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복수 위해 도둑이 된 남자, 그가 추앙받은 까닭

이정희 2021. 1. 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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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뤼팽>

[이정희 기자]

모리스 뤼블랑의 <괴도 뤼팽>은 '탐정'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계의 '반전'에 해당한다. 범인이 주인공이 되어 그를 잡으려는 경찰을 희롱하며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호들을 농락하는 이야기는 <셜록 홈즈>로 대변되는 정의의 서사 맞은 편에서 또 다른 장르를 개척하며 추리소설의 고전이 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 넷플릭스
 
소설 <괴도 뤼팽>의 첫 시리즈는 '왕비의 목걸이'이다. 1874년 태어난 뤼팽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진 바람에 어머니 앙리에트와 함께 드뢰-수비즈 백작 부부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백작 부부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게 되는데, 뤼팽은 이런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백작 부부의 가장 아끼는 보물인 마리 앙토와네트의 목걸이를 훔치며 '괴도'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 넷플릭스
 

현대 프랑스 사회의 사회적 모순을 담은 뤼팽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은 바로 이 '왕비의 목걸이'를 모티브로 오늘날 프랑스, 아니 유럽 사회가 가진 구조적인 모순을 갈등의 고리로 엮는다. 세네갈에서 유럽으로 온 아산 부자. 아산의 아버지는 재벌 펠레그레니 집에서 운전수로 일을 하게 된다. 

비오는 날 차에 시동이 꺼져 고충을 겪던 펠레그레니의 아내 차에 다가가 도움을 주겠다는 아산의 아버지, 하지만 펠레그레니의 아내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협을 느끼며 차문을 잠근다. 바로 이 장면에서 이민자로서 아산 부자를 대하는 당시 프랑스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이민자였지만 아산의 아버지는 성실했고 어린 아산에게 학구열을 독려한다. 하지만 운전수라는 직업을 통해 프랑스 사회에 적응하려 했던 아산 부자의 열망은 펠레그레니 집안에서 사라진 왕비의 목걸이를 훔친 범인으로 아산의 아버지가 지목됨으로써 무너진다. 증거가 불충분했지만 가진 것 없는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죄를 추궁당한다. 결국 감옥에 갇힌 자신이 펠레그레니에게 농락당한 것을 알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홀로 남은 아산은 복지원으로 가야만 했다. 

그리고 25년의 시간이 흘러, 아산의 아버지가 훔쳤다던 그 목걸이가 다시 펠레그레니 집안에서 등장하고 펠레그레니 재단 창립 기금을 위해 루브르 박물관에서 경매에 붙여진다. 그리고 25년만에 나타난 아산(오마르 사이 분)은 유유히 그 목걸이를 훔친 채 사라진다. 자기 어머니가 당한 수모를 되갚기 위해 목걸이를 훔친 <괴도 뤼팽>의 첫 번째 작품의 오마주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뤼팽
ⓒ 넷플릭스
 
아버지의 유지 

5개의 시리즈로 이어진 <뤼팽>은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한 아산의 신출귀몰한 모험담이다. 세네갈에서 온 이민자 가정의 아산은 흑인 이민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소설 <괴도 뤼팽> 속 스토리를 활용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목이 <뤼팽>인 이유는 그저 <괴도 뤼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서사 때문만이 아니다. 세네갈에서 온, 이제는 고아가 된 소년 아산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책이 바로 <괴도 뤼팽>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감옥에서 죽은 아버지가 아산에게 남긴 메시지북이기도 하다.

복지원에서 사립 학교로 이어지는 학창생활 동안 이산은 아버지가 남긴 이 책을 읽고 또 읽으며 '뤼팽'으로 거듭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훔친 목걸이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펠레그레니에게 통쾌한 복수를 선사한 아산은 이어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쫓아간다. 남의 주머니를 슬쩍 터는 건 기본, 말 몇 마디로 경찰을 따돌리고, 자산가의 보물을 한 손에 쥐는가 하면, 진실을 찾기위해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또한 무기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한 펠레그레니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전직 기자와 손을 잡고 SNS 및 방송 출연이라는 첨단의 '폭로' 전술을 쓴다.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 <인크레더블 헐크>의 루이 리터리어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시리즈는 <셜록 홈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갈등 구조를 풀어내며 고전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시즌 2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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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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