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원사 강응열, 식물과 함께 정원으로 놀다

신기영 2021. 1. 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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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강응열

정원이라는 틀을 넘나들며 다양한 놀거리를 찾는 정원사. 마음 내키는 대로 식물과 함께 성장하는 한 정원사의 이야기.



INTERVIEWEE 강응열

프리랜서 정원사이면서 시민정원사.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정원 교육·봉사 프로그램부터 주택 정원 현장까지 이곳저곳에서 자유롭게 ‘정원사의 놀이터’라는 별칭으로 정원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판교환경생태학습원에서 근무했으며, 몇 해 전부터는 이천 장동리로 이주해 ‘장동리 정원사’로도 불리며 예비 정원인들과 시민들을 찾아가 새로운 놀거리를 고민한다.
https://www.instagram.com/gangeungyeol



정원사는 늘 식물만 옆에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그런 선입견을 깨준다. 기본적인 식물을 넘어 양봉, 목공, 도예까지 업역을 넘나들고, 정원주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그의 다양한 활동을 보며 ‘이게 정원사의 일일까?’ 싶지만, 그의 열정을 보면 ‘천생 정원사’다. 정원의 틀을 넘나드는 정원사를 그가 최근 가꾼 주택 정원에서 만났다.


작년에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의 큰 사건이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긴 장마나 가뭄 등 이상기후가 가장 큰 위협이었다. 기나긴 장마는 식물을 약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습을 머금으면 식물의 뿌리호흡이 힘들어지고, 일조량도 크게 못미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장마 직후 급격하게 온도가 올라 푹 찌는 날들이 있었는데, 이때 여러 현장이 꽤 영향을 받았고, 이곳 현장에서도 컨디션 관리가 쉽지 않았다.

인터뷰 장소인 ‘발트하우스’ 주택 정원은 어떻게 맡게 되었나
처음 알게 된 것은 기술자와 신청자를 연결하는 앱을 통해서였다. 이 단지의 세 집 정도를 맡게 되었는데, 다른 집은 부분적으로 손을 봤고, 이 정원은 비교적 전반적으로 정원을 다뤄볼 수 있었다. ‘개방’을 테마로 잡았던 단지의 정원 콘셉트 대신, 정원주는 독립성을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상록수로 울타리를 형성하고, 20종 이상의 다채로운 상록수를 준비해 수종 차이에서 오는 질감과 색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했다.


발트하우스 정원의 여름과 겨울

정원주와 소통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
발트하우스 정원주 때도 그랬지만, 처음부터 도면을 그리지 않는다. 우선은 정원주가 원하는 것을 듣는다. 물론 정원주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막연하게 설명하곤 한다. 그래서 이를 구체화해줘야 하는데, 이때 ‘취향테스트’를 한다. 정원주 부부(부부 참여를 강하게 권한다)에게 100여 장 이상의 정원, 자재, 스타일의 사진을 보여주고 좋다/별로다 두 표시를 하게 한다. 부부가 체크를 마치면 왜 이렇게 표시했는지 2차적으로 묻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정원주는 자신과 부부 서로의 취향을 깨달아가고, 선택을 주도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정원을 시공한다. 이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발전시켜 부부 대상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는데, 여기 발트하우스 정원주께서도 참여했었다.

여러 정원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
아이부터 어르신, 중년 부부, 청소년, 청년 농부, 지역 시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관련 프로그램을 여럿 진행해봤다. 어떤 지향하는 바가 있다기보다는 정원으로 재미있게 놀자는 아이디어가 이것저것 떠올랐다. 해보니까 재미있고, 일상에 도움이 되고, 느낄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정원에는 가득했다. 이게 정원주 취향을 파악하는 과정처럼 정원 일에 있어 보탬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의 한 별장 정원. 경사면을 바탕으로 소나무와 엣지의 곡선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작업이었다.

‘부부의 정원’ 프로그램은 심리전문가도 참여하는 등 꽤 본격적이다
정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면 혼자 오시는 중년 남성이나 여성이 있곤 한데, 자식을 키워내고 난 적잖은 부부가 ‘남편은 남편의 삶’, ‘아내는 아내의 삶’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 공통의 취미를 정원에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었다. 심리상담전문가를 모신 것은, 지금 옆에 있는 배우자에게 어떤 욕구가 있고, 갈등이 있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초면인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형식적인 자기소개보다는 그런 심리테스트를 통해서 참여자들 간 이해를 돕고도 싶었다.

‘부부의 정원’ 모습. 처음에는 데면데면해도 후반부에는 다들 열의가 넘쳤다고. 작년에는 코로나19로 비교적 압축적으로 커리큘럼을 진행해 조금은 아쉬웠다.

