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한겨레 2021. 1.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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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두고 다시 읽은 밀턴의 <실낙원> 은 아담과 하와가 신이 금지한 사과를 먹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다.

힘든 시간, 정부를 믿고 의지해도 될까? 하지만 170석 넘게 의석을 주었는데도,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정권을 믿어도 될까? 사람들은 이미 대통령이 유혹에 넘어가 "경제만이 살길"이라 새겨진 금단의 사과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고 수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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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칼럼]오래전 이맘때쯤 들렀던 스웨덴 감라스탄, 3시만 돼도 어둑해지는 오후 시간에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기 집 문 앞에 작은 촛불을 켜서 내놓았다. 그 촛불들은 이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려는 소망인 양 하늘거리며 묘한 정취를 자아냈다. 새해 우리도 믿음의 촛불 하나 청사초롱처럼 대문에 걸어 놓으면 어떨까?

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새해를 앞두고 다시 읽은 밀턴의 <실낙원>은 아담과 하와가 신이 금지한 사과를 먹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들 앞에는 온 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그들은 이제 그중 어느 곳을 자신의 안식처로 선택해야 할지를 정해야 할 것이지만, 섭리가 그들의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낙원에서 쫓겨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한 치 앞을 모르고 또 한해를 맞이하는 우리 모습 같다. 그래서인지 ‘섭리’라는 단어에 눈이 멈췄다.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의 삶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제한다고 믿는 신 또는 힘”을 말한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이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를 이끌 것은 우리의 ‘믿음’인 셈이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엔 좋아질 거란 믿음만큼 힘이 되는 것이 없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는 “강한 믿음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라 했다. 강한 믿음이 정작 봐야 할 것을 못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암울한 인류의 미래가 진실이라 해도 우리는 비관 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죽지 않을 거면 살아야 하고, 희망적인 믿음 없이 우리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 코로나 백신만 나오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200만명 가까이 죽어간 이 비극이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거라 믿어도 될까? 하지만 백신 사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강대국들을 보고 있노라니, 전 지구적 위기가 오히려 파시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정치학자 테런스 볼의 경고에 더 믿음이 가는 걸 어떡하면 좋을까?

힘든 시간, 정부를 믿고 의지해도 될까? 하지만 170석 넘게 의석을 주었는데도,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정권을 믿어도 될까? 사람들은 이미 대통령이 유혹에 넘어가 “경제만이 살길”이라 새겨진 금단의 사과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고 수군댄다. 그렇다면 이제 ‘재벌’과 ‘선출되지 않은 관료권력’의 축하 잔치만 남은 것일까?

일하다 죽는 사람이 연간 2000명을 넘어섰고, 자살률은 다시 세계 1위가 되었으며, 출산율도 세계 최저인 0.918명으로 떨어졌다. 10%포인트 올리겠다 약속한 의료보장률은 지난 3년간 겨우 2%포인트 증가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대유행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위의 수치들은 코로나 이전 문재인 정부 3년의 성적표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억울하게 죽지 않는 세상 만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할 바에 차라리 보수 야당에 정권을 넘길까? 그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가슴에 실망과 배신의 푸른 멍은 안 들지 않을까?

며칠 전 대통령의 신년사는 ‘공정’, ‘회복’ 등 좋은 말들이 가득하지만, 대선공약은 이보다 더 화려했고, 무엇보다 이번 신년사는 형용모순이 심각하다. 자유무역과 규제자유특구의 확대, 바이오헬스 육성 등은 바로 불공정, 산업재해, 환경오염, 재난적 의료비의 원인이었다. 함께 할 수 없는 것을 ‘포용’하겠다는 것은 포용이 아니라 기만이다.

국제 연대의 정신도, 우리가 뽑은 정권도 믿기 힘들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없다면, ‘좋은’ 믿음을 간직한 이들끼리 오손도손 사는 수밖에 없나 보다. ‘좋은’ 믿음이란 내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 여기는 ‘열린’ 믿음이고, 또한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끝내 이길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연말연시 며칠 밤을 끙끙대며 조심스레 올 한해 내 삶을 이끌 작은 믿음 하나를 골랐다. 그건 “그래도 내가 변한 만큼 세상도 변한다”는 믿음이다.

오래전 이맘때쯤 들렀던 스웨덴 감라스탄, 3시만 돼도 어둑해지는 오후 시간에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기 집 문 앞에 작은 촛불을 켜서 내놓았다. 그 촛불들은 이 시대의 어둠을 물리치려는 소망인 양 하늘거리며 묘한 정취를 자아냈다. 새해 우리도 믿음의 촛불 하나 청사초롱처럼 대문에 걸어 놓으면 어떨까?

그래도 믿음의 대상이 되는 이가 짊어져야 할 분투의 책임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힘든 시기에 정부는 약속을 지키고 국민의 짐을 덜어 주어야 한다. 추운 겨울 촛불들이 모여 만든 정부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부디 새해에는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낙원에서 누구처럼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래서 낡은 유행가 가사를 빌려 문재인 대통령께 묻는다. 믿지 않아도 믿으며 묻는다.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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