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문화 시점>고전은 말한다.. '좋은삶'에 대한 답은 질문 그 자체에 있다고
■ ‘무엇이 좋은 삶…’ 저자 김헌·김월회 교수가 추천하는 고전
당신들의 천국… ‘나의 확신’을 반성·회의하라
시학…인간은 고귀함 포기할 수 없어
늑대 토템…익숙한 사고·감각이 진리 아냐
전쟁과 평화…인간군상 ‘선택’에서 지혜얻어
지난 8일 서울대 인문관으로 고전학자 김헌·김월회 서울대 교수를 찾아갔다. 행복·운명·명예·부(富) 등 고전에서 길어 올린 12가지 화두를 성찰한 ‘무엇이 좋은 삶인가’(민음사)를 함께 쓴 두 학자에게, 새해에 어울리는 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바로 책 제목인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답이다. 당초 두 학자도 ‘무엇이 좋은 삶인가’라는 물음을 들고 각자의 전공인 동서양 고전을 펼쳤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했던 ‘정답’은 찾지 못했다. 대신 동서고금의 텍스트가 모두 ‘좋은 삶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도달한 두 저자의 ‘답’은 이랬다. “정답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명답’을 모색하는 행위, ‘화두’와 끈질기게 씨름하는 힘 자체에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 학자에게 새해가 시작된 지금, 사람들이 저마다의 명답을 모색하기 위해, 자신의 화두와 씨름해 더 단단한 생(生)을 가꾸기 위해 읽으면 좋은 고전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우리 삶은 ‘위대한 영웅’과 ‘평범한 유모’ 사이에 존재”
서양 고전학자 김헌 교수는 먼저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을 꼽았다. 소록도 나환자촌에 병원장으로 부임한 육군 대령의 ‘선한 의지’가 환자들의 반발에 가로막히는 좌절을 그린 소설이다. “확신을 품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 할 시기도 있지만 ‘나의 확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때로는 반성과 회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명예욕’과 ‘과시욕’을 성찰한 이 소설을 읽으며 서양 고전에 등장하는 영웅과 유모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같은 서사시엔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려는 영웅들이 나옵니다. 젊었을 땐 ‘불멸의 명예’가 멋있어 보였는데 세월이 흐르니 영웅 곁에 있는 이름 모를 존재에 눈길이 더 갑니다. 에우리피데스는 비극 ‘메데이아’에서 유모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위대하지 않아도 좋으니 안전하게 늙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대다수 삶은 영웅적 열망과 그 열망이 인간적 한계에 부딪힐 때 비롯되는 겸허함 사이에 놓인 게 아닐까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이든 상대에 대한 존경을 잊지 않는 태도죠.”
김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겸손의 미덕을 일러주는 텍스트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에 덕(德)을 갖춘 고귀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썼어요. 하지만 ‘시학’을 쓰기 위해 비극을 분석하며 자신의 신념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고귀한 사람이라도 불행의 나락에 떨어질 수 있다는 모순, 인간의 덕이 운명 앞에 무력할 수 있다는 역설을 알게 된 것이죠. 나약하지만 고귀함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김 교수의 ‘마지막 픽(pick)’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그는 “모든 문장을 외우고 싶을 만큼 명문들로 넘쳐나는 작품”이라며 “의리 있는 사람, 배반을 일삼는 사람, 형까지 죽일 수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의 갈등과 선택이 마치 ‘심리학 교과서’처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고 소개했다.
◇“나한테 익숙한 사고가 보편적 진리 아냐”
중문학자 김월회 교수는 중국 작가 장룽(姜戎)의 ‘늑대 토템’을 첫손에 꼽았다. 문화대혁명 시기 몽골 초원에 하방(공산당원과 공무원을 농촌에 보내 일하도록 한 운동)된 지식인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주류 문명과 상식을 반대 관점에서 바라보는 힘을 길러주는 책입니다. 농경 문화와 중화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를 통해 나한테 익숙한 사고와 감각이 어디서나 보편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늑대에 비해 인간이 열등한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동물과 자연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감염병 시대에도 잘 어울립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코로나19라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좋은 반석이 될 고전”이라고 했다. “500명 넘는 인물이 역사의 기로에서 내리는 선택을 마주하며 소설에서 나폴레옹이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 시내를 내려다보듯 ‘넓고 깊게 보는 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로마를 통해 인문학의 탄생 과정을 되짚은 ‘인문의 재발견’(안재원 지음·논형)도 추천 목록에 올렸다. “외국인 추방 운동이 일어난 고대 로마 시기 연설가 키케로가 그리스계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에 나선 건 ‘학문’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그는 “인문학이 더 이상 쓸모없다고 ‘사망 선고를 내릴 정도로 우리 사회가 내적으로 성장했는가’라는 저자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가치의 토대를 구축하는 인문학 없이 좋은 삶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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