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 중단'에 펑펑 울던, 그때 내게 해주고 싶은 말
여기서 꽤 친해진 미국인 친구가 오는 3월 출산할 예정이다. 코로나 탓에 만날 수는 없고, 우리는 자주 화상 통화를 한다. 아무래도 친구의 출산이 점점 다가오니 우리는 주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친구는 얼마 전 임신 당뇨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다음 주 재검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걱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초조한 기색은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친구가 요즘 가장 크게 관심 두고 있는 것은 바로 모유수유. 그는 100% 모유수유를 하고 싶은데, 복직을 생각하면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많이 고민된다고 했다. 내 경험과 의견을 묻는 친구에게 대답을 해주다 떠올랐던 이야기가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여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 젖 헐고, 못 자고 힘들었지만 내겐 너무 당연했던 '모유수유'
큰아이 임신하고, 지역에서 운영하는 몇몇 임신 클래스에 다녀본 나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모유수유를 권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신과 출산을 설명하며 모유수유를 정말 중요하게 거론했다.
미국은 한국처럼 산후조리원 문화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한 일 없으면 출산 후 24시간 이후 퇴원한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그 시간에 모유수유 전문 상담가 (Lactation Consultant)가 회복실을 방문해서 산모에게 자세히 모유수유를 교육한다. 물론 상담가 방문 전 분유를 먹일 것인지, 모유를 먹일 것인지를 묻는데, 의료진 역시 모유를 먹이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그때 나는 이미 모유수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 면역력에도 좋다고 하고, 아이 젖 먹이며 안고, 교감하는 그 순간이 마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모유수유는 당시 가난한 유학생 부부였던 우리에게 더 경제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모유수유로 나와 내 동생을 키운 친정엄마 역시 "모유를 먹이면 젖병 세척할 일도 없고, 외출 짐도 줄어들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으니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모유수유를 추천했다. 나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100%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과학적, 의학적, 생물학적 근거가 하나도 없는 자신감이 반쯤은 맞았다. 처음의 엉성했던 수유 자세는 점차 나아졌고, 모유량도 아주 충분했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예정일보다 일찍 나와 작디작았던 아이는 다행히 젖을 잘 물었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하지만 조금씩 복병이 생겼다. 그 작은 아이가 어찌나 악착같이 젖을 빠는지 유두가 다 헐고 빨개져서 딱지가 앉기도 했다. 가슴이 쓰라려 '강시' 같은 포즈로 걸어야만 했다. 수시로 젖을 물리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말 그대로 나는 '살아있는 시체'같은 모습이 되었다.
순간순간 아이와 살을 대고 교감하고 눈을 맞추는 그 경험이 너무나 경이롭고 감사하면서도 조금만 덜 힘들면서도 감동적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혼자 속으로 한탄하기도 했다.
◇ "단유하라"는 의사의 진단, 벌 받는 것 같아 목 놓아 울었다
그러다가 건강에 이상이 왔다. 병원에서는 MRI 촬영을 하자고 했다. 보험 때문에 웬만한 검사는 환자가 원해도 잘 안 해주기로 유명한 미국 병원에서 먼저 MRI 촬영을 하자고 하니 나는 솔직히 덜컥 겁이 났다.
검사를 앞두고 조영제 투여 때문에 아이에게 모유를 못 먹일 것을 대비해 유축기를 써보았다. 유축기를 써 본 엄마라면 알 것이다. 그 미묘한 감정을. 내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젖소 농장의 젖소가 된 것만 같은 그 묘한 이질감과 허무함.
검사에 대한 걱정과 유축기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을 함께 곱씹으며 병원으로 가서 MRI 검사에 초음파 검사 그리고 피검사까지 했다. 검사 이후 결과를 기다리면서 솔직히 초조했다. 다행히 결과는 생각했던 것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장기간 지속적으로 약을 먹어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처방이 내려졌다. 먹어야 할 약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의사는 단유를 준비하라고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약 성분이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모유수유를 중단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터무니없이 내 안에 무언가가 휘몰아쳤고, 나는 목놓아 울어버렸다. 성인이 되어서 그렇게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우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남편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순간의 나는 모든 것이 내 탓만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힘들고 귀찮다는 생각을 해서,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면서 자꾸 가슴이 아파서, 그래서 너무 지친다는 생각을 해서 벌을 받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추스르는 며칠간 정말 힘들었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치는 바람에, 모유수유를 못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너무 나쁜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형편없는 엄마가 됐다는 생각,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자꾸만 가라앉았다.
그 사이 큰아이는 분유에 적응해 나갔다. 아이들이 특정 젖병과 젖꼭지를 선호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큰 아이는 약간 옆쪽으로 넓은 모양의 젖꼭지는 거부했다. 나오는 분유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너무 빨라도 힘들어했다. 분유 나오는 속도가 너무 느려도 젖병을 거부했다. 처음에 썼던 젖병으로 분유를 먹고는 배앓이를 많이 했다. 배앓이 방지 (Anti-Colic) 젖병을 쓰고 나니 호전됐다.
시행착오는 있었으나 아이는 분유도 잘 먹었고 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컸다. 당시에는 갑작스러운 병원비 지출로 경제상황도 안 좋았지만, 굳이 젖병 소독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에 냄비에 젖병을 삶고 닦는 일이 좀 번거로웠을 뿐, 이제는 남편과 교대로 아이에게 젖병을 물릴 수 있으니 피로는 오히려 조금 줄어들었다.
◇ 아이에게 좋은 엄마의 조건 '덜 힘들고 더 행복한 엄마'
그렇게 아이가 분유에 잘 적응하고 단유도 진행되니 점차 안정되었다. 그리고 '과연 누구를 위한 모유수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류학뿐만 아니라 여러 학문과 문화적 통념상 서구 사회에서 20세기 동안에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동 자체도 '원시적인' 것으로 치부됐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말부터 점차 서구의 여성 인류학자들을 중심으로 모유수유를 지지하고 그 문화적 의미를 찾는 담론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 모유의 장점과 더불어 체내 다이옥신 논란 같은 반대 지점까지 함께 거론되는 중이다. 과연 모유수유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존재일까, 아니면 문화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걸까. 아니, 모유수유는 언제나 정답일까?
학문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를 하자면 백일 이후로 쭉 분유를 먹고 쑥쑥 자란 큰아이는 지금도 아주 잘 자라주고 있다. 엄마의 모유를 한 방울도 먹지 못한 작은아이도 건강히 쑥쑥 잘 자라주고 있다.
"모유를 끊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눈물을 쏟았던 그때의 내 마음을, 나는 지금도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둘째때는 달랐다. 의사와 의논 후 둘째에게도 역시 모유를 먹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그땐 우울감이나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모유수유 중단'이란 말에 펑펑 울었던 과거의 나에게, 혹은 모유수유에 혹시라도 모를 어떤 압박감이 있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엄마는 '덜 힘들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엄마'라는 사실을. 많은 요소가 '좋은 엄마'를 구성하지만, 모유수유가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물론 성공적으로 모유 수유를 잘 하는 엄마들도 충분히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자격이 있는 좋은 엄마들이다. 다만, '좋은 엄마'의 정답은 없다는 것. 모유수유를 하든 안 하든, 당신을 위한 선택이 반드시 나쁜 엄마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 당신은 잘 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모두 좋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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