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단 방문에도 완강한 이란..전례봐도 선원 조기 석방 힘들 듯
대표단 일단 귀국 예정..2019년 영국 유조선 석방에 두달 넘게 걸려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정부 대표단이 이란에서 한국 선박과 선원의 조기 석방을 교섭하고 있지만, 이란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기 쉽지 않아 사태 해결에 시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동결된 자국 자금 약 70억 달러를 의약품 구매 등에 자유롭게 사용하게 해달라면서 선박 문제는 자국 사법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동결자금 문제는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고, 정부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이란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12일 외교부에 따르면 이란을 방문 중인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11일(현지시간) 카말 하르라지 외교정책전략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하르라지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외교 고문이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란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며, 한국 선박을 나포한 혁명수비대도 그의 휘하에 있다.
이란은 지난해 2월 실시된 이란 의회에서 강경·보수파가 압승하면서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개혁파 정부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지고 최고지도자 측에 더 힘이 실린 형국이다.
외교부는 이런 역학관계를 고려해 정부는 물론 하르라지 등 최고지도자 측과 면담을 추진했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에 따르면 하르라지 위원장은 면담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르라지 위원장은 과거에는 양국 관계가 좋았지만, 한국 정부가 미국 제재를 준수하면서 70억 달러 상당의 이란 자산이 동결됐으며 의약품을 사기 위한 돈도 인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한국 대표단의 방문을 통해 한국 정부가 이란의 현실과 양국 협력의 새로운 기회를 더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며 관계 개선 의지도 내비쳤다.
이에 최 차관은 더 일찍 이란을 방문했어야 했다며 양국 관계 개선 필요를 강조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도 최 차관과 면담에서 "한국 내 동결 자산은 양국 관계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선박 문제는 사법 절차를 통해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당연히 이란 정부는 사법 절차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이란 정부는 환경 오염 혐의에 대한 조사와 법적 처분이 완료돼야 석방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지도자 측과 이란 외교당국 모두 동결자금 문제 해결을 강조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대표단 방문을 통해 조기 석방을 끌어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동결자금을 활용한 인도적 교역 확대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까지 위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면 이 거래에 관련된 한국의 금융기관 등은 미국의 2차적 제재 대상에 올라 상당한 벌금을 내거나 미국 측과 거래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단은 일단 귀국한 뒤 외교부 본부 채널과 주이란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교섭을 이어갈 방침이다.
최 차관은 계획대로 12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로 이동해 그곳 당국과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한 뒤 14일 귀국길에 오른다.
먼저 이란으로 갔던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도 최 차관과 함께 이란을 떠난다.
외교가에서는 이란의 과거 나포 사례를 고려하면 석방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은 2019년 7월 19일 영국 유조선 스테나임페로호를 나포했다가 두 달여 만인 9월 23일에야 풀어주기로 했는데 영국 측이 먼저 대(對)시리아 제재 위반 혐의로 억류했던 이란 유조선을 풀어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2013년 8월 13일 인도 국적 유조선 'MT 데슈샨티'호를 기름 섞인 평형수를 쏟아내 환경오염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끌고 갔다가 9월 5일에 석방하기로 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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