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코로나19와 장내 미생물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입력 2021. 1. 1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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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이 서구 나라들에 비해 덜 심각한 게 채식 위주의 식단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전형적인 인도의 채식 식단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 20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한 지 100년을 맞아 독감을 주제로 한 책이 몇 권 나왔다. 필자는 그 가운데 미 국립보건원(NIH)의 응급치료국 제레미 브라운 국장이 쓴 ‘인플루엔자’를 읽어봤다. 3년이 지나 책 내용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한 가지는 당시 워낙 뜻밖의 사실이었던지라 지금도 기억난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도에서 무려 2000만 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사망자 5000만 명의 40%에 해당하는 숫자다. 과거 기사에서 스페인 독감을 언급할 때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유행한 사실만 다뤄온 필자로서는 팬데믹의 실상을 재인식하는 계기였다. 인도처럼 인구밀도가 높고 의료기반이 부실한 나라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 3월 코로나19가 유럽에서 퍼지며 팬데믹(전세계적 대유행) 양상을 보이자 인도에서 벌어질 상황을 예상하니 걱정이 앞섰다. 열 달이 지난 지금 인도의 확진자는 1000만 명이 넘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이고 사망자도 15만여 명으로 미국, 브라질에 이어 3위다.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의 차이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의 남녀 연령대별 사망률을 나타낸 그래프다. 스페인 독감은 청장년층 사망률이 높아 뫼 산(山)자 패턴을 보이는 반면 코로나19는 나이가 많을수록 사망률이 급증해 전체 사망률을 나타내는 그래프처럼 보인다. 유럽 경제정책조사센터(voxeu.org) 제공

그럼에도 필자의 예상보다는 피해가 덜하다. 인도 인구는 14억 명에 가까워 세계 인구의 18%를 차지하지만, 확진자는 세계 확진자의 12%이고 사망자는 8%로 인구 대비 세계 평균보다 낮다. 스페인 독감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역시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반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서구 나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서구의 개인주의 만연이나 마스크 착용 거부감 같은 사회심리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코로나19라는 병 자체의 특성이 주된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연령대별 사망률 그래프를 보면 코로나19가 정말 별난 팬데믹임을 알 수 있다. 다른 정보 없이 그래프 패턴만 보면 전문가들도 전체 사망률이나 노화에 따른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일 것으로 생각하지 전염병의 결과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스페인 독감의 사망률 그래프는 누가 봐도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의 뫼 산(山)자 패턴에서 왼쪽(어린이)과 가운데(청장년) 봉우리를 날린 게 코로나19의 패턴이다. 

스페인 독감이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팬데믹이라면 코로나19는 강자에는 철저히 몸을 낮추고 약자, 그것도 유독 노인에게 온갖 진상을 부리는 야비한 팬데믹이다. 인도나 아프리카가 사망률이 낮은 것도 노인 인구의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병원성은 바이러스보다 숙주의 몸 상태가 더 결정적인 변수라는 말이다.

인도, 채식 위주 식단 덕본 듯

인도의 지역별 10만 명당 확진자 수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색이 짙을수록 많다는 뜻이다. 채식 식단인 북인도와 중인도가 잡식 식단인 남인도에 비해 다소 적음을 알 수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주 ‘인간의 유전적 적응에 있어 미생물총(microbiota)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사이언스’ 12월 4일자)을 읽다가 인체 거주 미생물이 인간이 병원체에 적응해 진화하는데 미친 영향을 다룬 부분에서 문득 ‘코로나19 병원성에 장내미생물이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장내미생물 연구를 보면 육류와 가공식품 섭취가 많은 서구인이 다양한 자연 식재료를 먹는 아프리카인에 비해 종 다양성이 떨어지고 유익균의 비율도 낮다. 채식 위주인 인도인 역시 장내미생물의 조성이 서구인보다 나을 것이다. 한편 나이가 듦에 따라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나빠진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비만 역시 장내미생물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장내미생물 상태가 안 좋을수록 코로나19 증상이 심해지는 것 아닐까. 코로나19와 장내미생물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이미 관련 논문이 여럿 나와 있다.

이 가운데 학술지 ‘인도 미생물학저널’ 10-12월호에 실린 리뷰논문이 눈길을 끌었다. 인도 펀잡대 연구자들과 우리나라 건국대 화학과 이정걸 교수가 공동저자로 ‘식단, 장내미생물과 코로나19’라는 제목이다. 논문의 요지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물성 식재료 위주 식단이 장내미생물 조성을 인체 건강에 유익하게 만들어주고 그 결과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되고 설사 감염되더라고 증상이 덜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인도의 코로나19 성적이 결코 자랑할 게 못 되지만 늘 서구와 비교하는 습관이 든 그들의 관점에서는 꽤 선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1757년부터 1947년까지 무려 190년 동안 인도를 식민통치한 영국은 인구대비 확진자 수가 인도의 6배이고 사망자 수는 무려 11배에 이른다.

