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캐릭터 구현 위해 문화적 배경까지 연구했죠"

정영현 기자 2021. 1. 1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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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소울' 애니메이터 김재형 인터뷰
흑인 뮤지션 특유 표정·제스처 표현
즐거운 일 하기 위해 의사가운 벗고
뒤늦게 美서 컴퓨터 애니메이션 공부
팬데믹시대 '힐링 영화' 만들어 행복
영화 ‘소울’ 스틸컷
영화 ‘소울’ 스틸컷
[서울경제] 조 가드너는 뉴욕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주변인들이 아는 그의 직업은 계약직 음악 교사. 하지만 재즈 피아니스트로 무대에 오르는 게 그의 일생의 꿈이다.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할 때 조의 표정은 무기력하고 몸짓은 둔하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눈빛이 반짝이고, 건반 위 손놀림은 아름답고 우아하다. 재즈에 빠져 무아지경에 이르렀을 때 표정은 또 어떤가.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SOUL)의 주인공 조는 가상의 캐릭터임에도 지금도 뉴욕 어느 거리를 걷고 있을 법한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이는 모두 애니메이터의 힘이다. 캐릭터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개성이 잘 드러나도록 애니메이터가 섬세하게 작업한 덕분이다. 특히 디즈니·픽사 작품에 참여하는 애니메이터들의 실력은 독보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소울’에 참여한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재형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오는 20일 소울 국내 개봉을 앞두고 12일 화상으로 만난 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가상이긴 하지만 분명한 백그라운드와 성격을 갖고 있고, 어떤 식으로 연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지향점도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며 “애니메이터는 거기에 최대한 맞춰 입 모양, 얼굴 표정, 움직임 등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한다. 그렇게 “애니메이터들이 점점 살을 붙이면서 살아 있는 느낌의 캐릭터가 완성된다”고 그는 부연했다.

생동감 있는 캐릭터 표현을 위해 사전 조사와 연습은 필수다. 김재형은 “주인공 조는 아프리카계, 즉 흑인 재즈 뮤지션”이라며 “문화적 배경에 따른 특유의 제스처와 표정, 그리고 재즈 피아노 연주법 등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면 관객 입장에서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전했다.

김재형 애니메이터./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가 작업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은 ‘소울’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라따뚜이’를 시작으로, ‘업’(2009), ‘토이스토리3’(2010), ‘카2’(2011), ‘몬스터대학교’(2013), ‘인사이드아웃’(2015), ‘코코’(2018), ‘온워드’(2020)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러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애니메이터의 길을 간 것은 아니다. 그는 전직 의사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던 중 정말 즐거운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의사 가운을 벗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해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고 2006년 서른 셋의 나이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쳐 2008년 픽사에 정식 입사했다.

김재형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험 성적에 맞춰 의대로 진학했다”며 “점점 일에 대한 열의가 줄어들면서 생각을 한 결과 내가 즐거운 일이어야 오래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쉬운 길은 아니었다. 김재형은 “처음에는 구직도 힘들었고, 일을 시작한 후 결과물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일터의 치열함도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그럼에도 그는 “돌이켜 생각해 평균을 내보면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 있다”며 “내가 좋아서 결정했고, 후회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가장 뜻깊은 작품으로 ‘업’을 꼽아 왔다. 하지만 ‘소울’이 완성된 후부터는 두 작품 모두가 인생작이 됐다고 한다. 특히 ‘소울’은 주인공 조처럼 자신에게도 삶의 이유를 자문하게 만든 작품이라고 전했다. 김재형은 “조와 같은 과정을 겪으며 살아왔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 지를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라며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이 작품이 팬데믹 시대에 힐링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무척 기쁘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어두웠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관객과 평론이 말하는 힐링 포인트를 갖게 됐다”며 “한국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극장에 오셔서 즐겁게 작품을 보고 힐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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