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새로 잡은 울산 지휘봉, '정몽준의 길' 열어줄까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1. 1. 1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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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감독 복귀한 홍명보 "실패에 대한 만회 아닌,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성공 만들고파"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지난해 12월20일 아시아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른 울산 현대는 우승 직후 김도훈 감독과의 결별을 발표했다. 이청용·조현우·윤빛가람 등을 영입했음에도 팀의 숙원이었던 K리그 우승에 실패한 뒤 김 감독이 더 이상 계약 연장 없이 떠날 것이라는 전망은 있었다. 트로피의 가치와 상금 규모(K리그 우승 5억원, 챔피언스리그 우승 45억원)가 훨씬 더 큰 대회를 차지한 만큼 반전을 기대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결국 울산은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다.

대안은 준비돼 있었다. 나흘 뒤 울산은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를 제11대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7년 10월부터 행정가 생활을 해 온 그가 다시 현장 지도자로 변신한 것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던 홍명보 감독은 2016년부터 1년6개월 동안 중국의 항저우 뤼청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감독으로서는 3년6개월 만의 복귀다.

ⓒ연합뉴스

'감독으로선 실패, 행정가로선 성공' 평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호의 주장으로서 4강 신화의 주역이 된 홍명보는 FIFA(국제축구연맹) 브론즈볼(월드컵 개인상 3위)까지 차지하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리베로로 명성을 떨쳤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축구계 속설도 넘어섰다. 2005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한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의 코치로 합류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처음 감독을 맡아 8강 진출을 이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23세 이하 대표팀을 이끌고 사상 첫 동메달을 안기며 지도자 인생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절정의 시간이 될 줄 알았던 브라질월드컵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다급하게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기성용의 SNS 논란에서 비롯된 대표팀의 기강 문제, 박주영 선발을 둘러싼 잡음, 박지성의 국가대표 복귀 타진 등 경기 외적인 요소들과 더 많이 싸워야 했다. 2014년 1월 미국 전지훈련에서의 실패 후 유럽파, 그리고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런던 세대 중심으로 팀 개편을 단행했지만 '의리 축구'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월드컵 본선 직전에는 일부 언론이 부동산 매매 같은 개인사까지 들춰내자 중심을 잡지 못했고, 결국 조별리그 탈락 후 씁쓸하게 물러나고 말았다. 중국 무대에서의 도전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홍명보 감독은 후일 자신의 고려대 박사 논문('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에서 월드컵 실패를 성찰했다. 그는 박주영 선발 논란에 대해 "당시 나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옳은 판단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준비기간이 촉박해, 과거 호흡을 맞췄고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특정 선수를 배제하거나 한 선수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대 팀 운영 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 오류를 범했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되는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2017년 10월, 당시 축구협회를 둘러싼 불신의 시선을 깨기 위해 정몽규 회장이 반전의 카드로 과감히 영입한 홍명보는 행정가로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유소년부터 성인까지 각급 시스템을 재정비했다. 한국 축구 뿌리를 다지기 위해 유럽식 8대8 경기를 초등학교에 도입했고, K3부터 K7까지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해 생활축구와 엘리트 축구의 연계도 성사시켰다. 지난해 11월 유럽 원정을 떠난 A대표팀 선수와 스태프 일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정 회장을 설득해 전세기를 띄워 호평을 받았다. 내부 조직도 세세하게 챙긴 탓에 홍명보의 전무 임기 종료를 많은 임직원이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내 명예 회복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안정된 행정가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감독이라는 경쟁의 정글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홍명보 감독은 "행정가가 최종 목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장을 떠나보니 가슴 한편에 살아 있던 불꽃이 조금씩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황선홍·최용수·유상철·윤정환·최진철 등 비슷한 연배는 물론 자신의 지도자 전환 이후에도 현역 선수였던 김상식·김남일·박동혁·설기현 등 까마득한 후배들까지 감독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생겼을 감정이다.

그사이 유혹도 여럿 있었다. 국내외 팀들, 특히 선수 홍명보가 큰 족적을 남긴 일본 J리그의 러브콜이 많았다. 울산도 2009년, 2015년에 이어 삼고초려 끝에 홍명보 감독과 계약했다. 축구협회 전무에 취임할 당시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정몽규 회장이 단독 출마로 3선에 성공하며 집행부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전환기에 맞춰 행정가 1막을 마감했다.

감독 커리어 2기를 잘 마치면 다시 행정가로 돌아올 가능성도 남아 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겸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축구계 일선에서 물러난 뒤 한국 축구의 대내외적 존재감이 줄어든 상태에서 기틀을 닦은 홍 감독이 언젠가 그 일을 맡아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홍 감독의 이번 울산행에는 구단의 실질적 오너인 정몽준 명예회장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에게 경영 승계를 진행 중인 정 명예회장이 남다른 애정을 보였던 축구와 관련한 승계는 홍 감독에게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진 않다. 우선 수년 동안 실패로 멈춰 있던 감독 커리어의 아쉬움이 남긴, 명예 회복 욕심이 앞선 복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 대해 홍 감독은 "내 명예는 축구에서 얻은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명예를 잃을 수도, 더 큰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 아시아 챔피언인 울산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내가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만 생각 중"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각급 대표팀과 중국 무대 경험이 있지만 K리그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4년 동안 현장을 떠난 사이에도 축구는 많이 진화했다. 상대해야 하는 선수들의 세대도 변했다. '홍명보의 아이들'이 각 팀에서 중고참이고, A대표팀의 베테랑이다. 실제로 홍명보 감독은 K리그1, K리그2 통틀어 최고령 감독이 됐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선수 파악이나 현장의 흐름에 대한 부분에 공백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구단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적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시대와 세대가 변했다고 느낀다. 전술이나 용병술뿐만 아니라 리더십, 선수 관리, 말과 행동 하나도 함께하는 이들의 시선에 맞춰야 한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내 경험과 장점을 살려 성공을 거두고 싶다"고 밝혔다.

울산은 전북과 함께 현재 K리그를 이끄는 양강 구도의 팀이다. 2020년 전북이 K리그 4연패를 비롯해 FA컵까지 차지하며 국내 무대를 정복했다. 그 두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친 울산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만회했다. 조현우·이청용·윤빛가람·홍철 같은 현역 국가대표에 이동경·이동준·원두재 등 향후 10년을 책임질 영건이 풍부한 울산은 홍 감독과 함께 2005년을 마지막으로 이루지 못한 K리그 우승에 재도전한다. 홍 감독은 "울산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안다. 이 자리에 온다는 것은 당연히 우승의 무게감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속적으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젊은 팀으로 변모시키는 동시에 당장 부임 첫해부터 우승에 도전하겠다"며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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