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동기는 누가 결정할까?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 2021. 1. 1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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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는 '부여'를 넘어, 다른 동기와 '연결'하는 것

(지디넷코리아=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우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많은 조직의 사례를 알고 있다.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문장 안에는 사실 많은 가치가 포함돼 있다. 나는 지금부터 이 당연하고도 단순한 문장을 의심하고 또 진단해 볼 생각이다.

먼저 문장의 형식부터 살펴보자.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성공하다"와 "알고 있다"라는 두 개의 서술어를 포함하고 있는 복문이다. "성공하다"라는 서술어는 "세계적으로"라는 부사어가 꾸며주고 있다. 즉, 우리가 어떠한 조직의 사례를 알기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례가 세계적이어야 하고, 또 성공으로 귀결돼야 한다. 단순하게 문장만 뚫어져라 쳐다보았을 뿐인데, 운 좋게도 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키워드 두 개를 도출해 냈다. 바로 ‘세계’와 ‘성공’이라는 단어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보자. 먼저 ‘세계’라는 단어가 가진 함정이다. 언젠가부터 세계라는 단어는 국가, 마을, 가족, 심지어 자아(自我)보다도 더 친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매일 익숙하게 떠올리는 세계라는 개념 안에 국가, 마을,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이 들어 있는지… 집단이 추구하는 공리보다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해진 시대를 사는 우리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국가, 마을, 가족, 그리고 나조차도 형태가 불분명한 세계의 기준에 따라 쉽게 해체한다.

조직의 동기는 누가 부여할까 칼럼 자료 이미지(제공=모티링크)

다른 하나는 ‘성공’의 함정이다. 과정일 수도 있는 성공이 우리에게 인식되는 모습은 주로 그 빛나는 결과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져간 개인이나 조직을 한번 떠 올려보자. 우리들은 성공의 이면에 있을 수도 있는 실패나, 성공의 기대가 만들어낸 이후의 고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즉 우리는 작은 부분의 합인 ‘세계’와 다양한 사례의 극히 일부분일 수도 있는 ‘성공’에만 극단적으로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성공은 모두 신화로 포장돼 결국 한 사람의 리더인 개인으로 수렴된다. 한때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라 칭송받았던 GE의 잭 웰치, 1995년부터 2017년까지 4년을 제외하고 모두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차지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혁신의 아이콘이자 독재자였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 세계인의 얼굴을 온라인 플랫폼에 담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 세계를 아우르는 가장 큰 상점의 주인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우리가 모든 과정과 부분을 지운 채 그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리더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보다, 그들에게 주목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가 더 궁금하기는 하다.

리더는 동기를 구성원들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

위에 열거한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원인이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의 전지전능함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그 전지전능한 리더들의 결정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거나, 또는 리더가 자신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구성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배제한 결과였을까? 그럴 수도 있다. 적어도 확실성이 불확실성보다 컸던 시대에는 리더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성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근대 자본주의를 통찰한 마르크스와 달리 계급사회가 잉여생산물의 불균형한 분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경험이 많거나 똑똑한 사람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 고착되면서 계급사회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모든 조직의 출발은 일반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 또는 리더 그룹이 가지고 있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리더가 생각하는 동기가 소위 이윤을 목적으로 다양한 개인들의 동기와 연결되면 기업이라는 조직이 된다. 그래서 조직의 구성원이 조직의 동기를 리더보다 더 잘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로 어긋난 채 존재하기도 한다. 리더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동기가 기업이라는 조직을 통해 지속 가능하게 유지, 확장되기를 바라겠지만, 조직의 동기를 위해 자신의 동기를 포기할 구성원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비근한 예로 50만에 육박하는 공시생들이 끝도 알 수 없는 국가고시의 터널로 들어가는 동기가 대한민국 행정 조직의 성공일까, 아니면 자신의 안락함일까?

잘못된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기도 한다. 현재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씨를 뿌리면 열매를 얻었던 '필연'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내가 산 아파트나 주식이 반드시 오른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불행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신에, 우연의 세상에서 필연에 의지하다 보면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에서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에서 90%가 넘는 젊은이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사회에 대한 기대가 아닌 포기라고 밝혔다. 리더가 자신의 동기를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안타깝게도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리더의 동기와 구성원의 동기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비로소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동기를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른바 일방적인 동기의 부여가 아닌 동기의 확장이다.

동기의 확장...다양한 동기 파악하고 연결할 수 있어야

확실성의 시대,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의 리더가 제시하는 동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마도 조직이 추구하는 동기가 개인의 생존과 행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주장하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인정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불확실성의 시대엔 기존의 정답이 부정되고 새로운 정답이 등장한다. 그리고 어렵게 찾은 정답도 언제, 어떻게 부정당할지 모른다.

기존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우리는 혁신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혁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혁신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이 반도체,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 여전히 TV나 냉장고를 만들고 있었다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제 성장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주로 대기업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동기로 확장하며 성공 신화를 만들어 왔다.

반면 미국의 성공 신화는 기존의 주류 동기와 동떨어져 있는 작은 차고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젠가 빌 게이츠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차고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누군가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IT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애플과 구글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공룡처럼 비대해진 한국의 대기업들은 지금도 생존을 위해 익숙함 너머에 있는 낯선 동기를 발굴하고, 연결하고, 확장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자본을 쏟아 붓고 있을 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혁신이 가능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리더의 동기를 구성원들에게 부여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젊은 벤처 사업가들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동기를 타인에게 부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동기를 다른 사람의 동기와 쉽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기를 확장하기 위해선 리더가 조직이 가진 동기를 구성원들에게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넘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동기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동기 확장을 위한 IT의 역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월 3일 밤 12시 종료 예정이었던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와 비수도권의 2단계 조치를 오는 17일까지 2주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도권에만 적용해온 5명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따라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어쩔 수 없이 비대면 근무를 확장하고 있다.

사실 비대면으로 일과 생활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환경은 이미 갖추어져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도 공간의 제약이 있을 땐 화상으로 회의를 했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도 이미 10년 전부터  인터넷 강의가 사교육 시장을 점령해 왔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다. 마치 석유 재벌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을 반기지 않는 것처럼, 대면 업무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비대면 업무가 갖고 있는 효율성을 억압해 왔는지도 모른다. 거듭 밝히지만, 비대면이 완벽하게 대면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 노동은 8시간, 아니 야근까지 해 가며 사무실에 수감돼 있을 때보다 자유로운 비대면 환경에서 더 효율성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조직의 동기를 구성원들에게 강제적으로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면 상황이 더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다양한 동기로 확장해야 하는 혁신의 시대에 걸맞은 방식은 아니다.

비대면이 만들어 내는 불편과 비효율의 과도기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비대면 시대, 동기의 확장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IT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IT 기술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효율성을 문화적으로 설득해 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IT에 문외한인 문과 출신의 필자가 IT 전문지인 지디넷코리아에 칼럼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채희태 (주)모티링크 경영과학연구실 실장(heetae.chae@motili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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