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건반, 그리고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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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을 받으며 건반 앞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는 앙코르 곡 악보를 악기 위에 살포시 얹었다.
사실 악보를 볼 것도 없는 곡이다.
앙코르 곡만큼 이날 공연 프로그램도 독특했다.
스크리아빈부터는 끝날 때까지 모든 곡을 이어서 한번에 연주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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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을 받으며 건반 앞으로 돌아온 피아니스트는 앙코르 곡 악보를 악기 위에 살포시 얹었다. 관객 모두가 숨죽인 채 궁금증이 절정에 달한 순간. 도 샾(#) 건반 하나가 나직이 울렸다. 연주자는 피아노 건반 맨 왼쪽 두 번째 낮은 도(C)#을 누르고선 아무 것도 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여간 네박자 온쉼표가 무대를 채웠다. 연주자는 일어나 고개를 숙인 뒤 퇴장했다. 그렇게 연주가 끝났다.
오직 단 한 번의 타건이 전부인, 황당한 이 곡의 정체는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의 '세 개의 바가텔(짧은 피아노곡)'이라는 작품이다. 음악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눌러야 할 건반 위치만 안다면 누구나 연주 가능할 정도다. 사실 악보를 볼 것도 없는 곡이다.
11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더하우스콘서트'의 2021년 신년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고른 앙코르였다. 이 곡을 치기 전, 프로그램 마지막 곡은 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소타나 2번(작품번호 19)이었다. 폭풍 같은 2악장(프레스토)이 지난뒤 찾아온 앙코르곡의 적막감은 극적 대조를 이뤘다.
새해 벽두부터 수수께끼 같은 곡을 들고 온 연주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첫 음이 울린 뒤 명상의 시간 동안 임윤찬은 건반 앞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가 관객에게 던져졌지만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부터 아주 길게 이어져 오는 음악계의 쉼표를 떠올렸을지 모른다.
앙코르 곡만큼 이날 공연 프로그램도 독특했다. 리스트의 페르라르카 소네트를 시작으로 스크리아빈의 '시곡' '프렐류드' 이하느리의 피아노 소품, 라흐마니노프 '라일락' '프렐류드' 등을 쳤다. 스크리아빈부터는 끝날 때까지 모든 곡을 이어서 한번에 연주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무관중 온라인으로 개최된 공연의 일부는 '더하우스콘서트'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올해 열일곱 임윤찬은 이미 '제2의 조성진' '괴물 같은 연주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받고 있다. 일곱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에 오르는 등 일찍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예원학교를 수석 졸업한 임윤찬은 고등학교를 건너 뛰고 곧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지만, 피아노 의자에만 앉으면 돌변하는 '반전 매력'의 보유자는 올해 10월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정식 데뷔 리사이틀을 연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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