, 각종 증명서를 매뉴얼대로 요구했고 그 양식이나 접수 기한 또한 매뉴얼대로 했다고. 하지만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야속한 말이다. “서류 하나가 빠졌는데 일단 접수시켜 주시면 오후에 바로 준비해서 내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담당자는 서류를 다 갖추어서 다시 접수하라 한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다 그르지 않다. 오늘 접수증을 갖고 가서 은행 대출을 받아야 자금 회전이 가능한데 그것을 봐주지 않는다는 섭섭함도, 미비 서류를 접수하고 도장을 찍어 주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지냐는 반박도 이해가 된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부하 직원은 물론 상사에게도 한 치의 틈을 주지 않고 매뉴얼과 규율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 있다. 그들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등 장점이 많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동료는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직장 생활이 인간미 풀풀 풍기는 매력 경연장은 결코 아니다. 다만 ‘원칙대로’에 ‘배려’와 ‘이해’의 따뜻함과 겸손을 조금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K기업 박 차장은 알아주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능력도 있고 절도가 있으며 일 처리 또한 깔끔하다. 박 차장은 모든 일에 ‘칼’이다. 물론 조금은 ‘빡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테면 팀원들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교체 문제가 그렇다. 원칙적으로 3년을 써야 한다. 하지만 쓰다 보면 기한이 되지 않았지만 교체할 필요가 있다. 이때도 박 차장은 3년에서 단 하루만 모자라도 결재를 하지 않는다. 출퇴근 근태는 당연하고, 점심시간도 박 차장 팀은 예외 없이 딱 1시간 10분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박 차장의 레이저 눈빛을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사후 영수증 처리도 꼼꼼하기 짝이 없다. 택시비는 거리를 계산해 체크하고, 주말, 퇴근 시간 이후의 경비 역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단돈 1원도 허용치 않는다. 예외가 없다. 본인은 물론이고 부장의 법인 카드에도 박 차장은 어김없이 빨간 줄을 긋는다. 팀원들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다. 경위서, 시말서를 항상 받고 이를 연말 인사 평가에 반영한다.

처음, 팀원 모두 박 차장의 철두철미한 일 처리에 공감했다. 하지만 점차 박 차장의 원칙대로에 숨이 막힌다는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박 차장은 점점 조직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부장을 비롯해 팀원들은 박 차장과의 소통 과정을 생략했다. 그의 의견과 반응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의 답을 알고 있는데 굳이 답을 맞춰 보는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또 각종 소통으로 얻어질 수 있는 정보에서 박 차장은 소외된다. 원칙주의자 박 차장에게서 정해진 것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데 무엇을 주겠다고 나서는 동료가 있을 수 없다. 물론 타고난 능력, 깨끗한 처신, 치열한 노력으로 박 차장은 승승장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부장, 임원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마음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부하 직원과 동료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능력을 보고 따르는 것과 인품을 보고 따르는 것은 그 깊이가 다르다. 능력은 위치와 상황에 따라 50%를, 때로는 200%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인품에서 우러나는 ‘리더십의 진면목’이다. 위아래가 모두 부담스러워하는 ‘원칙주의 능력자’는 되지 말자. 대신 위아래가 필요로 하는 ‘능력 있는 조력자’가 되자. 그런 직장인이 되는 방법, 의외로 간단하다. 원칙의 폭을 넓혀야 한다. 공자는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경계가 분명치 않을 때, 너그러움이 먼저다”라고 말씀하셨다.

중국 한나라 재상 ‘주아부’, 그는 원칙주의자이다. 한나라 개국 공신 주발의 둘째 아들로 그야말로 금수저다. 게다가 능력도 출중해 엘리트로 성장했다. 외적과 내란을 진압하고 재상이 되어 그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이유는? 황제를 비롯한 주변 사람 모두 주아부를 “능력은 참 좋은데 너무 꼿꼿해서 부담스럽다”고 평했다. 그야말로 부러질지언정 휘어질 줄은 모른 원칙주의자의 최후다.