목공, 미술, 도예까지 정말 이것저것 다 하는 것 같다
거기에 양봉도 추가다(웃음). 성남에서는 부지를 빌리고 강사를 섭외해 양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천에 와서는 도예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같이 그릇을 구워보며 이것을 어떻게 정원에 적용해볼까라는 고민도 적잖게 했었다. 이외에도 목공도 프로그램 중 요소로 활용해봤고, 실제로 실행까지는 못 갔지만, 정원과 음악이라는 주제로도 고민을 했었다. 정원 일을 하면서,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들을 운영해보면서 정원이 우리 생활 속에서, 문화로서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식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꽃잎과 잎, 가지 등은 훌륭한 그림 재료가 되어주면서, 식물의 각 부분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정원 프로그램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딱 하나만 디자인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해본 적이 있다. IT업계 후원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일상생활 속에서 주제를 잡아 관찰과 디자인, 그리고 해석하는 콘셉트였다. 나는 정원사니까 정원도구를 주제로 잡았다. 왜 이런 형태로 개발되었는지. 정원 활동에 어떤 도구가 편리하고, 도구를 쓰는 자세와 디자인과의 연관관계는 어떤지. 그런 고민을 토대로 ‘정원도구함’을 만들어봤다. 학생들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웠고, 무엇보다 정원 용품을 바탕으로, 정원 작업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나눌 수 있어서 재밌었다.

어린이정원사 프로그램. 아이들은 늘 밝고 에너지 넘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시민정원사 봉사단에 꽤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성남에서 오래 활동할 때 시민정원사 봉사단을 조직해 몇 년 운영했는데, 시간이 지나다보니 봉사단 분들이 정원일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분은 식물을 이용해 그림을 만들고, 어떤 분은 차나 음식을 만들고. 몇 년 교육기간 동안 봉사활동으로 체득이 된 거다. 이게 쌓여 이분들이 지역에 다시 베푸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정원 봉사 프로그램의 선순환으로 이어져 지금도 무척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직접 만든 벌통. 작년에는 바질꽃 꿀에도 도전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프리랜서 전에는 판교생태학습원에서 근무했었다. 그때 일손이 부족하니까 자원봉사를 뽑았는데, 일만 나누기 미안해서 정원 스킬을 가르쳐드리기 위해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식물 키우는 것만 하다가 내용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문화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콘텐츠가 점차 발전해나가게 됐다. 이후 성남아트센터의 정원을 가꾸는 모임은 그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지기도 했다.

추천하는 정원 프로그램이 따로 있나
다양한 정원사나 가게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이런 사설 교육은 고가의 과정이 많아서 가볍게 권하기는 어렵다. 보통 반년에서 1년, 길게는 2년 커리큘럼으로 교육비가 300만~500만원 정도 한다. 지금은 서울시나 경기도 등 자치단체의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공적 정원 교육 과정이나, 그 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시민정원사 과정을 저렴하거나 무료로 꾸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짧게 진행하는 원데이클래스 등은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려울 수 있어 최소 사계절을 지내보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2018년 마을정원사 수업때는 천연염색을 진행했다. 직접 가꾼 작물로 염색까지 하는 과정 또한 준비 중이다.

비대면 시대, 어떤 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
일단 쉬운 실내식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시중에서 실내식물로 나오는 것들이 사실 키우기 어렵지 않다. 다만, 극적인 변화는 많지 않아 재미없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작게라도 ‘풍경’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한다. 테라리움이 될 수도 있고, 보틀리움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 대상 정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꼭 넣는 것 중 하나가 ‘동물 모형을 이용한 정원 만들기’다. 동물의 서식환경을 묘사해 실내식물들을 배치하고 ‘작은 세계’를 만들어본다. 변화가 크지 않은 실내식물도 이런 방식으로 응용하면 어른도 아이도 한층 재미있어한다.

실내식물은 단순히 기르기만 하기 보다는 식물이 지낼 환경을 꾸며보는 것도 정원을 재밌게 즐기는 방법이다.

올해 계획은
금년에는 프로그램 숫자를 늘리는 것 보다는 구상하는 시간을 늘려보고 싶다. 물론 어린이정원사 프로그램 등은 꾸준히 진행하려고 한다. 성남에서 시민정원사 모임을 만들고 유지한 것처럼 현재 거주지인 이천에서도 비슷한 성격으로 기반과 모임을 만들고 싶다. 목공이나 도자기도 시도해본 것처럼 정원과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일도 발굴하고. 양봉도 다시 해보려고 한다. 꿀벌로 시작해 생태적이고 순환할 수 있는 정원도 연구해보고 싶다. 판교생태학습원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해봐서 도심 속에서 자연 순환이 이뤄지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정원을 좀 더 계절감 있게 즐기는 수종 셋


1) 삼지닥나무
지폐에 쓰일 정도로 고급 종이를 만들던 수종이다. 매화나 산수유와 비슷한 이른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나무로, 꽃 모양도 독특하고 수형도 단정하며 무엇보다 향이 강하다. 남부지역이 원산지여서 중부의 겨울에는 조금 약하지만, 적응시키거나 도심지에서는 잘 살아내기도 한다.

2) 고광나무
5월, 늦어도 6월에는 꽃을 피우는 고광나무. 꽃 모양은 수수하고 평범하지만, 이 계절의 어느 꽃보다도 진한 향기를 내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 정원을 눈으로도 즐기고, 향으로도 즐기고 싶다면 다른 수종 사이에 고광나무를 섞어 향을 찾아보는 것도 한 재미다.

3) 남천
죽은 것처럼 보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새싹이 올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유월이 되면 멋진 하얀 꽃을 피워내고, 가을이 되면 단풍이, 겨울에는 빨간 열매가 남아 아름답다. 울타리나 포인트 등 어느 디자인에도 잘 어울려 정원사에게도, 정원주에게도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취재_ 신기영  |  사진_ 변종석, 정원사 제공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1년 1월호 / Vol.263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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