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해서 아파트 샀는데.." 초조한 30대들 밤잠 설친다

안혜원 2021. 1. 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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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거래 신고된 아파트 중 절반은 실거래가 하락
집값 너무 빠르게 뛴 탓..文정부 동안 72% 급등
'영끌' 30대들 "빚내 샀는데..집값 내리면 어쩌나"
"부모님한테 차용증까지 쓰고 집 샀는데.."
최근 서울 아파트 일부 단지에서 실거래가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뒤늦게 시장이 뛰어든 매수자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인왕산 산책로에서 바라 본 서울 도심 전경. /뉴스1

지난해 말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어렵게 모든 현금과 최대치의 부채를 ‘영끌’해 내 집 마련을 한 중견기업 직장인 김모 씨(35)는 요즘 초조하다. 집을 매수하던 당시엔 노원구 강북 끝자락에 아파트를 사면서 가까스로 서울 입성에 성공했다며 안도했다. 실거래가 기준 가장 높은 가격에 사긴 했지만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서였다. 하지만 최근 거래가가 5000만원 가까이 떨어지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 ‘상투’를 잡은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밀려오고 있다. 

김 씨는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벌어들이는 월급의 반은 대출 상환 이자로 나간다”며 “전세를 구하지 못할 때는 이사만 안해도 좋겠다고 했는데 이젠 집값이 떨어질까 밤 잠을 설친다. 지금 같은 불안한 시장에선 집은 사도 걱정, 못사도 걱정인 것 같다”고 푸념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 대부분이 가격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일부 단지에서 실거래가가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뒤늦게 시장이 뛰어든 매수자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상투를 잡았을까 걱정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중저가 단지들이 많은 서울 외곽지역에서 주로 집을 산 젊은층들은 자산 대부분을 아파트에 쏟아부은 경우가 많아 집값 하락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타격이 크다.

 집값 너무 뛰었는데…무주택자 막판 상투 잡을라

1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최근까지(8일 기준) 서울 지역에선 총 50건의 아파트가 거래 신고됐다. 이 중 3억원 초과하는 아파트 총 33건(LH분양전환 8건 제외)의 실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절반에 육박하는 15건(45.5%)이 직전 실거래가 또는 최고가보다 낮게 거래된 것으로 집계됐다. 

송파구에선 장지동 '위례24단지꿈에그린' 전용 84㎡ 주택형이 이달 2일 1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직전 고점 대비 1억원 내렸다. 서초구에선 서초동 '래미안서초에스티지S' 전용 84㎡가 최고가 24억원에서 6000만원 내린 23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강북권에서도 마포구 신수동 '경남아너스빌' 전용 84㎡는 지난 9월 신고가보다 4000만원 낮은 10억원에 팔렸다. 주택거래 신고 기한이 30일이어서 앞으로 주택 거래량은 더 늘어나겠지만, 현재까지 신고된 이들 거래가 집값 통계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전경. /연합뉴스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시장에 뛰어든 무주택 실수요자다. 이들 중 많은 경우는 지난해 하반기 임대차법 시행 후 심각해진 전세난에 거주할 집을 찾지 못해 내 집 마련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례가 많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아파트를 가장 많이 매입한 연령층은 통상 전세 수요가 많다고 여겨지는 30대였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11월까지 집계된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는 총 8만5020건이다. 30대의 거래량은 2만7984건(32.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양모 씨(35)는 지난해 말 강북지역에서 전용 59㎡ 아파트를 8억원에 가까운 가격에 영끌했다. 하지만 최근 거래가는 7억원 중반대로 떨어진 상태다. 양 씨는 “어차피 실거주를 하자는 목적으로 산 집이라 집값이 떨어져도 마음 편하게 살자고 아내랑 여러차례 이야기를 했다”면서도 “거래가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오면 속이 상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집을 매매하던 당시에는 매물이 없어 몇억짜리 집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샀는데 그 바람에 ‘상투를 잡았나’ 싶다”며 “하루에도 열두번씩 안도했다 후회했다 반복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신혼집으로 구로구에 소형 아파트를 매매한 최모 씨(37)도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른다고 해 불안한 마음에 무리해서 집을 샀다”며 “주변에서 전세가 없어 비상이 걸린 사례를 보면서 무리해서라도 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금과 대출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부담감이 들 때도 많다”며 “은행에서 대출이란 대출은 다 끌어왔고 이도 모자라 차용증을 쓰고 부모님에게서도 손을 벌렸는데 만약 집값이 떨어지면 정말 큰일이 난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올해 집값 더 오른다" 전망 우세

아파트 물량이 없어 집값이 오르고 있긴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실거래가가 떨어지는 단지가 나오는 것은 짧은 기간에 가격이 워낙 많이 올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B국민은행이 집계한 통계를 분석해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작년 한 해 21.3% 뛰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2017년5월)와 비교하면 71.8% 급등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주택 공급량에 비해 수요가 많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빠르게 뛴 탓에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계층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서울 성북구 일대 부동산을 둘러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같은 실거래가 하락이 일부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다. 새해에도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연령과 상관없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민간 연구소와 금융회사도 올해 집값이 우상향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전국 도시 2381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0세 미만의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37을 기록했다. 작년 8월(131)과 11월(136)에 이어 또다시 주택가격전망지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른 연령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40세 이상~50세 미만의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9로, 지난해 11월(128)에 이어 두 달 연속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50세 이상~60세 미만은 130을 기록해 2014년 10월(129) 이후 약 6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60세 이상~70세 미만 역시 132를 찍어 2014년 10월(131) 이후 최고점에 올랐다. 

민간 연구소와 금융회사도 집값 상승을 전망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경제 변수와 수급지수를 고려해 올해 주택가격을 예측한 결과 매매가는 전국이 1.5%, 수도권 1.4%, 서울이 1.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셋값은 전국이 3.1%, 수도권 3.3%, 서울은 3.6% 오를 것으로 나왔다. KB금융그룹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공인중개사 10명 중 9명이 집값 상승을 전망했다. 오름폭은 1~3%가 될 것이라는 견해(수도권 중개업소 30%, 비수도권 32%)가 가장 많았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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