▶개국 공신 집안 출신의 금수저 엄친아

주아부의 아버지 주발은 유방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한나라를 창업한 인물이다. 주발은 그 공으로 공신 서열 4위, 식읍 8100호를 받고 조후에 봉해졌다. 주발은 유방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제후들의 반란을 토벌해 한나라의 안정된 기틀을 마련했다. 모든 전란이 마무리되고 유방이 죽었다. 유방의 차남 유영이 황제가 되었다. 이가 혜제다. 혜제는 나약해 실권은 혜제의 생모 여 태후와 그 일족이 장악했다. 혜제를 이어, 소제가 황위를 이었지만 여 태후의 통치는 계속됐다. 때를 기다리던 주발은 여 씨 일족을 숙청하고 유방의 넷째 아들 유항을 제위에 올렸다. 이것이 문제다. 문제는 “주발이 고조와 한나라를 창업하고, 나를 도와 한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유 씨의 버팀목이다”라며 극찬했다. 주발은 승상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문제는 주발이 부담스러워졌다. 문제는 주발에게 영지로 가라고 명했다. 영지로 돌아간 주발은 군사가 들이닥쳐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에 불안했다. 그는 병사와 하인들을 무장시켰다. 이런 행동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주발이 모반을 꾸민다는 보고를 받은 문제는 주발을 옥에 가두었다. 주발은 공이 있으니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심문은 가혹했다. 토사구팽 당한다는 생각에 좌절한 주발에게 “옥리에게 뇌물을 주고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측근이 조언했다. 주발은 옥리에게 황금을 주었다. 옥리는 주발의 편의를 봐주었다. “승상, 왜 이렇게 옥고를 치르고 있습니까. 며느리가 공주인데 손을 쓰시지요.” 장남 주승기의 부인은 문제가 가장 아끼는 딸이다. 주발은 공주를 통해 문제의 모후 박 태후에게 손을 썼다. 박 태후의 동생 박소에게 황금 5000근을 바치고 박 태후의 마음을 움직였다. 문제는 주발을 풀어 주었다. 문제는 주발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공이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것이 싫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제후들에게 주발을 본보기 삼은 것이다.

이후 주발이 죽었다. 그의 봉작과 영지는 주승기가 이어받았다. 주승기는 경박한 인물. 황제의 사위, 공신의 아들이라는 배경만 믿다가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 문제는 주승기의 봉작을 파하고 귀양 보냈다. 주아부는 봉작을 이어받아 조후가 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영리했다. 다만 강직한 성품의 원칙주의자. 친구도 많지만 적도 많았다.

주아부는 승진가도를 달렸다. 타고난 능력과 든든한 배경으로 엘리트로 성장했다. 흉노가 침범했다. 문제는 군대를 3부대로 나누어 각기 유례, 서여, 주아부를 대장으로 임명했다. 문제는 3군을 방문해 했다. 문제는 서여와 유례의 부대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장병들은 도열하고 장군들은 말에서 내려 황제를 맞았다. 문제는 흡족했다. 주아부의 부대를 찾았다. 황제의 선발대가 문을 열라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군영에서는 장군의 명령이 최우선이다. 폐하의 명령이 있더라도 안 된다”고 대꾸했다. 문제는 황제의 부월을 내보였다. 그제야 성문을 열었다. 황제가 말을 타고 들어서는데 주아부의 부관이 제지했다. “군영에서는 누구도 말을 탈 수 없습니다.” 지휘부에 도착하니 주아부와 장군들이 군례를 했다. “신이 지금 군장을 입고 있어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엄정한 군기의 주아부 군대를 칭찬했다. 주아부는 엄격했다. 자신에게는 물론 조직 관리에서도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주아부의 처신은 상사로서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충실한 부하지만 선배나 동료에게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로 보일 수 있다. 더구나 상사가 그의 사심 없는 마음과 탁월한 업무 능력, 공평한 처신을 믿고 신뢰할 때 ‘원칙의 효용성’은 발휘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조직에서 의도치 않은 적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이다.

▶엄격과 배려가 부딪치면, 너그러움 먼저

문제가 죽고 21세의 젊은 황제 경제가 즉위했다. 경제는 제국의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싶었다. 경제는 강력한 중앙 집권제를 원했다. 어사대부 조착이 꾀를 냈다. 당시 제후들의 권력은 강했다. 그들은 한나라 종친, 공신의 후예들이었다. 경제는 제후들의 영지 삭감, 영지 교환을 명령했다. 오왕 유비의 저항이 거셌다. 오왕 유비는 53개 성을 거느리며 광산과 염전을 소유한 실력자였다. 오왕 유비는 다른 제후국들을 부추겼다. 오나라는 물론, 초나라, 가나라 등이 가담했다. 이른바 ‘오초7국의 난’이다.

경제는 이 반란의 원인을 제공한 조착을 죽여 오왕에게 보냈다. 하지만 오왕의 목적은 조착 따위의 목숨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는 “위급한 일이 생기면 주아부와 상의하라”는 아버지 문제의 유언을 생각해 냈다. 경제는 주아부에게 오초의 난을 진압하라는 명을 내렸다.