논문에 따르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면 인체에 유익한 짧은사슬지방산(SCFA)을 만드는 프레보텔라(Prevotella) 같은 장내미생물 비율이 늘어난다. 그 결과 면역계 조절이 안정화돼 병원체에 감염됐을 때도 침묵하거나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으로 대응해 인체에 피해를 최소화하며 넘어간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인도에서도 지역에 따라 식단이 좀 다르다. 북인도와 중앙인도는 채식 식단이고 남인도는 잡식 식단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채식 식단 지역 사람들의 장에서는 프레보텔라가 우점종인 반면 잡식 식단에서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가 많다. 같은 지역에서도 시골에서는 프레보텔라가 도시에서는 박테로이데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흥미롭게도 인도의 지역별 10만 명 당 확진자 수 현황을 보면 남쪽이 좀 더 많다.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면 연중 따뜻한 남쪽이 오히려 적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식단에 따른 장내미생물 조성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결과인지 궁금하다. 

코로나19의 극단적인 증상 분포의 적어도 일부는 장 건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평소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때에 따라 프로바이오틱스나 프리바이오틱스를 복용하면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포 및 감염 미생물학의 경계’ 제공

장과 폐 연결돼 있어

지난 11월 26일 학술지 ‘세포 및 감염 미생물학의 경계’에 발표된 리뷰논문은 코로나19에서 장내미생물의 역할이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 우르비노대 연구자들은 코로나19가 보여주는 증상의 극단적인 차이는 개인의 면역 항상성(immune homeostasis) 상태에 따른 것이고 여기에는 장내미생물이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는 폐렴으로 진행하느냐 여부가 증상 경중의 갈림길인데 장이 건강한 사람은 바이러스의 폐 침투를 억제하고 방어하는 면역계가 제대로 기능하는 반면 장내미생물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장내미생물이 내놓는 각종 대사산물이 혈액을 통해 폐에 이르러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과 폐가 연결돼 있다는 ‘장-폐 축(gut-lung axis)’이론이다.

노인들이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폐렴에 쉽게 걸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들의 장내미생물 조성이 다양성이 떨어지고 유익균의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최근 그 배경으로 주목 받는 것이 다약제복용(polypharmacy)이다.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약을 복용하기 마련인데, 이들 약물이 장내미생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다약제복용자의 장에는 유익균인 비피도박테리움(bifidobacterium)의 비율이 낮다. 항생제만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교란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노인들이나 평소 장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은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만일 걸리더라도 증상 완화를 위해 프로바이오틱스나 이들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를 복용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논문에서는 구강미생물 락토바실러스 람노수스(Lactobacillus rhamnosus)를 프로바이오틱스로 복용하면 폐렴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소개하고 있다. 폐에 상주하는 미생물의 조성이 폐렴 진행에 영향을 미치는데, 락토바실러스 람노수스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노년들이 근육 감소를 막기 위해 먹는 유청단백질이나 완두단백질이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단백질이 비피도박테리움과 유산균의 증식은 돕는 반면 박테로이데스 프라길리스(B. fragilis)와 클로스트리디움 퍼프린겐스(Clostridium perfringens) 같은 유해균의 증식은 억제하기 때문이다. 과일과 채소에 들어있는 폴리페놀도 비슷한 효과를 보인다. 결국 비만과 대사질환을 예방하는 건강한 식단이 코로나19에 대한 강력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인간 유전형도 변수일 듯

‘인간의 유전적 적응에 있어 미생물총(microbiota)의 역할’ 논문에 따르면 식단이 장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개인에 따라 꽤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서구인들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더라도 우리보다 유익한 효과를 덜 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서구인과 동양인의 유전적 차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효소인 아밀라아제 유전자의 복제수는 2~15개로 개인에 따라 편차가 크다. 목축 위주의 서구인은 탄수화물을 덜 먹었기 때문에 아밀라아제를 많이 만들 필요가 없고 따라서 복제수가 적게 진화했다. 반면 작물 농사 위주의 동양인은 복제수가 많다. 

아밀라아제 효소가 부족한 사람이 채식 위주 식사를 하면 녹말이 미처 분해되지 못한 채 대장으로 넘어가므로 이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증식하기 쉽다. 반면 한국인처럼 효소가 많이 분비되는 사람이 채식 위주로 먹으면 녹말은 거의 소화가 되므로 식이섬유를 먹이로 하는 루미노코쿠스(Ruminococcus) 같은 장내미생물이 우점종이 돼 SCFA 같은 유익한 대사산물을 만들어낸다. 동양인들은 식단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장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게 진화한 셈이다. 반면 서구인들은 식단 개선과 함께 프리바이오틱도 챙겨 먹는 게 좋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패턴의 동서양 비대칭성은 사회심리학과 유전학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인간의 유전형과 미생물총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서구인들처럼 아밀라아제(AMY1) 유전자의 복제수가 적은 경우 탄수화물을 섭취했을 때 녹말(simple starch)이 채 소화가 안돼 대장에서 이를 소화하는 미생물이 우점종이 되면서 식이섬유(resistance starch) 소화 미생물이 밀린다. 반면 한국인처럼 복제수가 많으면 대장에 거의 식이섬유만 넘어오므로 이를 소화해 대사산물을 내놓는 미생물(Ruminococcus 등)이 쉽게 증식해 인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이언스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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