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문제 송구하다"는 대통령 '선거용 사과' 그쳐선 안된다 [핫이슈]

박정철 2021. 1. 12.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국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를 통해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집값 폭등과 극심한 전세난에 대한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다.

문 대통령이 2년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있다"며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하고 있다"고 평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같은해 8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선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자신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선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 마련을 주저하지 않겠다"며 "특별히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 고개를 숙이고 공급확대를 강조한 것은 세금폭탄과 규제 위주의 기존 부동산정책과 궤를 달리한 것으로, 국민에게 고통을 준 점을 인정하고 시장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는 점에서 늦게나마 다행스럽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세금·금융규제는 물론 임대차3법 등 수요 억제 일변도 정책에 전력을 쏟았다.

호텔방을 개조해 주택으로 공급하겠다는 황당한 정책을 발표하는가 하면, 수천만원 인테리어로 치장한 보여주기식 공공임대쇼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집값과 전세값은 5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보이는 등 고공비행하면서 '부동산시장 안정'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현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58% 상승해 역대 최악을 기록했고, 부동산가격 폭등에 좌절한 수많은 청년과 서민들은 오늘도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민생의 최대 현안인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나름 평가할 만 하다.

일각에선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 제스처"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지못해 한 사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집권 후반의 국정운영 철학과 방향을 담아 국민에게 전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매우 송구하다"는 표현까지 쓴 것은 그만큼 진심이 담겨 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일반 조직이나 단체의 책임자도 잘못을 저질러놓고 "미안하다"고 선뜻 말하지 않는 마당에 국가 지도자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사과하려면 대단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국민을 향한 대통령의 솔직한 사죄는 응어리진 민심을 풀어주고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진정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국민과 소통하는 통치 행위다.

대통령이 청와대의 구중궁궐에 갇혀 참모들의 요설만 듣고 민심을 멀리 할수록 권력에 금이 가고 레임덕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참여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말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며 " 대통령의 '미안하다' 말 한마디에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반성,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개선의 의지가 동시에 담겨야 한다"고 했다.

문 전 의장의 지적처럼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동산정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변창흠 국토교통부장관이 언급한 역세권· 준공업지역· 저층주거지 고밀도개발은 물론 시장 요구에 맞게 일반 수요자가 가장 원하는 양질의 민간 주택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

부동산정책의 기조가 시장 친화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대통령의 사과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조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은 "지도자가 마음과 힘을 다한다면 무슨 일인들 능히 하지 못하리오"라고 했고, 정조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다만 내가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할 수 있을지 그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주택시장 정상화를 위한 문 대통령의 마지막 노력과 결단을 기대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