주아부는 전황을 분석했다. 정면 승부보다 양나라가 오나라를 막을 동안 보급선을 끊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양나라는 위기에 빠졌다. 양나라 양효왕 유무는 주아부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주아부는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 군대를 둘로 나누어 양나라를 도우면 승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양효왕은 경제에게 애원했다. 경제는 주아부에게 양나라를 도우라 명령했다. 하지만 주아부는 거부했다. 구원병이 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된 양나라는 악으로 오나라 군대를 막아냈다. 보급선이 끊겨 식량이 떨어진 오나라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오나라와 초나라 군대는 철수했다. 주아부는 일제히 군대를 몰았다. 오왕 유비는 도망가고, 초왕 유무는 자살했다. 주아부는 오초7국의 난을 평정했다. 주아부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2대가 한나라를 구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칭찬을 받았다. 주아부는 승상이 되었다. 부자가 대를 이어 승상이 된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이 세상사. 양나라 양효왕 유무, 그는 경제의 친동생. 그는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주아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형인 황제와 어머니인 태후를 만날 때마다 주아부를 험담했다. 주아부도 양효왕의 이런 행동을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칙을 지키며 승상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사리사욕을 앞세우지 않고 정무를 보고 있는 스스로가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점차 주아부와 경제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경제는 태자를 폐하고 싶었다. 원칙주의자 주아부는 이를 반대했다. 경제는 주아부의 말을 수용했지만 불쾌했다. 그때 효경 황후가 오라비 왕신에게 제후직을 달라 경제에게 간청했다. 경제는 ‘외척은 제후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들어 반대했지만 결국 효경 황후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주아부는 완강했다. “고조의 유지는 유 씨가 아니면 왕이 될 수 없고, 공이 없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왕신이 황후의 오라비지만 공이 없는데 제후가 될 수 없습니다.” 옳은 소리였다. 하지만 경제는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는 주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때 흉노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흉노 족장 다섯이 한나라에 투항했다. 경제는 이들에게 봉작을 주기로 했다. 주아부는 반대했다.

“그들은 군주를 배신한 족장입니다. 이들을 제후로 받아들이면 장차 신하가 폐하를 배반할 때 과연 무슨 명분으로 그들을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들은 제후로 임명되었고 경제의 결정에 불만이 생긴 주아부는 어전 회의에도 불참했다. 경제는 주아부의 원리원칙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1인자도 예외 없는, 원칙대로 법대로

주아부는 승상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경제는 주아부를 불러 연회를 마련했다. 관계가 소원했던 신하를 대접하는 마음과 주아부의 속마음을 알아보려는 두 가지 의도였다. 그런데 주아부 앞에 큰 고깃덩어리만 놓여 있었다. 숟가락, 젓가락은 물론 칼도 없었다. 주아부는 시종들이 실수한 것으로 판단했다. 시종을 불러 젓가락을 청했다. 이 광경을 보던 경제는 웃음을 지으며 “공에게는 이 정도의 대접이 부족한가?”라고 물었다. 주아부의 얼굴은 굳었다. 그는 화가 난 것을 숨기지 않았다. 경제는 혀를 차며 말했다. “숙이지도 못하고, 감정을 감추지도 못하는구나. 나는 모르겠지만 어린 황제의 신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경제는 주아부를 시험한 것이다. 그의 가문이 황실과 밀접하고 공도 많지만 강직한 인물이라 황제의 의도된 놀림과 명령에도 얼마나 유연성을 갖고 대응하는지 살펴본 것이다. 그런데 주아부는 ‘나를 놀리는구나’라는 속마음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냈다. 경제는 어린 태자가 주아부의 강직함을 당해 내지 못한다고 판단, 주아부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주아부의 아들이 장례 용품을 미리 준비했다. 아들은 부장품으로 갑옷과 방패 500벌을 황실 납품 공장에 주문했다. 이 또한 법에 어긋나지만 주아부의 공이 있어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아들은 일꾼들을 구박하고 임금도 주지 않았다. 일꾼들은 주아부가 황제의 물건을 탐내고 역심을 품고 병장기를 주문했다고 관청에 고발했다. 경제는 주아부를 잡아들였다. 심문은 가혹했다. 관리들은 ‘주아부를 버리겠다’는 황제의 의도를 알았다. 주아부는 깨달았다. 황제가 자신을 죽일 목적임을. 강직하고 원칙대로 살았지만 황제가 이를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고문은 더욱 심해졌다. 주아부는 옥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닷새 뒤 주아부는 죽었다.

2대에 걸쳐 한나라를 구한 명장이요, 명재상이던 주아부가 굶어 죽은 것이다. 주아부는 착각했다. 황제가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아부는 자신이 아버지 주발과는 처지가 다름을 알아채지 못했다. 주발은 개국 공신이요, 문제를 세운 1등 공신이었다. 문제는 주발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 절대 공을 인정했다. 문제는 주발에게 신세를 진 것이다. 게다가 주발은 비록 뇌물이지만 황금을 뿌리며 황제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돌려 놓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경제는 주아부에게 빚이 없었다. 오히려 오초7국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동생 양효왕을 사지에 몰아넣은 것과 자신의 명령과 의견에 사사건건 ‘원칙’을 내세워 반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주아부가 황제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판단했다.

사마천은 “주아부는 군대를 부리는 데 능력있고 엄격해 제 환공의 명장 사마양저를 능가한다. 하지만 주아부는 타고난 재능과 능력에 만족했다. 즉, 자만했다. 절개와 원칙은 지켰지만 공손하고 겸양이 부족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라며 주아부의 최후를 안타까워했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2호 (21.01.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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